또 하루가 가고 

내일은 또 오고

이 세상은 바삐 움직이고

그렇게 앞만 보며 걸어가란

아버지 말에 울고

- 한희정 "내일" 중에서(드라마 미생(未生) OST)



1화


길이란 걷는 것이 아니라 걸으면서 나아가기 위한 것이다.

나아가지 못하는 길은 길이 아니다.

길은 모두에게 열려있지만 모두가 그 길을 가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내가 열심히 했다고?

아니. 

난 열심히 하지 않아서 세상에 나온 거다.

난 열심히 하지 않아서 버려진 것 뿐이다.



2화


밤샘 아르바이트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아침마다 내가 마주쳐야했던 익숙한 풍경.

표정도 옷차림도 걸어가는 방향조차도 일사불란하리만치 나와는 정 반대였던 사람들.

학생이든 직장인이든 철이 든 이후엔 한 번도 속해본 적 없던,

그들 속에 섞이고 싶은 마음이 너무나 간절해서 보지 못했던 

불편한 진실.

결국 난 여전히 혼자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었던 거다.

이곳에서도 나는 변함없이 혼자였던 거다.

그리고 모두가 다 아는 그 사실을 

나만 모르고 있었던 거다.


기회에도 자격이 있는거다.

여기있는 사람들이 이 빌딩 로비 하나 밟기 위해 얼마나 많은 계단을 오르락 내리락 했는지 알아?

여기서 버티기 위해 또 얼마나 많은 땀과 눈물과 좌절을 뿌렸는지 알아?



3화


야간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도

아무리 빨리 이 새벽을 맞아도

어김없이 길에는 사람들이 있었다.

남들이 아직 꿈 속을 헤맬거라 생각했지만

언제나 그렇듯 세상은 나보다 빠르다.



4화


솔직한게 진실된거라 생각하는 착각.

변명이나 핑계를 대서 사람들은 얼마든지 솔직해질 수 있어.

진실과 별개로.


바둑에 이런 말이 있어.

미생, 완생.

우린 아직 다 미생이야.



7화


당신이 술 맛을 알어?



8화


니가 이루고 싶은 게 있다면 체력을 먼저 길러라.

니가 종종 후반에 무너지는 이유.

대미지를 입은 후에 회복이 더딘 이유.

실수한 후 복구가 더딘 이유.

다 체력의 한계 때문이야.

체력이 약하면 빨리 편안함을 찾게 되고 그러면 인내심이 떨어지고,

그리고 그 피로감을 견디지 못하면 승부따위는 상관없는 지경에 이르지.

이기고 싶다면 니 고민을 충분히 견뎌 줄 몸을 먼저 만들어.

정신력은 체력의 보호 없이는 구호밖에 안 돼.



9화


순류에 역류를 일으켰을 때 즉각 반응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


당신 실패하지 않았어.


- 합격하고 입사하고 나서 보니까 성공이 아니라 그냥 문을 하나 연 것 같은 느낌이더라고.

어쩌면 우리는 성공과 실패가 아니라 죽을 때까지 다가오는 문만 열어가면서 살아가는게 아닐까 싶어.


- 그럼 성공은요?


- 자기가 그 순간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느냐에 달린 문제가 아닐까?


보이는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보여지고 싶어하는 사람이 이렇게 많은 세상.

사람들은 왜 자기를 고백할까.

바둑은 전체가 부분을 결정한다.

가로 19, 세로 19의 바둑판이 결정한 세계.

바둑판이 무한하다면, 세상이 무한 캠퍼스라면 이기고 지는 것이 가능할까?

이 땅이란 전체가 나라는 부분을 결정한다.

위로받기 위해, 이해받기 위해 나를 보여주는 사람들.



10화


우리가 할 수 있는 노력은 과정이 전부야.

결과는 우리 손 안에 있는 게 아니야.


상대가 일으킨 역류에 반응할 때가 왔다.

적진 깊숙히 뛰어들 때는 이쪽도 목숨을 걸어야 한다.

실수를 먼저 하는 쪽이 지게 되어있다.


하나의 수는 그 직전의 수가 원인이 된다.

지금 이 수가 왜 놓여졌는지 이해하려면 그 전의 수를 봐야 한다.

상대가 반발하는 것을 이해하려면 지금 까지의 수 중에서 무엇이 아팠는지 알아야 한다.


모든 균열은 내부의 조건이 완성시키기 마련이다.


그래도 이 일이 지금의 나야


그래봤자 바둑. 그래도 바둑.


그래도 나에겐 전부인 바둑.

왜이렇게 처절하게 치열하게 바둑을 두십니까?

바둑일 뿐인데.

그래도 바둑이니까. 내 바둑이니까.



11화


순간을 놓친다는건 전체를 잃고 패배하는 걸 의미한다.

당신은 언제부터 순간을 잃게 된 겁니까.


- 너무 규칙과 사례에 얽매여 있어.

당연히 수는 연구해야 하고 제대로 학습해야 하지만,

불변의 진리로 여긴다면 바둑이 그 오랜 세월 살아남을 수 있었겠니?


- 격식을 깨는 거야.

파격이지.

- 파..격이요?

- 격식을 깨지 않으면 고수가 될 수 없어.



13화


항상 취해있어야 한다.

모든게 거기에 있다.

그것이 유일한 문제다.

당신의 어깨를 무너지게 하여 당신을 땅 쪽으로 꼬부라지게 하는 가증스러운 시간의 무게를 느끼지 않기 위해서,

당신은 쉴 새 없이 취해있어야 한다


그러나 무엇에 취한다?

술이든 시든 덕이든 그 어느 것이든 당신 마음대로다.

그러나 어쨌든 취해라.


그리고 때때로 궁궐의 계단 위에서, 도랑가의 초록색 풀 위에서,

혹은 당신 방의 음울한 고독 가운데서 당신이 깨어나게 되고

취기가 감소되거나 사라져버리거든 물어보아라.

바람이든, 물결이든, 별이든, 새든, 시계든,

지나가는 모든 것

슬퍼하는 모든 것

달려가는 모든 것

노래하는 모든 것

말하는 모든 것에게 지금이 몇시인가를

그러면 바람도, 물결도, 별도, 새도, 시계도, 당신에게 대답할 것이다.

이제 취할 시간이다.



14화


전부인 것처럼 보여도 조금만 벗어나 보면,

아주 작은 부분의 일부임을 알게 된다.


욕심도 허락받아야 되는 겁니까?

정규직, 계약직 신분이 문제가 아니라

그게 아니라, 그냥 계속 일을 하고 싶은 겁니다.


명절은 가족이란 이름의 폭력을 확인하는 자리가 되기도 한다.


잊지 말자. 

나는 어머니의 자부심이다. 

모자라고 부족한 자식이 아니다.



15화


모든 게임이 그렇지만 플레이가 선언되는 순간

준비가 안 돼 있다는걸 깨닫게 된다.

그 전에 결연한 각오나 기합 따위는 불안의 직감적 반응이다.

또한 도망치고 싶거나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들 때는 

때가 늦었거나 이미 플레이가 시작된 이후이다.


나는 아직도 

장그래씨의 시간과 나의 시간이 같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래도 내일 봅시다.



16화


회사가 전쟁터라고?

밀어낼 때까지 그만두지 마라.

밖은 지옥이다.



19화


내게 좋은 수는 상대방 한테도 좋은 수가 될 수 있다.


그렇다.

삶은 가끔 짖궂은 퀴즈를 던져 내내 속수무책으로 만들다가

엉뚱한 곳에 힌트를 놔두기도 한다.

물론 그렇게 얻은 해답이 정답이라는 보장은 없다.


노력의 질과 양이 다른 장그래.

살다보면은 끝을 알지만 시작하는 것도 많아.

버텨라. 그리고 꼭 이겨라



20화


대체 그 스펙이란 게 뭐길래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과 다를 수 있단 말입니까.

그 한 사람의 노력은 왜 다른 사람들과 다른 대우를 받아야 하는 걸까요.




2016헌나1.pdf

* 상단 첨부파일 참고

헌법재판소결정

사건 2016헌나1 대통령(박근혜) 탄핵 

청구인 국회 

         소추위원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위원장 

         대리인 명단은 별지와 같음

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 

           대리인 명단은 별지와 같음

선고일시 2017. 3. 10. 11:21 

주문

  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 

이유

  1. 사건개요 

  가. 사건의 발단 

  전국경제인연합회(다음부터 ‘전경련’이라 한다)가 주도하여 만든 것으로 알려져 있던 재단법인 미르와 재단법인 케이스포츠(다음부터 ‘미르’와 ‘케이스포츠’라고 한 다)가 설립될 때 청와대가 개입하여 대기업으로부터 500억 원 이상을 모금하였다는 언론 보도가 2016년 7월경 있었다. 청와대가 재단 설립에 관여한 이유 등이 2016년 9월 국회 국정감사에서 중요한 쟁점이 되었는데, 청와대와 전경련은 이런 의혹을 부인하였다. 

  이 문제가 정치적 쟁점이 되던 중 2016. 10. 24. 청와대의 주요 문건이 최○원(개명 전 최○실)에게 유출되었고 최○원이 비밀리에 국정 운영에 개입해 왔다는 언론 보도가 있었다. 이른바 비선실세가 국정에 개입했다는 취지의 보도에 많은 국민이 충 격을 받았고, 이를 허용한 피청구인을 비난하는 여론이 높아졌다. 이에 피청구인은 2016. 10. 25. ‘최○실씨는 어려움을 겪을 때 도와 준 인연으로 일부 연설문이나 홍보 물의 표현 등에 대해 의견을 들은 적이 있으나 청와대의 보좌 체계가 완비된 이후에는 그만 두었다. 순수한 마음으로 한 일인데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친 점에 대해 깊이 사과드린다.’는 취지의 대국민 담화를 발표하였다.

  피청구인의 대국민 담화에도 불구하고 최○원의 국정 개입과 관련한 보도가 이어 졌고, 2016. 11. 3. 최○원이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 등 혐의로 구속되었다. 피청구인은 그 다음 날인 4일 ‘최○실씨 관련 사건으로 큰 실망과 염려를 끼쳐 드린 점 다시 한 번 사과드린다. 국가 경제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바람에서 추진된 일이었는데 특 정 개인이 이권을 챙기고 위법행위를 저질렀다고 하니 참담하다. 어느 누구라도 수사를 통해 잘못이 드러나면 책임을 져야 할 것이며 저도 모든 책임을 질 각오가 되어 있다.’는 내용의 제2차 대국민 담화를 발표하였다. 

  그런데 2016. 11. 6. 대통령비서실 정책조정수석비서관이었던 안○범이 강요미수 와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등 혐의로, 대통령비서실 부속비서관이었던 정○성이 공 무상비밀누설 혐의로 구속되었다. 국회는 11월 14일경부터 피청구인에 대한 탄핵소 추안 의결 추진 여부를 논의하기 시작하였고, 17일에는 ‘박근혜 정부의 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 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계획서 승인의 건’과 ‘박 근혜 정부의 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 사건 규명을 위한 특별검사의 임명 등에 관한 법률안’이 통과되었다.

  2016. 11. 20.에는 최○원ㆍ안○범ㆍ정○성이 구속 기소되었는데, 이들의 공소사 실 일부에는 피청구인이 공범으로 기재되었다. 더불어민주당, 국민의당, 정의당 등 은 11월 24일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공동으로 마련하기로 하였고, 11월 28일 공동 탄 핵소추안을 마련하여 12월 2일 탄핵안 표결을 추진하기로 합의하였다. 

  이에 피청구인은 2016. 11. 29. 다시 한 번 ‘국민 여러분께 큰 심려를 끼쳐 드린 점 깊이 사죄드린다. 국가를 위한 공적 사업이라 믿고 추진했던 일들이고 어떤 개인적 이익도 취하지 않았지만, 주변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것이 큰 잘못이다. 대통령직 임기 단축을 포함한 진퇴 문제를 국회의 결정에 맡기겠다. 여야 정치권이 국정 혼란 과 공백을 최소화하고 안정되게 정권을 이양할 수 있는 방안을 만들어 주면 대통령 직에서 물러나겠다.’는 내용의 제3차 대국민 담화를 발표하였다. 


  나. 탄핵심판 청구 

  피청구인이 국회의 결정에 따라 대통령직에서 물러나겠다는 담화를 발표하였지만, 국회는 특별위원회를 구성하여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 사건에 대한 국정 조사를 진행하였고 2016. 12. 1. 특별검사의 임명도 이루어졌다. 이어 국회는 우○호 ㆍ박○원ㆍ노○찬 등 171명의 의원이 2016. 12. 3. 발의한 ‘대통령(박근혜)탄핵소추 안’을 8일 본회의에 상정하였다. 2016. 12. 9. 피청구인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제346회 국회(정기회) 제18차 본회의에서 재적의원 300인 중 234인의 찬성으로 가결되었고, 소추위원은 헌법재판소법 제49조 제2항에 따라 소추의결서 정본을 헌법재판소에 제 출하여 피청구인에 대한 탄핵심판을 청구하였다. 


  다. 탄핵소추사유의 요지 

  청구인은 피청구인이 직무집행에 있어서 헌법과 법률을 광범위하고 중대하게 위 배하였다고 주장하면서, 소추의결서에 다음과 같은 5개 유형의 헌법 위배행위와 4개 유형의 법률 위배행위를 적시하여 이 사건 심판을 청구하였다. 


  (1) 헌법 위배행위 

  (가) 피청구인은 최○원에게 공무상 비밀을 누설하고 최○원과 그의 친척이나 그 와 친분 있는 주변인 등(다음부터 ‘최○원 등’이라 한다)이 국가정책과 고위 공직 인사에 관여하게 하였다. 또 대통령의 권력을 남용하여 사기업들로 하여금 수백억 원 을 갹출하도록 하고 최○원 등에게 특혜를 주도록 강요하는 등 국가권력을 사익 추구의 도구로 전락하게 하였다. 이는 국민주권주의 및 대의민주주의의 본질을 훼손하 고, 국정을 비선 조직에 따른 인치주의로 운영하여 법치국가원칙을 파괴한 것이며, 국무회의에 관한 헌법 규정을 위반하고 대통령의 헌법수호 및 헌법준수의무를 위반 한 것이다. 

  (나) 피청구인은 최○원 등이 추천하거나 그들을 비호하는 사람을 청와대 간부나 문화체육관광부의 장ㆍ차관으로 임명하였고, 이들이 최○원 등의 사익추구를 방조 하거나 조장하도록 하였다. 또 피청구인은 최○원 등의 사익추구에 방해될 공직자들 을 자의적으로 해임시키거나 전보시켰다. 이는 직업공무원제도의 본질적 내용을 침해하고 대통령의 공무원 임면권을 남용하였으며, 법집행을 할 때 불평등한 대우를 하지 말아야 한다는 평등원칙을 위배하는 한편, 정부재정의 낭비를 초래한 것이다. 

  (다) 피청구인은 사기업에 금품 출연을 강요하여 뇌물을 수수하거나 최○원 등에게 특혜를 주도록 강요하고 사기업 임원 인사에 간섭하였다. 이는 기업의 재산권과 개인의 직업선택의 자유를 침해하고, 기본적 인권 보장의무를 저버리고 시장경제질서를 훼손하고 대통령의 헌법수호 및 헌법준수의무를 위반한 것이다. 

  (라) 피청구인은 최○원 등 비선실세의 전횡을 보도한 언론을 탄압하고 언론 사주 에게 압력을 가해 신문사 사장을 퇴임하게 만들었다. 이는 언론의 자유와 직업의 자유를 침해한 것이다. 

  (마) 피청구인은 세월호 참사가 발생하였을 때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하기 위한 적극적 조치를 취하지 아니하여 생명권 보호의무를 위반하였다. 


  (2) 법률 위배행위 

  (가) 재단법인 미르, 재단법인 케이스포츠 설립ㆍ모금 관련 범죄 피청구인은 문화발전 및 스포츠 산업 발전을 구실로 피청구인 본인 또는 최○원 등이 지배하는 재단법인을 만들고 전경련 소속 기업으로부터 출연금 명목으로 돈을 받기로 마음먹었다. 피청구인은 경제수석비서관 안○범에게 지시하여 전경련을 통 하여 기업으로부터 출연받아 미르와 케이스포츠를 설립하도록 하였고, 최○원은 피 청구인을 통하여 재단 이사장 등 임원진을 그가 지정하는 사람으로 구성하여 미르와 케이스포츠의 인사와 운영을 장악하였다. 

  피청구인은 안○범을 통하여 기업들로 하여금 미르에 486억 원, 케이스포츠에 288 억 원을 출연하도록 하였다. 피청구인은 재단법인 설립 전에 7개 그룹의 회장과 단독 면담을 하면서 안○범으로부터 주요 그룹의 당면 현안 자료를 제출받았고, 대기업들 이 재단법인에 출연금을 납부한 시기를 전후하여 대기업들의 당면 현안을 비롯하여 기업에게 유리한 조치를 다수 시행하였다. 한편, 안○범으로부터 출연 요청을 받은 기업들은 이에 응하지 않을 경우 기업활동 전반에 걸쳐 직ㆍ간접적으로 불이익을 받을 것을 두려워하여 출연금 명목으로 위 두 재단법인에 돈을 납부하였다.

  피청구인의 이러한 행위는 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위반(뇌물)죄와 형법상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 및 강요죄에 해당한다.

  (나) 롯데그룹 추가 출연금 관련 범죄 

  최○원은 케이스포츠가 주도하여 전국 5대 거점 지역에 체육시설을 건립하는 사업에 소요되는 자금을 기업으로 하여금 케이스포츠에 지원하도록 하고, 시설 건립 등 사업을 그가 설립한 주식회사 더블루케이(다음부터 ‘더블루케이’라고 한다)에 넘겨주는 방식으로 이익을 취득하기로 하고, 이런 사업계획을 피청구인에게 전달하였다. 피청구인은 롯데그룹 회장 신○빈과 단독 면담을 가진 뒤 안○범에게 롯데그룹이 하남시 체육시설 건립과 관련하여 75억 원을 부담하기로 하였으니 진행상황을 확인하라고 지시하였다. 롯데그룹은 신○빈의 지시에 따라 6개 계열사를 동원하여 케이스포츠에 70억 원을 송금하였다. 

  롯데그룹은 당시 서울 시내 면세점 사업권의 특허를 신청하였고, 경영권 분쟁과 비자금 등 문제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피청구인이 경제수석비서관을 통하여 롯데그룹으로 하여금 케이스포츠에 돈을 출연하도록 한 것은 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위반(뇌물)죄와 형법상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 및 강요죄에 해당한다. 

  (다) 최○원 등에 대한 특혜 제공 관련 범죄 

  ① 최○원은 친분이 있는 문○경으로부터 그 남편인 이○욱이 경영하는 주식회사 케이디코퍼레이션(다음부터 ‘케이디코퍼레이션’이라 한다)이 대기업 등에 납품할 수 있도록 해 달라는 부탁을 받고, 정○성을 통해 피청구인에게 케이디코퍼레이션 관련 자료를 전달하였다. 피청구인은 안○범에게 현대자동차가 케이디코퍼레이션의 기술을 채택할 수 있는지 알아보라고 지시하였다. 안○범은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정○구와 부회장 김○환에게 피청구인의 지시를 전달하였고, 김○환은 구매담당자에게 지시하여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가 케이디코퍼레이션과 납품계약을 체결하 고 제품을 납품받도록 하였다. 또 최○원은 피청구인이 프랑스를 순방할 때 이○욱 이 경제사절단으로 동행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이○욱은 납품계약 성사 대가로 최○원에게 5,162만 원 상당의 금품을 주었다. 피청구인의 이런 행위는 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위반(뇌물)죄와 형법상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 및 강요죄에 해당한다. 

  ② 피청구인은 안○범을 통하여 최○원이 설립한 주식회사 플레이그라운드커뮤 니케이션즈(다음부터 ‘플레이그라운드’라고 한다)가 현대자동차 광고를 수주할 수 있도록 해 달라고 김○환에게 요구하였다. 김○환은 현대자동차그룹 계열사가 수주하기로 확정된 광고를 플레이그라운드가 수주할 수 있도록 해 주어 9억 1,807만 원 상당의 수익을 올리도록 하였다. 피청구인의 이런 행위는 형법상 직권남용권리행사 방해죄 및 강요죄에 해당한다. 

  ③ 최○원은 주식회사 포스코(다음부터 ‘포스코’라고 한다)가 배드민턴팀을 창단하면 더블루케이가 그 선수단 관리를 담당하여 이익을 올린다는 기획안을 마련하였다. 피청구인은 포스코 회장 권○준과 단독 면담을 하면서 포스코에서 여자 배드민턴팀을 창단하면 좋겠고, 더블루케이가 자문을 해 줄 수 있을 것이라고 요청하였다. 포스코는 피청구인의 요청에 따라 케이스포츠 사무총장 등과 협의한 끝에 계열사인 포스코 피앤에스 산하에 창단 비용 16억 원 상당의 펜싱팀을 창단하고 그 운영 및 관리를 더블루케이에 맡기기로 하였다. 피청구인의 이런 행위는 형법상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 및 강요죄에 해당한다. 

  ④ 피청구인은 안○범을 통하여 주식회사 케이티(다음부터 ‘케이티’라 한다)에 요청하여 이○수와 신○성을 채용하도록 한 다음 그 보직을 광고 업무 총괄 내지 담당으로 변경하도록 하였다. 이어 피청구인은 안○범에게 플레이그라운드가 케이티의 광고대행사로 선정될 수 있도록 하라고 지시하였다. 안○범은 케이티 회장 황○규와 이○수에게 요구하여 케이티가 플레이그라운드에게 광고 7건을 발주하도록 하였고, 플레이그라운드는 516,696,500원 상당의 수익을 올렸다. 피청구인의 이런 행위는 형 상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 및 강요죄에 해당한다.

   ⑤ 최○원은 정○성을 통하여 피청구인에게 더블루케이가 한국관광공사의 자회사인 그랜드코리아레저 주식회사(다음부터 ‘그랜드코리아레저’라 한다)와 스포츠팀 창단과 운영 관련 업무대행 용역계약을 체결할 수 있도록 주선해 달라고 요청하였다. 피청구인은 안○범에게 같은 취지의 지시를 하였고, 안○범은 그랜드코리아레저 대표이사 이○우에게 더블루케이와 업무용역계약을 체결하도록 요청하였다. 문화 체육관광부 차관 김○도 그랜드코리아레저가 장애인 펜싱팀을 창단하고 더블루케이가 선수 대리인 자격으로 그랜드코리아레저와 선수위촉계약을 체결하도록 지원 하였다. 더블루케이는 그랜드코리아레저가 선수들에게 전속계약금 명목으로 지급 한 돈의 절반인 3천만 원을 에이전트 비용 명목으로 지급받았다. 피청구인의 이런 행위는 형법상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 및 강요죄에 해당한다. 

  (라) 문서 유출 및 공무상 취득한 비밀 누설 관련 범죄 

  피청구인은 ‘복합 체육시설 추가대상지(안) 검토’ 문건 등 공무상 비밀 내용을 담고 있는 문건 47건을 최○원에게 이메일 또는 인편 등으로 전달하였다. 피청구인의 이런 행위는 형법상 공무상비밀누설죄에 해당한다.


  2. 심판대상 

  이 사건 심판대상은 대통령이 직무집행에 있어서 헌법이나 법률을 위배했는지 여부 및 대통령에 대한 파면결정을 선고할 것인지 여부이다.


  3. 이 사건 심판 진행과정 

  (1) 헌법재판소는 헌법재판소법과 헌법재판소 심판규칙, 그리고 탄핵심판의 성질에 반하지 아니하는 한도에서 형사소송에 관한 법령을 준용하여 이 사건 심판절차를 진행하였다. 이 사건이 접수되어 2017. 2. 27. 변론이 종결될 때까지 헌법재판소는 3차례의 변론준비기일과 17차례의 변론기일을 진행하면서 변론을 듣고 증거조사를 실시하였다. 청구인이 제출한 갑 제1호증부터 제174호증까지, 피청구인이 제출한 을 제1호증부터 제60호증까지 서증 중 채택된 서증에 대하여 증거조사를 실시하였다. 또 청구인과 피청구인이 함께 신청한 증인 3명(최○원, 안○범, 정○성), 청구인이 신 청한 증인 9명(윤○추, 이○선, 류○인, 조○일, 조○규, 유○룡, 정○식, 박○영, 노○일)과 피청구인이 신청한 증인 14명(김○률, 김○, 차○택, 이○철, 김○현, 유○봉, 모 ○민, 김○덕, 조○민, 문○표, 이○우, 정○춘, 방○선, 안○범)에 대한 증인신문을 실시하였고, 안○범은 두 차례 출석하여 증언하였다. 그 밖에 직권에 의한 1건, 청구인의 신청에 의한 1건, 피청구인의 신청에 의한 17건 등 모두 19건의 사실조회를 하여 70개 기관과 기업으로부터 답변을 받았다. 이 결정은 이와 같이 적법하게 조사된 증거를 종합하여 인정되는 사실을 기초로 한 것이다.

  (2) 헌법재판소는 준비기일에 이 사건 쟁점을 최○원의 국정개입 및 대통령의 권한 남용 행위, 언론의 자유 침해 행위, 생명권 보호 의무 위반 행위, 뇌물수수 등 각종 형 사법 위반 행위로 유형화하여 정리하였다. 청구인은 2017. 2. 1. 제출한 준비서면을 통하여 소추사유를 사실관계를 중심으로 유형별로 구체화하면서 뇌물수수 등 각종 형사법 위반 행위 부분은 최○원의 국정개입 및 대통령의 권한 남용 행위에 포함시 켜 쟁점을 단순화하였다. 


  4. 적법요건 판단 

  가. 소추사유의 특정 여부 

  (1) 피청구인은, 탄핵심판절차에서도 공소사실 특정에 관한 형사소송법 제254조 제4항이 준용되므로 소추사유에 해당하는 사실을 구체적으로 특정하여야 하는데, 소추의결서에 기재된 소추사실은 그 일시ㆍ장소ㆍ방법ㆍ행위태양 등이 특정되어 있지 않은 채 추상적으로 기재되어 있으므로 부적법하다고 주장한다. 

  탄핵심판은 고위공직자가 권한을 남용하여 헌법이나 법률을 위반하는 경우 그 권한을 박탈함으로써 헌법질서를 지키는 헌법재판이고(헌재 2004. 5. 14. 2004헌나1), 탄핵결정은 대상자를 공직으로부터 파면함에 그치고 형사상 책임을 면제하지 아니 한다(헌법 제65조 제4항)는 점에서 탄핵심판절차는 형사절차나 일반 징계절차와는 성격을 달리 한다. 헌법 제65조 제1항이 정하고 있는 탄핵소추사유는 ‘공무원이 그 직무집행에 있어서 헌법이나 법률을 위배한’ 사실이고, 여기에서 법률은 형사법에 한정되지 아니한다. 그런데 헌법은 물론 형사법이 아닌 법률의 규정이 형사법과 같 은 구체성과 명확성을 가지지 않은 경우가 많으므로 탄핵소추사유를 형사소송법상 공소사실과 같이 특정하도록 요구할 수는 없고, 소추의결서에는 피청구인이 방어권을 행사할 수 있고 헌법재판소가 심판대상을 확정할 수 있을 정도로 사실관계를 구체적으로 기재하면 된다고 보아야 한다. 공무원 징계의 경우 징계사유의 특정은 그 대상이 되는 비위사실을 다른 사실과 구별될 정도로 기재하면 충분하므로(대법원 2005. 3. 24. 선고 2004두14380 판결), 탄핵소추사유도 그 대상 사실을 다른 사실과 명 백하게 구분할 수 있을 정도의 구체적 사정이 기재되면 충분하다. 이 사건 소추의결 서의 헌법 위배행위 부분은 사실관계를 중심으로 기재되어 있지 않아 소추사유가 분 명하게 유형별로 구분되지 않은 측면이 없지 않지만, 소추사유로 기재된 사실관계는 법률 위배행위 부분과 함께 보면 다른 소추사유와 명백하게 구분할 수 있을 정도로 충분히 구체적으로 기재되어 있다. 

  헌법재판소는 변론준비기일에 양 당사자의 동의 아래 소추사유를 사실관계를 중 심으로 ① 비선조직에 따른 인치주의로 국민주권주의와 법치국가원칙 등 위배, ② 대통령의 권한 남용, ③ 언론의 자유 침해, ④ 생명권 보호 의무 위반, ⑤ 뇌물수수 등 각종 형사법 위반의 5가지 유형으로 정리하였다. 그 뒤 변론절차에서 이와 같이 정리 된 유형에 따라 청구인과 피청구인의 주장과 증거 제출이 이루어졌다. 청구인은 2017. 2. 1. 제10차 변론기일에 다른 유형과 사실관계가 중복되는 각종 형사법 위반 유형을 제외하고 ① 최○원 등 비선조직에 의한 국정농단에 따른 국민주권주의와 법치주의 위반, ② 대통령의 권한 남용, ③ 언론의 자유 침해, ④ 생명권 보호의무와 직 책성실수행의무 위반 등 4가지 유형으로 소추사유를 다시 정리하였다. 그런데 피청구인은 청구인의 소추사유의 유형별 정리 자체에 대하여는 이의를 제기하지 아니한 채 변론을 진행하다가 2017. 2. 22. 제16차 변론기일에 이르러 이 사건 심판청구가 여러 가지 적법요건을 갖추지 못하였다고 주장하면서 소추사유가 특정되지 않았고 청구인의 소추사유 정리가 위법하다는 취지의 주장을 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소추의결서에 소추사유의 구체적 사실관계가 기재되어 있어 소추사유를 확정하는 데 어려움이 없고, 이미 변론준비기일에 양 당사자가 소추사유의 유형별 정리에 합의하고 15차례에 걸쳐 변론을 진행해 온 점 등에 비추어 볼 때 소추사유가 특정되지 않았다는 피청구인의 주장은 받아들일 수 없다. 

  소추사유 중 공무상 비밀누설행위 부분은 소추의결서에 ‘복합 체육시설 추가대상 지(안) 검토’ 문건 등 공무상 비밀 내용을 담고 있는 문건 47건을 최○원에게 전달한 행위로 기재되어 있을 뿐 문건 47건의 구체적 내역을 구체적으로 특정하여 기재하지 않았다. 그러나 소추의결서에 증거자료로 첨부된 정○성에 대한 공소장 중 ‘정○성 과 대통령이 공모하여 공무상 비밀을 누설한 범행’ 부분에 문건 47건의 구체적 내역 이 기재되어 있고, 청구인과 피청구인은 소추의결서에 기재된 문건 47건이 증거자료 에 기재된 문건 47건과 같은 것임을 전제로 제15차 변론기일까지 변론을 진행해 왔으므로, 피청구인도 이 부분 소추사유에 대하여 충분히 방어권을 행사하였다. 또한, 청구인은 2017. 1. 13. 제출한 준비서면을 통해 이 문건 47건의 구체적 내역을 보완하기도 하였다. 그렇다면 소추의결서 자체에 문건 47건 목록을 첨부하지 않았다고 하여 이 부분 소추사유가 특정되지 않아 부적법하다고 볼 수도 없다. 

  (2) 피청구인은 이 사건 소추의결서에 따르면 탄핵사유의 내용과 그에 적용된 헌법 위반 또는 법률 위반 조항이 모두 복합적으로 나열되어 있어서 과연 각 소추사유가 무슨 법령 위반인지 특정할 수 없으므로 부적법하다고 주장한다.

   헌법재판소는 원칙적으로 국회의 소추의결서에 기재된 소추사유에 의하여 구속을 받고, 소추의결서에 기재되지 아니한 소추사유를 판단의 대상으로 삼을 수 없다. 그러나 소추의결서에서 그 위반을 주장하는 ‘법규정의 판단’에 관하여 헌법재판소는 원칙적으로 구속을 받지 않으므로, 청구인이 그 위반을 주장한 법규정 외에 다른 관련 법규정에 근거하여 탄핵의 원인이 된 사실관계를 판단할 수 있다. 또 헌법재판소는 소추사유를 판단할 때 국회의 소추의결서에서 분류된 소추사유의 체계에 구속되지 않으므로, 소추사유를 어떤 연관관계에서 법적으로 고려할 것인가 하는 것은 전적으로 헌법재판소의 판단에 달려있다(헌재 2004. 5. 14. 2004헌나1). 따라서 이 부분 피청구인의 주장도 받아들일 수 없다.

  (3) 피청구인은 청구인이 2017. 2. 1. 제출한 준비서면은 소추사유를 추가하거나 변경한 것인데 이 부분에 대한 국회의 소추의결이 없었으므로 심판대상이 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국회가 탄핵심판을 청구한 뒤 별도의 의결절차 없이 소추사유를 추가하거나 기존 의 소추사유와 동일성이 인정되지 않는 정도로 소추사유를 변경하는 것은 허용되지 아니한다. 따라서 청구인이 2017. 2. 1. 제출한 준비서면 등에서 주장한 소추사유 중 소추의결서에 기재되지 아니한 소추사유를 추가하거나 변경한 것으로 볼 여지가 있는 부분은 이 사건 판단 범위에서 제외한다. 


   나. 국회 의결절차의 위법 여부 

  (1) 피청구인은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의결은 객관적 조사와 증거에 의해서 뒷받 침되는 소추사실에 기초하여야 하는데, 국회 스스로 탄핵소추안 의결에 필요한 증거 를 수집하기 위해 국정조사와 특별검사에 의한 수사를 실시하기로 의결하고도 그 결 과를 보지도 않고 법제사법위원회의 조사절차도 거치지 아니한 채 검찰의 공소장과 의혹 보도 수준의 신문기사만을 증거로 탄핵소추안을 의결한 것은 위법하다고 주장한다. 

  국회가 탄핵소추를 하기 전에 소추사유에 관하여 충분한 조사를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국회의 의사절차에 헌법이나 법률을 명백히 위반한 흠이 있는 경우가 아니면 국회 의사절차의 자율권은 권력분립의 원칙상 존중되어야 하고, 국회법 제130조 제1항은 탄핵소추의 발의가 있을 때 그 사유 등에 대한 조사 여부를 국회의 재량으로 규정하고 있으므로, 국회가 탄핵소추사유에 대하여 별도의 조사를 하지 않았다거나 국정조사결과나 특별검사의 수사결과를 기다리 지 않고 탄핵소추안을 의결하였다고 하여 그 의결이 헌법이나 법률을 위반한 것이라 고 볼 수 없다(헌재 2004. 5. 14. 2004헌나1). 따라서 이 부분 피청구인의 주장은 받아 들이지 아니한다. 

  (2) 피청구인은, 이 사건 소추의결은 아무런 토론 없이 진행되었으므로 부적법하다 고 주장한다. 

  탄핵소추의 중대성에 비추어 소추의결을 하기 전에 충분한 찬반토론을 거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러나 국회법에 탄핵소추안에 대하여 표결 전에 반드시 토론을 거 쳐야 한다는 명문 규정은 없다. 또 본회의에 상정된 안건에 대하여 토론하고자 하는 의원은 국회법 제106조에 따라 미리 찬성 또는 반대의 뜻을 의장에게 통지하고 얼마 든지 토론할 수 있는데, 이 사건 소추의결 당시 토론을 희망한 의원이 없었기 때문에 탄핵소추안에 대한 제안 설명만 듣고 토론 없이 표결이 이루어졌을 뿐, 의장이 토론 을 희망하는 의원이 있었는데도 고의로 토론을 못하게 하거나 방해한 사실은 없다. 따라서 피청구인의 이 부분 주장도 받아들일 수 없다. 

  (3) 피청구인은, 탄핵사유는 개별 사유별로 독립된 탄핵사유가 되는 것이므로 각각의 탄핵사유에 대하여 별도로 의결절차를 거쳐야 하는데, 국회가 여러 개 탄핵사유 전체에 대하여 일괄하여 의결한 것은 헌법에 위배된다고 주장한다. 

  탄핵소추안을 각 소추사유별로 나누어 발의할 것인지 아니면 여러 소추사유를 포함하여 하나의 안으로 발의할 것인지는 소추안을 발의하는 의원들의 자유로운 의사에 달린 것이다. 대통령이 헌법이나 법률을 위배한 사실이 여러 가지일 때 그 중 한 가지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파면 결정을 받을 수 있다고 판단되면 그 한 가지 사유만 으로 탄핵소추안을 발의할 수도 있고, 여러 가지 소추사유를 종합할 때 파면할 만하 다고 판단되면 여러 가지 소추사유를 함께 묶어 하나의 탄핵소추안으로 발의할 수도 있다. 

  이 사건과 같이 국회 재적의원 과반수에 해당하는 171명의 의원이 여러 개 탄핵사유가 포함된 하나의 탄핵소추안을 마련한 다음 이를 발의하고 안건 수정 없이 그대 로 본회의에 상정된 경우에는 그 탄핵소추안에 대하여 찬반 표결을 하게 된다. 그리고 본회의에 상정된 의안에 대하여 표결절차에 들어갈 때 국회의장에게는 ‘표결할 안건의 제목을 선포’할 권한만 있는 것이지(국회법 제110조 제1항), 직권으로 이 사 건 탄핵소추안에 포함된 개개 소추사유를 분리하여 여러 개의 탄핵소추안으로 만든 다음 이를 각각 표결에 부칠 수는 없다. 그러므로 이 부분 피청구인의 주장도 받아들일 수 없다. 

  (4) 피청구인은 국회가 탄핵소추를 의결하면서 피청구인에게 혐의사실을 알려주 지 않고 의견 제출의 기회도 주지 않았으므로 적법절차원칙에 위반된다고 주장한다. 

  탄핵소추절차는 국회와 대통령이라는 헌법기관 사이의 문제이고, 국회의 탄핵소 추의결에 따라 사인으로서 대통령 개인의 기본권이 침해되는 것이 아니며 국가기관으로서 대통령의 권한행사가 정지될 뿐이다. 따라서 국가기관이 국민에 대하여 공권 력을 행사할 때 준수하여야 하는 법원칙으로 형성된 적법절차의 원칙을 국가기관에 대하여 헌법을 수호하고자 하는 탄핵소추절차에 직접 적용할 수 없다(헌재 2004. 5. 14. 2004헌나1). 그 밖에 이 사건 탄핵소추절차에서 피소추인이 의견 진술의 기회를 요청하였는데도 국회가 그 기회를 주지 않았다고 볼 사정이 없으므로, 피청구인의 이 부분 주장 역시 받아들일 수 없다.


 다. 8인 재판관에 의한 탄핵심판 결정 가부 

  피청구인은, 현재 헌법재판관 1인이 결원된 상태여서 헌법재판소법 제23조에 따라 사건을 심리할 수는 있지만 8인의 재판관만으로는 탄핵심판 여부에 대한 결정을 할 수 없고, 8인의 재판관이 결정을 하는 것은 피청구인의 ‘9인으로 구성된 재판부로 부터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헌법 제111조 제2항과 제3항은 대통령이 임명하는 3인, 국회가 선출하는 3인, 대법 원장이 지명하는 3인 등 모두 9인의 재판관으로 헌법재판소를 구성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와 같이 입법ㆍ사법ㆍ행정 3부가 동등하게 참여하는 헌법재판소의 구성방식에 비추어 볼 때, 헌법재판은 9인의 재판관으로 구성된 재판부에 의하여 이루어지는 것이 원칙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재판관의 공무상 출장이나 질병 또는 재판관 퇴직 이후 후임 재판관 임명까지 사이의 공백 등 다양한 사유로 일부 재판관이 재판에 참여할 수 없 는 경우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이럴 때마다 헌법재판을 할 수 없다고 한다면 헌법재 판소의 헌법 수호 기능에 심각한 제약이 따르게 된다. 이에 헌법과 헌법재판소법은 재판관 중 결원이 발생한 경우에도 헌법재판소의 헌법 수호 기능이 중단되지 않도록 7명 이상의 재판관이 출석하면 사건을 심리하고 결정할 수 있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 즉, 헌법 제113조 제1항은 헌법재판소에서 법률의 위헌결정, 탄핵의 결정, 정당해산 의 결정 또는 헌법소원에 관한 인용결정을 할 때에는 재판관 6인 이상의 찬성이 있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 헌법재판소법 제23조 제1항은 헌법재판관 7명 이상의 출석으로 사건을 심리한다고 규정하고, 제36조 제2항은 결정서를 작성할 때 ‘심판에 관여한’ 재판관 전원이 서명날인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재판관 결원이 발생하더라도 시급하게 결정할 필요가 없는 사건이라면 재판관 공석 상황이 해소될 때까지 기다려 9인의 재판관이 결정하는 것이 바람직할 수 있다. 하지만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가 의결되면 헌법 제65조 제3항에 따라 대통령의 권 한행사가 정지된다. 헌법재판소장이 임기 만료로 퇴임하여 공석이 발생한 현 상황에 서 대통령 권한대행인 국무총리가 헌법재판소장을 임명할 수 있는지 여부에 관하여 는 논란이 있다. 국회에서도 이 문제에 관하여 정당 사이에 견해의 대립이 있는데 대 령 권한대행이 헌법재판소장을 임명할 수 없다는 의견에 따라 헌법재판소장 임명 절차가 전혀 진행되지 않고 있다. 대통령의 권한행사가 정지되고 대통령 권한대행이 행사할 수 있는 권한의 범위에 관하여 논쟁이 존재하는 현 상황은 심각한 헌정위기 상황이다. 게다가 대통령 권한대행이 헌법재판소장을 임명할 수 없다는 견해를 따르 면 헌법재판소장의 임기 만료로 발생한 현재의 재판관 공석 상태를 종결하고 9인 재 판부를 완성할 수 있는 방법도 없다. 

  이와 같이 헌법재판관 1인이 결원이 되어 8인의 재판관으로 재판부가 구성되더라 도 탄핵심판을 심리하고 결정하는 데 헌법과 법률상 아무런 문제가 없다. 또 새로운 헌법재판소장 임명을 기다리며 현재의 헌정위기 상황을 방치할 수 없는 현실적 제약을 감안하면 8인의 재판관으로 구성된 현 재판부가 이 사건 결정을 할 수밖에 없다. 탄핵의 결정을 하기 위해서는 재판관 6인 이상의 찬성이 있어야 하는데 결원 상태인 1인의 재판관은 사실상 탄핵에 찬성하지 않는 의견을 표명한 것과 같은 결과를 가져 오므로, 재판관 결원 상태가 오히려 피청구인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라는 점에서 피청구인의 공정한 재판받을 권리가 침해된다고 보기도 어렵다. 따라서 이 부분 피 청구인의 주장도 받아들이지 아니한다. 


  5. 탄핵의 요건 

  가. 직무집행에 있어서 헌법이나 법률 위배 

  헌법은 탄핵소추 사유를 ‘헌법이나 법률을 위배한 경우’라고 명시하고 헌법재판소 가 탄핵심판을 관장하게 함으로써 탄핵절차를 정치적 심판절차가 아닌 규범적 심판 절차로 규정하고 있다. 탄핵제도는 누구도 법 위에 있지 않다는 법의 지배 원리를 구현하고 헌법을 수호하기 위한 제도이다. 국민에 의하여 직접 선출된 대통령을 파면 하는 경우 상당한 정치적 혼란이 발생할 수 있지만 이는 국가공동체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지키기 위하여 불가피하게 치러야 하는 민주주의의 비용이다. 

  헌법 제65조는 대통령이 ‘그 직무집행에 있어서 헌법이나 법률을 위배한 때’를 탄핵사유로 규정하고 있다. 여기에서 ‘직무’란 법제상 소관 직무에 속하는 고유 업무와 사회통념상 이와 관련된 업무를 말하고, 법령에 근거한 행위뿐만 아니라 대통령의 지위에서 국정수행과 관련하여 행하는 모든 행위를 포괄하는 개념이다. 또 ‘헌법’에 는 명문의 헌법규정뿐만 아니라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따라 형성되어 확립된 불문헌법도 포함되고, ‘법률’에는 형식적 의미의 법률과 이와 동등한 효력을 가지는 국제조약 및 일반적으로 승인된 국제법규 등이 포함된다(헌재 2004. 5. 14. 2004헌나1).


  나. 헌법이나 법률 위배의 중대성 

  헌법재판소법 제53조 제1항은 ‘탄핵심판 청구가 이유 있는 경우’ 피청구인을 파면 하는 결정을 선고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대통령에 대한 파면결정은 국민이 선거를 통하여 대통령에게 부여한 민주적 정당성을 임기 중 박탈하는 것으로서 국정 공백과 정치적 혼란 등 국가적으로 큰 손실을 가져올 수 있으므로 신중하게 이루어 져야 한다. 따라서 대통령을 탄핵하기 위해서는 대통령의 법 위배 행위가 헌법질서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과 해악이 중대하여 대통령을 파면함으로써 얻는 헌법 수호의 이익이 대통령 파면에 따르는 국가적 손실을 압도할 정도로 커야 한다. 즉, ‘탄핵심판 청구가 이유 있는 경우’란 대통령의 파면을 정당화할 수 있을 정도로 중대한 헌법이나 법률 위배가 있는 때를 말한다. 

  대통령의 파면을 정당화할 수 있는 헌법이나 법률 위배의 중대성을 판단하는 기준은 탄핵심판절차가 헌법을 수호하기 위한 제도라는 관점과 파면결정이 대통령에게 부여한 국민의 신임을 박탈한다는 관점에서 찾을 수 있다. 탄핵심판절차가 궁극적으 로 헌법의 수호에 기여하는 절차라는 관점에서 보면, 파면결정을 통하여 손상된 헌 법질서를 회복하는 것이 요청될 정도로 대통령의 법 위배 행위가 헌법 수호의 관점 에서 중대한 의미를 가지는 경우에 비로소 파면결정이 정당화된다. 또 대통령이 국민으로부터 직접 민주적 정당성을 부여받은 대의기관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대통령에게 부여한 국민의 신임을 임기 중 박탈하여야 할 정도로 대통령이 법 위배행위를 통하여 국민의 신임을 배반한 경우에 한하여 대통령에 대한 탄핵사유가 존재한다고 보아야 한다(헌재 2004. 5. 14. 2004헌나1). 


  다. 판단 순서 

  이 사건에서는 피청구인이 그 직무를 집행하면서 헌법이나 법률을 위배하였는지 에 대하여 (1) 사인의 국정개입 허용과 대통령 권한 남용 여부, (2) 공무원 임면권 남 용 여부, (3) 언론의 자유 침해 여부, (4) 생명권 보호의무 등 위반 여부의 순서로 판단 한다. 이어 법 위배행위가 인정될 경우 그 위배행위가 피청구인의 파면을 정당화할 수 있을 정도로 중대한지 여부에 대하여 판단한다. 


  6. 사인의 국정개입 허용과 대통령 권한 남용 여부 

  가. 사건의 배경 

  피청구인은 전 대통령 박정희와 영부인 육영수의 장녀로 태어나 1974. 8. 15. 육영 수가 사망한 뒤 1979. 10. 26. 박정희가 사망할 때까지 영부인 역할을 대신하였다. 피 청구인은 육영수가 사망한 무렵 최○민을 알게 되어 최○민이 총재로 있던 대한구국 선교단의 명예총재를 맡았고, 1982년 육영재단 이사장으로 취임한 뒤에는 최○민을 육영재단 고문으로 선임하는 등 오랫동안 최○민과 함께 활동하였다. 피청구인은 최 ○민의 딸인 최○원과도 친분을 유지하였는데, 육영재단 부설 어린이회관이 최○원 이 운영하는 유치원과 자매결연을 맺기도 하였고, 피청구인의 개인적 일을 처리할 때 최○원의 도움을 받기도 하였다. 

  피청구인은 1997년 한나라당에 입당하여 제15대 대통령선거에서 한나라당 후보 이○창을 지원하면서 정치활동을 시작하였고, 1998. 4. 2. 대구광역시 달성군 국회의 원 보궐선거에서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었다. 피청구인이 정치활동을 시작한 뒤 최○원의 남편이었던 정○회가 피청구인의 비서실장으로 불리며 피청구인의 보좌진을 이끌었다. 피청구인이 보궐선거에 출마하면서 정○성ㆍ이○만ㆍ안○근ㆍ이○상 (2012년 사망) 등이 피청구인의 보좌진으로 활동하였고, 이들은 피청구인이 국회의원으로 활동할 때 보좌관이나 비서관으로 일하였다. 

  피청구인이 2012. 12. 19. 대통령에 당선된 뒤 정○성ㆍ이○만ㆍ안○근은 대통령 직 인수위원회에 참여하였으며, 취임 후에는 대통령비서실에서 비서관으로 근무하 였다. 피청구인은 대통령직을 수행하면서 공식 회의 이외에는 대부분의 보고를 관계 공무원을 대면하지 않고 서면으로 받았는데, 정○성ㆍ이○만ㆍ안○근이 피청구인 에 대한 각종 보고 및 의사소통 경로를 장악하였다는 뜻에서 ‘문고리 3인방’이라 불리기도 하였다. 특히 정○성은 피청구인이 대통령에 취임한 뒤에는 ‘제1부속비서관’ 으로, 제1ㆍ2 부속비서관실이 통합된 2015. 1. 23. 이후부터는 ‘부속비서관’으로 재직 하면서, 피청구인을 수신자로 하는 문건 대부분을 정리하여 보고하는 역할을 담당하 였다. 

  피청구인은 대통령으로 취임한 뒤에도 관저에서 최○원과의 사적 만남을 꾸준히 지속하였다. 최○원은 정○성을 비롯한 피청구인의 일부 보좌진과 차명 휴대전화 등 으로 상시 연락하였고, 피청구인의 일정을 확인하고 그에 맞는 의상을 준비하기도 하였다. 피청구인의 일부 보좌진은 최○원을 피청구인 관저에 청와대 공무차량으로 출입시켜 신분확인절차 없이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도록 하는 등 피청구인과 최○원 이 사적으로 만나는 데 필요한 각종 편의를 제공하였다. 


  나. 국정에 관한 문건 유출 지시ㆍ묵인 

  피청구인은 대통령으로 취임한 뒤 공식회의 이외에는 주로 서면을 통하여 보고를 받고 전화를 이용하여 지시하는 등 대면 보고와 지시를 최소화하는 방식으로 업무를 집행하였다. 피청구인에게 보고되는 서류는 대부분 정○성이 모아서 정리한 다음 피 청구인에게 전달하였다. 정○성은 피청구인에게 보고하는 서류 중 인사에 관한 자료, 각종 현안과 정책에 관한 보고서, 연설문이나 각종 회의에서 발언하는 데 필요한 말씀자료, 피청구인의 공식 일정 등 국정에 관한 문건 중 일부를 이메일을 이용하여 보내 주거나 직접 서류를 전달하는 방법 등으로 최○원에게 전달하였다. 최○원도 정○성을 통하여 국정에 관한 문건을 전달받아 열람한 사실을 인정하고 있다. 피청구인은 일부 문건에 대하여는 정○성에게 최○원의 의견을 받았는지 확인하고 이를 반드시 반영하도록 지시하기도 하였다. 

  정○성은 공무상비밀누설 혐의로 검찰에서 조사받으면서, 연설문과 말씀자료는 피청구인의 포괄적 지시에 따라 대부분 최○원에게 보냈고 각종 보고서나 참고자료 등은 필요한 경우에만 보냈으며, 공직자 인선안 등도 피청구인이 최○원의 의견을 들어보라고 하여 보냈다고 하면서, 이와 같은 문건 유출은 큰 틀에서 피청구인의 뜻 에 따른 것이라는 취지로 진술하였다. 정○성은 2013년 1월경부터 2016년 4월경까지 공무상 비밀 내용을 담고 있는 문건 47건을 최○원에게 전달하여 공무상비밀누설죄 를 저질렀다는 공소사실로 2016. 11. 20. 기소되어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형사재판 을 받고 있다. 검찰은 정○성이 피청구인의 지시를 받아 공무상 비밀을 누설한 것이 라고 보고 공소장에 피청구인과 정○성이 공모하여 법령에 의한 직무상 비밀을 누설 하였다고 기재하였다. 

  피청구인은 2016. 10. 25. 제1차 대국민 담화에서 “최○실씨는 과거 제가 어려움을 겪을 때 도와준 인연으로 지난 대선 때 주로 연설이나 홍보 등의 분야에서 저의 선거 운동이 국민들에게 어떻게 전달되는지에 대해 개인적인 의견이나 소감을 전달해 주 는 역할을 하였습니다. 일부 연설문이나 홍보물도 같은 맥락에서 표현 등에서 도움 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취임 후에도 일정 기간 동안은 일부 자료들에 대해 의견을 들은 적도 있으나 청와대의 보좌 체계가 완비된 이후에는 그만두었습니다.”라고 발표 하였다. 또 피청구인은 이 사건 심판과정에서 연설문 등의 표현방법을 국민 눈높이 에 맞추기 위해 최○원의 의견을 들은 사실은 있지만, 연설문이나 말씀자료 이외에 인사에 관한 자료나 정책보고서 등 다른 문건을 최○원에게 전달하도록 지시한 사실 은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런데 2014년 11월 최○원의 전 남편 정○회가 청와대 일부 비서관 등과 합세하 여 비밀리에 국정에 개입하고 있다는 취지의 신문 보도가 있었고, 이때 청와대 내부 문건이 외부로 유출되었다는 의혹이 제기된 바 있다. 정○성은 검찰에서 그 무렵 ‘상 황이 이러하니 최○원에게 자료를 보내 의견을 받는 것은 그만두는 것이 좋겠다.’고 피청구인에게 건의하였고, 피청구인이 이를 수용하였다고 진술하였다. 또 최○원의 추천으로 문화융성위원회 위원으로 위촉된 차○택은 2015년 4월경 최○원에게 문화 창조융합의 개념에 대해 삼성과 구글 및 알리바바 등 기업의 예를 들어 설명한 문구 를 적어 주었는데 피청구인이 그 문구를 청와대 회의에서 그대로 사용한 사실이 있 다고 증언하였다. 그리고 뒤에 보는 것처럼 2015년 2월경부터 2016년 1월경까지 추 진된 미르와 케이스포츠 설립 과정에서 최○원이 마련한 재단 명칭과 사무실 위치 및 임원 명단 등 자료가 피청구인에게 전달되었고, 피청구인이 보고 받은 재단 설립 관련 정보가 최○원에게 전달된 사실이 인정된다. 이런 사실을 종합하면 피청구인은 취임 후 2년이 넘어서까지 최○원에게 연설문 등 문건을 전달하고 그 의견을 들은 사 실이 인정된다. 그렇다면 청와대 보좌 체계가 완비될 때까지만 최○원의 의견을 들 었다는 피청구인의 주장은 객관적 사실과 부합하지 않는다. 

  또한, 정○성은 검찰에서 각종 연설문 외에 감사원장, 국가정보원 2차장 및 기획조 정실장 인사안이나 차관급 21명에 대한 인선안 등 여러 종류의 인사 관련 문건, 법원 의 조정을 받아들일지 여부를 검토한 민정수석비서관실 보고서, 수석비서관에 대한 지시사항을 담은 문건 등을 피청구인의 지시로 최○원에게 전달하였다고 진술하였 다. 정○성은 청와대 비서관으로 재직하는 동안 연설문이나 말씀자료 이외에도 대통 령 해외순방일정 등 수많은 비밀 문건을 최○원에게 전달하였는데, 보안이 철저하게 유지되는 청와대에서 이와 같이 많은 문건이 오랜 기간 동안 외부로 유출된 것은 피 청구인의 지시나 묵인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한편, 최○원은 비밀문서인 대통령 의 해외순방 일정 등을 정○성을 통해 미리 받아보고 피청구인이 순방 시 입을 의상 을 결정하고 또 해외순방 중 계획된 문화행사 계획을 변경하도록 조언하여 관철시키 기도 했다. 최○원이 피청구인의 해외순방 일정을 상세히 알고 여러 가지 조언을 하 였고 피청구인이 이를 수용한 점에 비추어 보더라도 관련 문건이나 정보가 최○원에 게 전달된 사실을 피청구인이 전혀 모르고 있었다고 보는 것은 상식에 맞지 않는다. 이런 사정에 비추어 보면 인사에 관한 자료나 정책보고서 등 말씀자료가 아닌 문건 을 최○원에게 전달하도록 지시한 사실이 없다는 피청구인의 주장도 믿기 어렵다. 

  최○원은 정○성을 통하여 받은 문건을 보고 이에 관한 의견을 주거나 내용을 직 접 수정하여 회신하기도 하였고, 파악한 정보를 기초로 피청구인의 일정 조정에 간 섭하는 등 직무활동에 관여하기도 하였다. 최○원은 행정각부나 대통령비서실의 현 안과 정책에 관한 보고 문건 등을 통해 피청구인의 관심사나 정부의 정책 추진 방향 또는 고위공무원 등 인사에 관한 정보를 미리 알 수 있었다. 최○원은 이와 같이 파악 한 정보를 토대로 공직자 인선에 관여하고 미르와 케이스포츠 설립 및 그 운영 등에 개입하면서 개인적 이익을 추구하다가 적발되어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 등 혐의로 구속 기소되었다. 


  다. 최○원의 추천에 따른 공직자 인선 

  피청구인은 최○원이 추천하는 인사를 다수 공직에 임명하였다. 최○원은 문화와 체육 분야의 주요 공직자 후보를 피청구인에게 추천하였다. 최○원은 뒤에 보는 것 처럼 미르와 케이스포츠를 설립한 다음 이 두 재단이 정부 예산사업을 수행하도록 하고 그 사업을 자신이 운영하는 회사가 수주하는 방식으로 이권을 확보하려고 하였 는데, 최○원이 추천한 일부 공직자는 최○원의 이권 추구를 돕는 역할을 하였다. 피청구인은 2013. 10. 29. 최○원이 추천한 한양대학교 스포츠산업학과 교수 김○ 을 문화체육관광부 제2차관으로 임명하였다. 김○은 제2차관으로 임명된 뒤 체육계 현안과 정책 등에 관한 문화체육관광부 내부 문건을 최○원에게 전달하고 최○원의 요구 사항을 정책에 반영하는 등 최○원에게 적극적으로 협력하였다. 

  피청구인은 2014년 8월경에는 광고제작회사를 운영하고 있던 차○택을 최○원의 추천에 따라 문화융성위원회 위원으로 위촉하였다. 최○원은 차○택이 2015년 4월 경 민관합동 창조경제추진단 단장과 문화창조융합본부 단장으로 취임할 때도 결정 적 역할을 하였다. 차○택은 자신의 지인을 최○원에게 미르의 임원으로 추천하였는 데, 이들은 최○원의 요구사항대로 미르를 운영하는 등 최○원의 사익 추구에 적극 적으로 협력하였다. 피청구인은 최○원의 추천으로 2014. 8. 20. 차○택의 은사 김○ 덕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으로 임명하고, 2014. 11. 18. 차○택의 외삼촌 김○률을 대 통령비서실 교육문화수석비서관으로 임명하였다. 


  라. 케이디코퍼레이션 관련 

  최○원은 케이디코퍼레이션의 대표이사 이○욱으로부터 자사 제품을 현대자동차에 납품할 수 있도록 해 달라는 부탁을 받고, 케이디코퍼레이션 관련 자료를 정○성 을 통하여 피청구인에게 전달하였다. 피청구인은 2014년 11월경 안○범에게 케이디 코퍼레이션이 새로운 기술을 가지고 있는 중소기업이니 현대자동차가 그 기술을 채 택할 수 있는지 알아보라고 지시하였다. 안○범은 2014. 11. 27. 피청구인이 현대자동 차그룹 회장 정○구를 면담하는 기회에 함께 온 부회장 김○환에게 피청구인의 지시를 전달하면서 현대자동차가 케이디코퍼레이션과 거래하여 줄 것을 부탁하였다. 

  케이디코퍼레이션은 김○환이 안○범에게 다시 회사 이름과 연락처를 물어야 할 정도로 현대자동차그룹 내에서 알려지지 않은 기업이었다. 그러나 케이디코퍼레이 션은 거래업체 선정 시 통상 거쳐야 하는 제품시험과 입찰 등 절차를 거치지 않고 수 의계약으로 현대자동차와 계약을 맺고, 2015년 2월경부터 2016년 9월경까지 현대자 동차에 제품을 납품하였다. 안○범은 현대자동차와 케이디코퍼레이션 사이의 계약 진행 상황을 확인하여 피청구인에게 보고하였다. 최○원은 케이디코퍼레이션이 현 대자동차에 제품을 납품하게 된 대가로 이○욱으로부터 1천만 원이 넘는 금품을 받 았다. 

  검찰은 최○원과 안○범이 현대자동차로 하여금 케이디코퍼레이션과 제품 납품 계약을 체결하도록 한 행위가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와 강요죄에 해당한다고 보고 최○원과 안○범을 기소하였다. 검찰의 공소장에는 피청구인은 최○원 및 안○범과 공모하여 대통령의 직권과 경제수석비서관의 직권을 남용하였고, 이에 두려움을 느 낀 현대자동차 부회장 김○환으로 하여금 납품계약을 체결하도록 하여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한 것으로 기재되어 있다. 


  마. 미르와 케이스포츠 관련 

  (1) 문화와 체육 관련 재단법인 설립 지시 

  피청구인은 2015년 2월경 안○범에게 문화와 체육 관련 재단법인을 설립하는 방 안을 검토하라고 지시하였다. 안○범은 소속 비서관에게 피청구인의 지시를 전달하 였고, 이에 따라 대기업이 출연하여 비영리법인을 설립하고 이 법인에서 정부 예산 이 투입되는 사업을 시행한다는 취지의 간략한 보고서가 작성되었다. 

  피청구인은 2015. 2. 24. 한국메세나협회 창립 20주년을 기념하는 오찬 행사에서 대기업 회장들에게 문화와 체육 분야에 적극적으로 투자해 줄 것을 요청하였고, 이 어 2015년 7월경 안○범에게 대기업 회장들과 개별 면담을 계획하라고 지시하였다. 안○범은 7개 대기업 회장 면담 일정을 확정하고 각 기업별 현안 등을 정리한 면담자 료를 만들어 피청구인에게 보고하였다. 피청구인은 2015. 7. 24.과 25일 이틀에 걸쳐 삼성, 현대자동차, 에스케이, 엘지, 씨제이, 한화, 한진 등 7개 대기업 회장들과 개별 면담을 하였다. 피청구인은 이 자리에서 각 기업의 애로 사항이나 투자 상황 등을 청 취하는 동시에, 문화 및 체육 관련 재단법인 설립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법인 설립 에 필요한 지원을 요구하였다.

   피청구인은 대기업 회장들과의 개별 면담을 마친 뒤 안○범에게 10개 정도 대기업 이 30억 원씩 출연하면 300억 원 규모의 문화 재단과 체육 재단을 설립할 수 있을 것 이라는 취지로 이야기하면서 재단법인 설립을 지시하였다. 안○범은 2015년 8월경 전경련 부회장 이○철에게 전경련이 대기업으로부터 출연금을 걷어 300억 원 규모 의 재단 설립을 추진하도록 요청하였다. 그러나 전경련이나 피청구인의 요구를 받은 대기업은 재단 설립에 협조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을 뿐 추가로 구체적 요구사항을 전달받지는 않아 재단 설립을 바로 추진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최○원은 전경련이 재단법인 설립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기 전에 이미 재단 설립 사실을 알고 차○택 등의 추천을 받아 2015년 9월 말경 김○수, 이○한, 이○선, 장○각 등을 면담하고 이들을 문화 재단 임원진으로 선정하였다. 이와 관련하여 차 ○택은 미르가 설립되기 두 달 전쯤 최○원으로부터 문화계 사람들 중 믿을 수 있는 사람을 소개해 달라는 부탁을 받았고, 이에 따라 김○현ㆍ김○탁ㆍ이○한ㆍ이○선 ㆍ전○석을 소개하였는데, 이 때 최○원이 곧 문화 재단이 만들어질 것이라는 취지 의 이야기를 하였다고 진술하였다. 또 차○택은 그로부터 한 달 정도 지나 최○원이 재단 이사진을 추천해달라고 하여, 김○화ㆍ김○원ㆍ장○각ㆍ이○선 등을 추천하 였다고 진술하였다. 최○원과 안○범은 서로 모르는 사이였다고 주장하고 있고 이 두 사람이 서로 연락한 흔적은 전혀 발견되지 않는다. 그런데도 최○원이 피청구인 의 지시로 문화 관련 재단법인이 설립될 것이라는 사실을 미리 알 수 있었던 것을 보 면, 피청구인이 그런 계획을 미리 알려 주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2) 미르 설립 

  피청구인은 2015. 10. 19.경 안○범에게 10월 말 리커창 중국 총리가 방한하면 양국 문화 재단 사이에 양해각서를 체결할 수 있도록 재단법인 설립을 서두르라고 지시하 였다. 안○범은 즉시 이○철과 경제금융비서관 최○목에게 300억 원 규모의 문화 재 단을 설립하라고 지시하였다. 최○목은 2015. 10. 21.부터 24일까지 4일 동안 매일 청 와대에서 전경련 관계자 및 관계 부처 공무원들과 재단 설립 관련 회의를 하면서 재 단 설립 절차 등을 논의하였다. 

  피청구인은 2015. 10. 21.경 안○범에게 재단의 명칭을 ‘미르’로 하라고 지시하면서 재단의 이사장 등 임원진 명단 등을 알려 주고, 임원진 이력서와 재단 로고 등 자료를 전달하였다. 그런데 피청구인에게 이와 같은 재단 관련 자료를 전달한 대통령비서실 비서진이나 정부부처 관계자는 아무도 없고, 피청구인도 이런 자료를 누구로부터 어 떻게 입수하였는지 밝히고 있지 않다. 앞서 본 것처럼 최○원이 재단의 주요 임원을 면접 등을 통하여 미리 선정해 둔 사실 등에 비추어 볼 때 이런 자료는 최○원이 피청 구인에게 전달한 것으로 보인다. 

  최○목을 비롯한 대통령비서실 비서진과 관계 부처 공무원 및 전경련 관계자들은 10월 말 이전에는 문화 재단을 반드시 설립하라는 피청구인의 지시에 따라 재단법인 설립을 서둘렀고, 전경련의 사회협력회계 분담금 기준으로 기업별 출연 금액을 정한 다음 법인 설립 절차는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적극적으로 협력하기로 하였다. 이에 따 라 전경련 관계자가 2015. 10. 23.경 해당 기업들에게 개별적으로 출연 요청을 하였다.

  그런데 피청구인은 재단 출연금 300억 원을 500억 원으로 올리도록 지시하였고, 안○범은 2015. 10. 24.경 이○철에게 피청구인의 지시를 전달하면서 출연 기업에 케 이티ㆍ금호ㆍ신세계ㆍ아모레퍼시픽을 포함시키고 현대중공업과 포스코 등 추가할 만한 대기업이 있는지 알아봐 달라고 요청하였다. 이에 전경련 관계자들은 2015. 10. 24. 재단 출연금을 500억 원으로 한 새로운 출연금 분배안을 작성하고, 이미 출연하 기로 하였던 기업들에는 증액을 요청하였으며, 케이티ㆍ금호ㆍ아모레퍼시픽ㆍ포스 코ㆍ엘에스ㆍ대림 등 출연기업 명단에 포함되어 있지 않았던 6개 기업에는 청와대 의 지시로 문화 재단을 설립하니 속히 출연 여부를 결정하여 달라고 요청하였다. 

  출연 요청을 받은 기업들은 재단 출연 금액을 일방적으로 통보받았으며, 재단의 구체적 사업계획서 등 자료를 받거나 재단의 사업계획이나 소요 예산 등에 관한 설명도 듣지 못하였다. 그럼에도 전경련 관계자들은 늦어도 2015. 10. 26.까지 출연 여부 결정을 해달라고 요청하였고, 출연 요청을 받은 기업들은 사업의 타당성이나 출 연 규모 등에 대한 충분한 사전 검토를 하지 못하고 재단 설립이 대통령의 관심사항 으로서 경제수석비서관이 주도하여 청와대가 추진하는 사업이라는 점 때문에 서둘러 출연 여부를 결정하였다. 이에 따라 전경련 관계자들이 2015. 10. 24. 토요일 기업 들에 출연 금액 증액을 통보하거나 새로운 기업들에 출연을 요청한 때로부터 불과 이틀 뒤인 2015. 10. 26. 월요일에는 기업들의 재단 출연 증서 작성이 전부 완료되었 다. 기업 중 일부는 출연을 결정한 다음 미르 측에 사업계획서를 보여 달라고 요구하 였으나 거절당하기도 하였다.

   전경련 관계자들은 2015. 10. 26. 출연하기로 한 기업 관계자들로부터 재산출연 증 서와 법인인감증명서 등 재단 설립에 필요한 서류를 받아, 실제로 개최되지 않은 창립총회가 전경련 컨퍼런스 센터에서 개최된 것처럼 창립총회 회의록을 허위로 만들고 피청구인이 안○범을 통해 전달한 미르 정관에 법인 인감을 날인하였다. 재단 설 립을 서두르는 과정에 안○범은 처분에 엄격한 제한이 따르는 기본재산과 자유로운 처분이 가능한 보통재산의 비율을 9:1에서 2:8로 변경하라고 전경련 측에 요구하였 다. 이에 따라 전경련 관계자들은 급히 기본재산과 보통재산 비율을 수정하여 정관 등을 새로 작성하고, 이미 날인한 기업 관계자들에게 연락하여 새로운 정관과 창립 총회 회의록에 다시 날인하도록 하였으나 결국 발기인으로 참여한 기업 중 에스케이 하이닉스의 날인은 받지 못하였다. 

  전경련 관계자들은 청와대에서 요구한 시한인 2015. 10. 27.까지 재단 설립 허가 절 차를 마치기 위하여 미르의 설립 허가 신청서를 문화체육관광부 서울사무소에 접수할 수 있도록 요청하였다. 문화체육관광부 담당공무원은 2015. 10. 26. 서울사무소로 담당 주무관을 출장 보내 에스케이하이닉스의 날인이 누락된 설립 허가 신청서를 접 수하도록 하였고, 다음날 09:36경 설립 허가 절차를 마무리한 뒤 곧바로 전경련에 미 르 설립허가를 통보하였다. 미르에 출연하기로 약정한 기업들은 2015년 11월경부터 12월경까지 합계 486억 원의 출연금을 납입하였다. 

  최○원과 안○범은 기업들로부터 미르에 출연하도록 한 행위와 관련하여 직권남 용권리행사방해 및 강요죄로 구속 기소되었다. 검찰의 공소장에는 피청구인은 최○ 원 및 안○범과 공모하여 대통령의 직권과 경제수석비서관의 직권을 남용하였고, 이 에 두려움을 느낀 전경련 임직원과 기업체 대표 및 담당 임원 등으로 하여금 미르에 출연하도록 하여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한 것으로 기재되어 있다. 

  (3) 케이스포츠 설립 미르가 설립된 뒤 최○원은 2015년 12월경 체육계 인사 김○승에게 체육 관련 재 단법인 설립에 관한 사업계획서를 작성하여 달라고 요청하였다. 이어 향후 설립될 재단법인에서 일할 임직원으로 사무총장 정○식ㆍ상임이사 김○승 등을 면접을 거 쳐 선정한 다음, 정○성을 통해 피청구인에게 그 명단을 전달하였다. 

  피청구인은 2015. 12. 11.과 20일경 안○범에게 최○원으로부터 받은 임원진 명단 을 알려주고, 서울 강남에 재단법인 사무실을 구하라고 지시한 뒤 정관과 조직도도 전달하였다. 안○범은 2015. 12. 19.경 김○승을 만나 전경련과 협조하여 재단을 설립 하라고 한 뒤, 경제수석실 행정관 이○영에게 재단의 임원진 명단과 정관 등을 주면 서 김○승과 연락하여 재단 설립을 진행하라고 지시하였다. 안○범은 이○철에게 미 르와 별도로 300억 원 규모의 체육 재단도 설립해야 하니 미르 때처럼 진행하라고 요 청하였다. 케이스포츠 설립도 미르와 마찬가지로 청와대 주도로 전경련을 통하여 대 기업으로부터 출연받아 이루어졌고, 피청구인과 최○원이 임원진을 선정하는 등 그 설립을 사실상 주도하였다.

  전경련 관계자들은 미르 설립 과정에서 연락했던 기업 명단을 토대로 기업의 매출 액을 기준으로 출연 금액을 할당하고, 각 기업 관계자에게 청와대의 요청에 따라 300 억 원 규모의 체육 재단도 설립하여야 하니 출연금을 내달라고 요청하였다. 출연 요 청을 받은 기업들은 케이스포츠의 구체적 사업계획 등도 알지 못한 채 재단 설립이 대통령의 관심사항으로서 경제수석비서관이 주도하여 청와대가 추진하는 사업이라 는 점 때문에 출연을 결정하였다. 전경련 관계자들은 2016. 1. 12.경 전경련회관으로 출연 기업 관계자들을 불러 재산출연 증서 등 필요한 서류를 받았고, 출연 기업들은 실제로는 개최되지 아니한 창립총회가 개최된 것처럼 허위로 작성된 창립총회 회의 록과 케이스포츠 정관에 법인 인감을 날인하였다. 일부 기업에 대해서는 전경련 관 계자가 직접 방문하여 서류를 제출받고 날인을 받았다. 

  대통령비서실 교육문화수석실 선임행정관은 2016. 1. 8.경 문화체육관광부 담당국 장에게 케이스포츠 설립을 최대한 빨리 허가하라고 요청하였다. 문화체육관광부 담 당 공무원들은 2016. 1. 12. 전경련이 케이스포츠 설립허가 신청서를 접수하자 그 날 중으로 서류를 보완하도록 한 뒤 다음날 법인 설립을 허가하였다. 기업들은 2016년 2 월경부터 8월경까지 케이스포츠에 288억 원의 출연금을 납입하였다. 

  최○원과 안○범은 기업들로부터 케이스포츠에 출연하도록 한 행위와 관련하여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및 강요죄로 구속 기소되었다. 검찰의 공소장에는 피청구인 은 최○원 및 안○범과 공모하여 대통령의 직권과 경제수석비서관의 직권을 남용하였고, 이에 두려움을 느낀 전경련 임직원과 기업체 대표 및 담당 임원 등으로 하여금 케이스포츠에 출연하도록 하여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한 것으로 기재되어 있다. 

  (4) 재단법인 운영 개입 이 사건 제5차 변론기일에서 최○원은 피청구인이 자신에게 미르와 케이스포츠 운영을 살펴봐 달라고 요청하였다고 증언하였다. 최○원은 미르와 케이스포츠에 출 연한 것도 아니고 아무런 직책이나 이해관계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재단 관계자로부 터 보고를 받고 구체적 업무 지시를 하였으며, 재단의 임직원 임명ㆍ추진하는 사업 의 내용ㆍ자금의 집행 등을 결정하였다. 미르와 케이스포츠 이사회의 결정은 형식적 인 것에 불과하였고, 출연 주체인 기업들 역시 재단 운영에 전혀 관여하지 못하였다.

  미르와 케이스포츠 임직원 등은 최○원이 피청구인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사실 을 알고 최○원을 회장이라 부르며 그의 지시에 따라 일하였다. 재단 임직원 등은 피 청구인과 최○원의 관계나 최○원이 지시한 내용을 안○범이 다시 그대로 지시하는 등 정황에 비추어 보았을 때 최○원의 뜻이 피청구인의 뜻이라고 믿을 수밖에 없었 다는 취지로 진술하고 있다. 이 사건 제11차 변론기일에서 케이스포츠 이사장 정○ 춘은 최○원의 국정 개입 등이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면서 안○범과 전경련 관계자가 이사장직에서 사임할 것을 요청하였지만 최○원이 사임하면 안 된다고 하여 사임하 지 않았다고 증언하면서, 안○범보다는 최○원이 피청구인의 뜻을 대변하고 있다고 이해하였다는 취지로 진술하였다.

  이와 관련하여 피청구인은 문화 융성과 경제 발전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취지에서 기업의 문화 및 체육 분야 투자를 적극 권유하고 비서실을 통하여 재단법인 설립절 차를 지원하였을 뿐 기업의 출연 과정이나 법인 운영에 개입한 사실은 전혀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안○범은 미르와 케이스포츠 설립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전경련 관계자에 게 청와대 개입 사실을 비밀로 하라고 요청하였다. 또 2016년 9월경 국회 국정감사에 서 이○철은 재단 설립 과정에서 이루어진 모금은 자발적인 것이었다고 청와대 개입 사실을 부인하였지만, 이 사건 제8차 변론기일에서는 미르와 케이스포츠가 안○범 의 지시에 따라 설립되었고 안○범의 요청을 받고 청와대의 압력에 부담을 느껴 국 회에서 거짓으로 진술하였다고 증언하였다. 2016년 10월경 미르와 케이스포츠 설립 과정의 위법행위에 대한 검찰 수사가 시작되자, 안○범은 이○철에게 전화하여 미르 와 케이스포츠 설립은 전경련이 주도하였고 청와대는 개입하지 않은 것으로 진술하라고 지시하고 자신의 휴대전화를 폐기하였다. 이와 관련하여 안○범은 증거인멸교사 혐의로 기소되었다. 

  피청구인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미르와 케이스포츠 설립을 청와대가 지원한 사실을 비밀로 할 이유가 없고 그 뒤 관련 증거를 없애고 위증을 지시할 이유도 전혀 없다. 최○원과 안○범 및 재단 관련자 등의 증언과 진술에 비추어 보더라도 피청구인 의 이 부분 주장도 믿기 어렵다. 


  바. 플레이그라운드 관련

  (1) 플레이그라운드 설립과 운영 

  최○원은 2015. 10. 7. 광고회사인 플레이그라운드를 설립하였고, 정부의 지원을 받는 미르와 용역계약을 체결하고 용역대금을 받는 방식으로 수익을 창출할 계획을 세웠다. 최○원은 김○탁을 플레이그라운드의 명목상 대표이사로 내세웠으나, 주식 70%를 차명으로 보유하면서 플레이그라운드를 실질적으로 운영하였다. 

  (2) 플레이그라운드와 미르의 관계 피청구인의 지시로 미르가 설립된 뒤, 최○원은 자신이 추천한 사람이 미르의 임 원으로 임명되자 이들을 통하여 사업방향을 정하는 등 재단을 실질적으로 장악하였 다. 최○원은 2016년 1월 미르 사무총장이었던 이○한에게 미르와 플레이그라운드 사이에 용역계약을 체결할 것을 지시하였다. 미르는 총괄파트너 선정 작업을 진행하 면서 입찰과정에 플레이그라운드를 참여시키고 ‘비즈원’이라는 회사를 형식적으로 참여하도록 한 다음 플레이그라운드를 총괄파트너로 선정하였다. 플레이그라운드 는 미르와 프로젝트 계약 7건을 체결하고 1억 3,860만 원을 지급받았다. 

  (3) 케이티 인사 및 광고대행사 선정 개입 

  최○원은 차○택에게 케이티 광고 분야에서 일할 사람을 알아봐 달라고 부탁하여 이○수를 추천받았다. 피청구인은 2015년 1월경 안○범에게 홍보전문가인 이○수가 케이티에 채용될 수 있도록 하라고 지시하였다. 안○범은 케이티 회장 황○규에게 피청구인의 말을 전달하면서 이○수를 채용해 달라고 요구하였다. 케이티는 통상적 공모 절차를 거치지 않고 이○수에게 직접 연락하여 채용 절차를 진행하였고, 2015. 2. 16. 전무급인 브랜드지원센터장 자리를 새로 만들어 이○수를 채용하였다. 

  피청구인은 2015년 10월경 안○범에게 케이티 광고 쪽에 문제가 있다고 하는데 이○수를 그쪽으로 보낼 수 있는지 알아보라고 지시하였다. 안○범은 황○규에게 이○ 수의 보직 변경을 요구하였고, 케이티는 정기인사 시기가 아님에도 2015. 10. 6. 이○ 수의 직책을 광고업무를 총괄하는 담당 본부장으로 변경하였다. 

  한편, 피청구인은 2015년 8월경 안○범에게 신○성이 케이티에서 이○수와 함께 일할 수 있도록 하라는 취지의 지시를 하였다. 신○성은 최○원의 조카 이○헌의 지인인 김○수와 사실혼 관계에 있는 사람이다. 안○범은 황○규에게 피청구인의 지시를 전달하였고, 케이티는 2015. 12. 7. 상무보급 브랜드지원담당 자리를 새로 만들어 신○성을 채용하였다. 이후 신○성은 2016. 1. 25. 광고 담당으로 보직이 변경되어 이 ○수와 함께 일하게 되었다. 

  그 뒤 안○범은 이○수 등에게 플레이그라운드가 케이티의 광고대행사로 선정될 수 있도록 해 달라고 요청하였다. 케이티는 플레이그라운드를 광고대행사로 선정하 기 위하여 광고대행사 선정기준 중 광고실적을 요구하는 조건을 삭제하였고, 플레이 그라운드에서 제출한 서류의 일부가 사실과 달리 기재되어 있는 것을 발견하고도 플 레이그라운드를 광고대행사로 선정하였다. 플레이그라운드는 2016년에 케이티 광 고 7건(발주금액 총 68억 1,767만 원 상당)을 수주하였다. 

  (4) 현대자동차그룹 광고 계약 개입 

  피청구인은 2016년 2월경 안○범에게 플레이그라운드 소개자료가 든 봉투를 전달 하면서, 대기업에서 플레이그라운드에 도움을 줄 수 있도록 하라고 지시하였다. 안 ○범은 2016. 2. 15. 피청구인이 현대자동차 회장 정○구, 부회장 김○환과 독대한 뒤 헤어지는 자리에서 김○환에게 플레이그라운드 소개자료가 든 봉투를 전달하였다.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는 이례적으로 신생 광고회사인 플레이그라운드에 먼저 연락하여 2016년에 5건의 광고를 발주하고 제작비로 총 9억 1,807만 원을 지급하였 다.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는 통상적으로 이런 광고를 현대자동차 계열 광고회사 인 주식회사 이노션 등에 발주해 왔는데, 이들 기업에 양해를 구하고 플레이그라운 드에게 광고를 발주하였다. 


  사. 더블루케이 관련

  (1) 더블루케이 설립과 운영 

  최○원은 케이스포츠가 정부의 지원으로 사업을 수행하면 그 사업 경영을 위탁받 는 등의 방법으로 수익을 창출할 계획을 세우고 2016. 1. 13. 케이스포츠가 설립되기 하루 전인 12일 스포츠 경영 등을 목적으로 하는 더블루케이를 설립하였다. 더블루 케이의 명목상 대표이사는 조○민, 사내이사는 고○태였으나, 조○민은 주식포기각 서를 최○원에게 제출한 뒤 매월 최○원에게 결산보고를 하였다. 최○원은 더블루케 이 대표이사와 직원들의 채용 및 급여 수준을 직접 결정하고 자금지출을 결정하며 사업에 관해 지시하는 등 더블루케이를 실질적으로 운영하였다.

  (2) 더블루케이와 케이스포츠의 관계 최○원은 자신이 선발하여 채용한 케이스포츠의 노○일 부장과 박○영 과장에게 더블루케이 관련 업무를 하도록 지시하였다. 노○일과 박○영은 매주 적게는 2~3일, 많게는 매일 더블루케이 사무실로 출근하여 용역제안서 작성 등 더블루케이의 업무 를 수행하였다. 최○원은 더블루케이 사무실에서 수시로 회의를 주재하였는데, 이 회의에서는 더블루케이 사업뿐만 아니라 케이스포츠 업무 및 케이스포츠와 더블루 케이가 함께 추진하는 사업에 관하여서도 모두 논의가 이루어졌다. 최○원은 케이스 포츠와 더블루케이의 인력과 사업을 연계하여 운용하였고, 더블루케이는 2016. 3. 10.경 케이스포츠와 업무협약을 체결하여 케이스포츠가 수행하는 사업의 운영을 담 당할 근거를 마련하였다. 

  (3) 그랜드코리아레저 장애인 펜싱팀 창단 개입 피청구인은 2016. 1. 23. 안○범에게 그랜드코리아레저가 스포츠팀을 창단하고, 더 블루케이가 운영 자문 등을 할 수 있도록 그랜드코리아레저에 더블루케이를 소개하라고 지시하면서 더블루케이 대표이사의 이름과 연락처를 전달하였다. 안○범은 다 음날 그랜드코리아레저 대표이사 이○우에게 피청구인의 요구사항을 전달하고 더 블루케이 대표이사 조○민에게도 연락하였다. 또 안○범은 피청구인의 지시에 따라 2016. 1. 26. 문화체육관광부 제2차관 김○을 정○식과 조○민에게 소개시켜 주었다. 

  더블루케이의 조○민과 고○태는 2016년 1월 하순경 그랜드코리아레저에 80억 원 정도의 사업비가 드는 남녀 성인 배드민턴팀과 펜싱팀을 창단하는 사업에 관련한 용 역계약 제안서를 전달하였으나, 이○우는 사업 규모가 너무 커 수용하기 곤란하다는 뜻을 밝혔다. 김○은 이○우에게 가능한 한 긍정적으로 검토하라고 요구하면서, 그 랜드코리아레저와 더블루케이에게 일반인 팀 대신 장애인 팀을 창단하고 용역계약 대신 선수 관리 및 대리 계약(에이전트 계약)을 체결하는 방안을 제시하였다. 이에 따 라 그랜드코리아레저와 더블루케이는 2016. 2. 26. 그랜드코리아레저가 장애인 펜싱 팀을 창단하고 더블루케이가 그 선수들의 관리 등 업무를 맡기로 합의하였다. 

  (4) 포스코 펜싱팀 창단 개입 

  피청구인은 2016. 2. 22. 포스코 회장 권○준과 독대하면서 스포츠팀 창단을 권유 하였다. 안○범도 대통령 독대를 마친 권○준에게 체육과 관련하여 포스코가 역할을 해 달라고 요구하면서 더블루케이의 조○민을 만나보라고 하였다. 권○준은 정○성 으로부터 조○민의 연락처를 받아, 포스코 경영지원본부장 황○연에게 조○민을 만 나보라고 지시하였다. 이후 피청구인은 안○범에게 ‘포스코에서 스포츠팀을 창단하 는데 더블루케이가 자문을 해줄 수 있을 것이라고 권○준 회장에게 말해 놓았으니 잘 되고 있는지 확인해보라.’고 지시하기도 하였다. 

  더블루케이 관계자들은 2016. 2. 25. 포스코 측에 포스코가 여자 배드민턴팀을 창단하고 더블루케이가 운영을 담당하는 안을 전달하였으나, 황○연은 경영 적자와 다 른 스포츠팀이 이미 존재한다는 등의 이유로 거절의사를 밝혔다. 안○범은 2016. 2. 26. 정○식으로부터 이 사실을 보고받고 황○연에게 연락하여 통합 스포츠단 창단을 검토해달라고 요구하였다. 최○원은 2016년 3월 노○일에게 지시하여 포스코가 통 합 스포츠단을 창단하고 더블루케이가 운영을 담당하는 사업계획안을 만들어 포스 코에 전달하도록 하였다. 포스코 담당 임원은 2016년 3월 경 더블루케이에 통합 스포 츠단 창단의 어려움을 설명하고, 대신 계열회사인 주식회사 포스코 피앤에스 산하에 2017년부터 창단 비용 16억 원 상당의 펜싱팀을 창단하고 그 운영을 더블루케이에 맡기기로 하였다. 

  (5) 케이스포츠클럽 관련 이권 개입 

  최○원은 김○으로부터 문화체육관광부 작성의 2015. 12. 1.자 ‘종합형 스포츠클럽 운영현황 및 개선방안 보고’ 문건 등을 건네받아 이를 박○영에게 주면서 ‘한국형 선 진 스포츠클럽 문화 정착을 위한 케이스포츠클럽 활성화 방안 제안서’라는 문건을 작성하게 하였다. 박○영은 문화체육관광부의 문건을 참고하여 지역별로 운영 중인 ‘종합형 스포츠클럽 지원 사업’에 문제점이 있으므로 ‘케이스포츠클럽 컨트롤타워’ 를 새로 만들어 각 지역 스포츠클럽 운영과 관리를 총괄하도록 하는 방향으로 개선 해야 한다는 내용의 제안서를 작성하였다. 

  피청구인은 2016년 2월경 교육문화수석비서관 김○률에게 스포츠클럽 관련 예산 의 효율적 집행을 위하여 각 지역 스포츠클럽의 운영과 관리를 전담할 ‘컨트롤타워’ 를 설립하고, 컨트롤타워 운영에 케이스포츠가 관여하는 방안을 마련하여 시행하라 고 지시하였다. 김○률은 피청구인의 지시사항을 김○에게 전달하여 문화체육관광부에서 검토하도록 하였다. 김○은 문화체육관광부 내부 검토를 거쳐, 각 지역 스포 츠클럽의 운영을 지원하는 광역 거점 스포츠클럽을 새롭게 설치하는 방안을 마련하 여 시행하였다. 문화체육관광부는 ‘광역 거점 케이스포츠클럽’ 운영주체를 공모하는 절차를 진행하여 케이스포츠가 이 절차에 참여할 수 있게 하였다. 

  케이스포츠가 광역 거점 케이스포츠클럽의 운영주체로 지정되고 더블루케이가 케이스포츠에 대한 경영 자문을 하게 될 경우, 케이스포츠와 더블루케이를 실질적으 로 장악한 최○원은 광역 거점 케이스포츠클럽에 배정된 국가 예산 집행 과정에서 상당한 이득을 취할 수 있었을 것이다.

  (6) 롯데그룹의 케이스포츠 추가 출연 개입 

  최○원은 김○을 통해 정부가 전국에 5대 거점 체육시설을 건립하는 사업을 추진 하고 있다는 정보를 전달받고, 2016년 2월경 박○영에게 케이스포츠가 체육인재 육 성을 위해 전국 5대 거점 지역에 체육시설을 건립한다는 내용의 기획안을 마련하라 고 지시하였다. 박○영은 2016년 3월경 ‘5대 거점 체육인재 육성사업 기획안’을 작성 하였는데, 위 기획안에는 하남시에 있는 대한체육회의 부지를 1차 후보지로 하고 케 이스포츠가 더블루케이와 협력하여 체육시설 건립을 추진한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다. 

  피청구인은 2016. 3. 14. 롯데그룹 회장 신○빈을 독대하면서, 정부가 체육인재 육 성사업의 하나로 하남 거점을 포함하여 전국 5대 거점 지역에 체육시설을 건립하려 고 계획하고 있고 케이스포츠가 이를 추진할 것이니 지원해주기 바란다고 요청하였 다. 신○빈은 부회장 이○원에게 피청구인의 자금지원 요청 건을 처리하도록 지시하 였고, 이○원은 담당 임원들에게 케이스포츠 관계자들을 만나보라고 지시하였다. 또 피청구인은 면담 뒤 안○범에게도 롯데그룹이 하남시 체육시설 건립과 관련하여 75 억 원을 부담하기로 하였으니 그 진행상황을 챙겨보라고 지시하였다. 안○범은 정○ 식으로부터 관련 자료를 송부받거나 롯데그룹 임직원들과 수시로 연락하면서 75억 지원에 관한 진행상황을 점검하고 피청구인에게 이를 보고하였다. 

  최○원은 2016년 3월 중순경 정○식과 박○영 및 고○태에게 하남시 체육시설 건 립 사업과 관련하여 롯데그룹에 자금지원을 요청할 것을 지시하였다. 정○식과 박○ 영은 2016. 3. 17. 롯데그룹 임원을 만나 ‘5대 거점 체육인재 육성사업 기획안’을 제시 하면서 체육시설 건립에 필요한 자금 지원을 요청하였고, 박○영과 고○태는 2016. 3. 22. 체육시설 건설비 70억 원과 부대비용 5억 원 등 합계 75억 원의 지원을 요구하 였다. 롯데그룹 담당 임원들은 지원을 요구받은 금액의 절반 정도인 35억 원만 지원 하는 방안을 제시하기도 하였으나, 요구대로 따르는 것이 좋겠다는 이○원의 뜻에 따라 2016. 5. 25.부터 5. 31.까지 6개 계열사를 동원하여 케이스포츠에 70억 원을 송 금하였다. 


  아. 직권남용권리행사 및 강요 혐의 

  최○원과 안○범은 (1) 플레이그라운드의 케이티 광고대행사 선정 및 광고제작비 수령, 현대자동차 광고 수주, (2) 더블루케이의 그랜드코리아레저 장애인 펜싱팀과 포스코 펜싱팀 계약 체결, 롯데그룹의 케이스포츠에 대한 70억 원 추가 지원 등과 관 련하여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및 강요죄로 기소되었다. 검찰의 공소장에는 피청구 인이 최○원, 안○범과 공모하여 대통령의 직권과 경제수석비서관의 직권을 남용함 과 동시에 이에 두려움을 느낀 기업 임직원 등으로 하여금 의무 없는 일을 하도록 하 였다고 기재되어 있다. 


  자. 평가 

  (1) 공익실현의무 위반(헌법 제7조 제1항 등 위반) 

  ① 공무원은 대의민주제에서 주권자인 국민으로부터 국가권력의 행사를 위임받은 사람이므로 업무를 수행할 때 중립적 위치에서 공익을 위해 일해야 한다. 헌법 제 7조 제1항은 국민주권주의와 대의민주주의를 바탕으로 공무원을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로 규정하고 공무원의 공익실현의무를 천명하고 있다. 

  대통령은 행정부의 수반이자 국가 원수로서 가장 강력한 권한을 가지고 있는 공무원이므로 누구보다도 ‘국민 전체’를 위하여 국정을 운영해야 한다. 헌법 제69조는 대 통령이 취임에 즈음하여 ‘헌법을 준수’하고 ‘국민의 복리 증진’에 노력하여 ‘대통령 으로서의 직책을 성실히 수행’할 것을 선서하도록 함으로써 대통령의 공익실현의무를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있다. 대통령은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이므로 특정 정당, 자신이 속한 계급ㆍ종교ㆍ지역ㆍ사회단체, 자신과 친분 있는 세력의 특수한 이익 등으로부터 독립하여 국민 전체를 위하여 공정하고 균형 있게 업무를 수행할 의무가 있다(헌재 2004. 5. 14. 2004헌나1). 

  대통령의 공익실현의무는 국가공무원법 제59조, 공직자윤리법 제2조의2 제3항, ‘부패방지 및 국민권익위원회의 설치와 운영에 관한 법률’(다음부터 ‘부패방지권익 위법’이라 한다) 제2조 제4호 가목, 제7조 등 법률을 통해 구체화되고 있다. 국가공무 원법 제59조는 “공무원은 국민 전체의 봉사자로서 친절하고 공정하게 직무를 수행하 여야 한다.”고 하여 공정한 직무수행의무를 규정하고 있고, 공직자윤리법 제2조의2 제3항은 “공직자는 공직을 이용하여 사적 이익을 추구하거나 개인이나 기관ㆍ단체 에 부정한 특혜를 주어서는 아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부패방지권익위법은 제2조 제4호 가목에서 “공직자가 직무와 관련하여 그 지위 또는 권한을 남용하거나 법령을 위반하여 자기 또는 제3자의 이익을 도모하는 행위”를 부패행위로 규정하고, 제7조 에서 “공직자는 법령을 준수하고 친절하고 공정하게 집무하여야 하며 일체의 부패행 위와 품위를 손상하는 행위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하여 공직자의 청렴의무를 규 정하고 있다. 

  ② 피청구인은 최○원이 추천한 인사를 다수 공직에 임명하였고 이렇게 임명된 일 부 공직자는 최○원의 이권 추구를 돕는 역할을 하였다. 또한, 피청구인은 사기업으 로부터 재원을 마련하여 미르와 케이스포츠를 설립하도록 지시하였고, 대통령의 지 위와 권한을 이용하여 기업들에게 출연을 요구하였다. 이어 최○원이 추천하는 사람 들을 미르와 케이스포츠의 임원진이 되도록 하여 최○원이 두 재단을 실질적으로 장 악할 수 있도록 해 주었다. 그 결과 최○원은 자신이 실질적으로 운영하는 플레이그 라운드와 더블루케이를 통해 위 재단을 이권 창출의 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었다.

  한편, 피청구인은 기업에 대하여 특정인을 채용하도록 요구하고 특정 회사와 계 약을 체결하도록 요청하는 등 대통령의 지위와 권한을 이용하여 사기업 경영에 관여 하였다. 이에 대하여 피청구인은 우수 중소기업 지원이나 우수 인재 추천 등 정부 정 책에 따른 업무 수행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대통령이 특정 개인의 사기업 취 업을 알선하는 것은 이례적인 일일 뿐만 아니라, 피청구인이 채용을 요구한 사람들 은 모두 최○원과 관계있는 사람들로 채용된 기업에서 최○원의 이권 창출을 돕는 역할을 하였다. 또 피청구인이 우수 중소기업으로 알고 지원하였다는 플레이그라운 드나 더블루케이는 모두 최○원이 미르와 케이스포츠를 이용하여 이권을 창출하려 는 의도로 경영하던 회사이고, 케이디코퍼레이션도 최○원의 지인이 경영하는 회사이다. 그 중 더블루케이는 직원이 대표이사를 포함하여 3명밖에 없고 아무런 실적도 없는 회사인데 이런 회사를 우수 중소기업으로 알고 지원하였다는 피청구인의 주장은 납득할 수 없다. 

  그 밖에 피청구인은 스포츠클럽 개편과 같은 최○원의 이권과 관련된 정책 수립을 지시하였고, 롯데그룹으로 하여금 5대 거점 체육인재 육성사업을 위한 시설 건립과 관련하여 케이스포츠에 거액의 자금을 출연하도록 하였다. 

  ③ 피청구인의 이러한 일련의 행위는 최○원 등의 이익을 위해 대통령으로서의 지 위와 권한을 남용한 것으로서 공정한 직무수행이라 할 수 없다. 피청구인은 헌법 제7 조 제1항, 국가공무원법 제59조, 공직자윤리법 제2조의2 제3항, 부패방지권익위법 제2조 제4호 가목, 제7조를 위배하였다. 

  ④ 피청구인은 최○원이 사사로운 이익을 추구하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을 뿐만 아 니라, 최○원이 여러 가지 문제 있는 행위를 한 것은 그와 함께 일하던 고○태 등에게 속거나 협박당하여 한 것이라는 취지의 주장을 한다. 그러나 피청구인이 최○원과 함께 위에서 본 것처럼 미르와 케이스포츠를 설립하고 최○원 등이 운영하는 회사에 이익이 돌아가도록 적극적으로 지원한 사실은 증거에 의하여 분명히 인정된다. 피청 구인이 플레이그라운드ㆍ더블루케이ㆍ케이디코퍼레이션 등이 최○원과 관계있는 회사라는 사실을 몰랐다고 하더라도 대통령으로서 특정 기업의 이익 창출을 위해 그 권한을 남용한 것은 객관적 사실이므로, 헌법과 국가공무원법 등 위배에 해당함은 변함이 없다. 또 최○원이 위와 같은 행위를 한 동기가 무엇인지 여부는 피청구인의 법적 책임을 묻는 데 아무런 영향이 없으므로, 최○원이 고○태 등에게 속거나 협박 을 당하였는지 여부는 이 사건 판단과 상관이 없다. 

  (2) 기업의 자유와 재산권 침해(헌법 제15조, 제23조 제1항 등 위반) 

  ① 헌법 제15조는 기업의 자유로운 운영을 내용으로 하는 기업경영의 자유를 보장 하고, 헌법 제23조 제1항은 모든 국민의 재산권을 보장한다(헌재 2009. 5. 28. 2006헌 바86; 헌재 2015. 9. 24. 2013헌바393 참조). 또 헌법 제37조 제2항은 기본권은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다는 한계를 설정하고 있다. 

  ② 피청구인은 직접 또는 경제수석비서관을 통하여 대기업 임원 등에게 미르와 케 이스포츠에 출연할 것을 요구하였다. 기업들은 미르와 케이스포츠의 설립 취지나 운 영 방안 등 구체적 사항은 전혀 알지 못한 채 재단 설립이 대통령의 관심사항으로서 경제수석비서관이 주도하여 추진된다는 점 때문에 서둘러 출연 여부를 결정하였다. 재단이 설립된 이후에도 출연 기업들은 재단의 운영에 관여하지 못하였다. 

  대통령의 재정ㆍ경제 분야에 대한 광범위한 권한과 영향력, 비정상적 재단 설립 과정과 운영 상황 등을 종합하여 보면, 피청구인으로부터 출연 요구를 받은 기업으 로서는 이를 수용하지 않을 수 없는 부담과 압박을 느꼈을 것이고 이에 응하지 않을 경우 기업 운영이나 현안 해결과 관련하여 불이익이 있을지 모른다는 우려 등으로 사실상 피청구인의 요구를 거부하기 어려웠을 것으로 보인다. 기업이 피청구인의 요구를 수용할지를 자율적으로 결정하기 어려웠다면, 피청구인의 요구는 임의적 협력 을 기대하는 단순한 의견제시나 권고가 아니라 사실상 구속력 있는 행위라고 보아야 한다. 

  피청구인이 ‘문화융성’이라는 국정과제 수행을 위해 미르와 케이스포츠의 설립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면, 공권력 개입을 정당화할 수 있는 기준과 요건을 법률로 정하고 공개적으로 재단을 설립했어야 했다. 그런데 이와 반대로 비밀리에 대통령의 권한을 이용하여 기업으로 하여금 재단법인에 출연하도록 한 피청구인의 행위는 해 당 기업의 재산권 및 기업경영의 자유를 침해한 것이다. 

  ③ 피청구인은 롯데그룹에 최○원의 이권 사업과 관련 있는 하남시 체육시설 건립 사업 지원을 요구하였고, 안○범으로 하여금 사업 진행 상황을 수시로 점검하도록 하였다. 피청구인은 현대자동차그룹에 최○원의 지인이 경영하는 회사와 납품계약 을 체결하도록 요구하였고, 케이티에는 최○원과 관계있는 인물의 채용과 보직 변경을 요구하였다. 그 밖에도 피청구인은 기업에 스포츠팀 창단 및 더블루케이와의 계약 체결을 요구하였고, 그 과정에서 고위공직자인 안○범이나 김○을 이용하여 영향 력을 행사하였다. 

  피청구인의 요구를 받은 기업은 현실적으로 이에 따를 수밖에 없는 부담과 압박을 느꼈을 것으로 보이고 사실상 피청구인의 요구를 거부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피청구 인은 대통령으로서는 이례적으로 사기업 임원의 임용에 개입하고 계약 상대방을 특 정하는 방식으로 기업 경영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였으며, 해당 기업들은 피청구인의 요구에 따르기 위해 통상의 과정에 어긋나게 인사를 시행하고 계약을 체결하였다. 

  피청구인의 이와 같은 일련의 행위들은 기업의 임의적 협력을 기대하는 단순한 의 견제시나 권고가 아니라 구속적 성격을 지닌 것으로 평가된다. 만약 피청구인이 체 육진흥ㆍ중소기업 육성ㆍ인재 추천 등을 위해 이러한 행위가 필요하다고 판단했을 지라도 법적 근거와 절차를 따랐어야 한다. 아무런 법적 근거 없이 대통령의 권한을 이용하여 기업의 사적 자치 영역에 간섭한 피청구인의 행위는 헌법상 법률유보 원칙을 위반하여 해당 기업의 재산권 및 기업경영의 자유를 침해한 것이다. 

  (3) 비밀엄수의무 위배 

  국가공무원법 제60조에 따라 공무원은 직무상 알게 된 비밀을 엄수하여야 한다. 비밀엄수의무는 공무원이 국민전체에 대한 봉사자라는 지위에 기하여 부담하는 의무이다(헌재 2013. 8. 29. 2010헌바354등 참조). 특히 대통령은 고도의 정책적 결정을 내리는 과정에서 중요한 국가기밀을 다수 알게 되므로, 대통령의 비밀엄수의무가 가지는 중요성은 다른 어떤 공무원의 경우보다 크고 무겁다.

  피청구인의 지시와 묵인에 따라 최○원에게 많은 문건이 유출되었고, 여기에는 대 통령의 일정ㆍ외교ㆍ인사ㆍ정책 등에 관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이런 정보는 대통령의 직무와 관련된 것으로 일반에 알려질 경우 행정 목적을 해할 우려가 있고 실질 적으로 비밀로 보호할 가치가 있으므로 직무상 비밀에 해당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청구인은 최○원에게 위와 같은 문건이 유출되도록 지시 또는 방치하였으므로, 이는 국가공무원법 제60조의 비밀엄수의무 위배에 해당한다. 


  7. 공무원 임면권 남용 여부 

  가. 문화체육관광부 소속 공무원에 대한 문책성 인사 

  (1) 최○원은 딸 정유라가 2013. 4. 14. 상주국제승마장에서 개최된 한국마사회컵 전국 승마대회에서 준우승에 그치자 판정에 이의를 제기하였다. 교육문화수석비서 관 모○민은 2013년 7월경 문화체육관광부 담당과장으로 하여금 대한승마협회 박○ 오를 만나 협회의 문제점을 확인하라는 정○성의 말을 듣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유○룡에게 그 뜻을 전달하면서 대한승마협회의 비리를 조사하라고 하였다. 유○룡 은 문화체육관광부 체육정책국 국장 노○강과 체육정책과 과장 진○수에게 위 협회 에 대한 조사를 지시하였다. 노○강과 진○수는 대한승마협회를 조사한 뒤 박○오와 그에게 반대하는 협회 사람들 모두 문제가 있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작성하여 유○룡을 거쳐 모○민에게 보고하였고, 모○민은 이 내용을 피청구인에게 보고하였다. 

  유○룡은 2013. 7. 23. 국무회의에서 ‘체육단체 운영비리 및 개선방안’을 보고하였 고, 문화체육관광부는 체육 단체 운영실태 전반에 대한 감사에 착수하는 등 후속 조 치를 취하였다. 한편, 피청구인은 2013년 8월경 정○성에게 체육계 비리 척결에 진척 이 없는 이유를 파악하라고 지시하였고, 정○성은 이를 대통령비서실 공직기강비서관에게 전달하였다. 대통령비서실 민정수석비서관 홍○식은 모○민에게 공직기강 비서관의 조사 결과를 알려주면서 ‘노○강과 진○수는 체육 개혁 의지가 부족하고 공무원으로서의 품위에 문제가 있다’는 취지의 언급을 하였다. 

  그 뒤 피청구인은 모○민을 통하여 유○룡에게 ‘대한승마협회를 포함한 체육계 비리에 대한 구체적 대책’을 주제로 대면 보고하라고 지시하였고, 유○룡은 2013. 8. 21. 모○민이 배석한 자리에서 피청구인에게 보고하였다. 그 자리에서 피청구인은 노○ 강과 진○수를 문책하라는 취지의 지시를 하였다. 유○룡은 정기 인사에 맞추어 노 ○강과 진○수에 대한 인사를 하려 하였으나, 모○민으로부터 피청구인이 노○강과 진○수에 대한 문책 여부와 그 결과를 확인하고자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2013. 9. 2. 경 이들에 대한 문책성 인사를 시행하였다. 

  그로부터 약 2년 뒤인 2016년 4월경 피청구인은 노○강이 국립중앙박물관 교육문 화교류단장으로 근무 중인 사실을 확인하고, 교육문화수석비서관 김○률에게 노○ 강을 산하단체로 보내라는 취지의 지시를 하였다. 김○률은 피청구인의 지시내용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김○덕에게 전달하였으며, 노○강은 2016. 5. 31. 명예퇴직하였다. 

  (2) 피청구인은 2014년 7월경 후임 장관을 지명하지 않은 상태에서 유○룡을 문화체육관광부장관직에서 면직하였다. 이어 대통령비서실장 김○춘은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후임으로 김○덕이 임명된 직후인 2014년 9월경 문화체육관광부 제1차관 김○ 범에게 문화체육관광부 소속 1급 공무원 6명으로부터 사직서를 받으라고 지시하였 다. 그 뒤 2014년 10월경 위 6명의 공무원 중 3명의 사직서가 수리되었다. 


  나. 판단 

  청구인은 피청구인이 최○원 등의 사익 추구에 방해되는 노○강과 진○수의 문책 성 인사를 지시하고 유○룡을 면직하는 한편 1급 공무원에게 사직서를 제출하도록 압력을 행사하여 직업공무원제도의 본질을 침해하고 공무원 임면권을 남용하였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위에서 본 사실만으로는 피청구인이 노○강과 진○수에 대하여 문책성 인사를 하도록 지시한 이유가 이들이 최○원의 사익 추구에 방해가 되기 때 문이었다고 보기는 부족하고, 달리 이 사건에서 이러한 사실을 인정할 수 있는 증거 가 없다. 또 피청구인이 유○룡을 면직한 이유나 대통령비서실장이 1급 공무원 6인 으로부터 사직서를 제출받도록 지시한 이유도 이 사건에서 제출된 증거만으로는 분 명하지 않다. 따라서 이 부분 소추사유는 받아들일 수 없다. 


  8. 언론의 자유 침해 여부 

  가. 세계일보 사장 해임 등 

  세계일보는 2014. 11. 24.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실에서 정○회가 정부 고위직 인 사에 개입한다는 정보를 입수하여 감찰 조사를 벌였다고 보도하였다. 이어 28일에는 대통령비서실에서 작성된 ‘청 비서실장 교체설 등 관련 브이아이피(VIP) 측근(정○ 회) 동향’이라는 문건 등 이른바 ‘정○회 문건’을 공개하였다. 이 문건은 2014. 1. 6. 공 직기강비서관실에서 작성된 것으로, 최○원의 남편 정○회가 대통령비서실 소속 공무원을 포함한 이른바 ‘십상시’라고 불리는 사람들과 대통령의 국정 운영과 청와대 내부상황을 확인하고 의견을 제시한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세계일보의 이 보도 이후 피청구인은 2014. 12. 1.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청와대 문 건의 외부 유출은 국기문란 행위이고 검찰이 철저하게 수사해서 진실을 밝혀야 한다 고 하며 문건 유출을 비판하였다. 그 뒤 2015. 1. 31. 세계일보를 실질적으로 운영하는 통일교의 한○자 총재는 조○규를 대표이사직에서 해임한다고 통고하였고, 조○규 는 2015. 2. 27. 해임되었다. 


  나. 판단

   피청구인의 청와대 문건 유출에 대한 비판 발언 등을 종합하면 피청구인이 세계일 보의 정○회 문건 보도에 비판적 입장을 표명하였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입 장 표명만으로 세계일보의 언론의 자유를 침해하였다고 볼 수는 없다. 

  청구인은 청와대 고위관계자가 한○자에게 조○규의 해임을 요구하였다고 주장 하나, 청와대 고위관계자 중 누가 해임을 요구하였는지는 밝히지 못하고 있다. 조○ 규와 세계일보 기자 조○일이 조○규의 해임에 청와대의 압력이 있었다는 취지로 증 언하고 있으나 구체적으로 누가 압력을 행사하였는지는 알지 못한다고 진술하였다. 또한, 주식회사 세계일보에 대한 사실조회결과, 조○규가 세계일보를 상대로 손해배 상청구 소송을 제기하였다가 취하한 경위, 그리고 세계일보가 조○규를 상대로 명예 훼손을 이유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한 경위 등에 비추어 볼 때, 조○규의 대표 이사직 해임에 피청구인이 관여하였다고 인정하기에는 증거가 부족하다. 따라서 이 부분 소추사유도 받아들일 수 없다.


  9. 생명권 보호의무 등 위반 여부 

  가. 세월호 침몰 경과 

  여객선 세월호는 수학여행을 가는 단원고등학교 학생 325명을 포함한 승객 443명 과 승무원 33명 등 476명을 태우고 2014. 4. 15. 인천 연안여객터미널에서 제주도로 출항하였다. 세월호는 항해 중 2014. 4. 16. 08:48경 전남 진도군 조도면 병풍도 북방 1.8해리 해상에서 선체가 왼쪽으로 기울어지기 시작하였다. 세월호 승객이 08:54경 119로 사고 사실을 신고하였고 이 신고는 목포해양경찰서 상황실에 전달되었으며, 세월호 항해사 강원식도 08:55경 제주 해상교통관제센터에 구조를 요청하였다. 세월호 승무원은 08:52경부터 09:50경까지 승객들에게 구명조끼를 입고 배 안에서 기다 리라는 안내방송을 여러 차례 하였다. 

  목포해양경찰서 소속 경비정 123정은 09:30경 사고현장 1마일 앞 해상에 도착하였 는데, 세월호는 09:34경 이미 약 52도 기울어져 복원력을 상실하였다. 123정은 세월 호에 접근하여 선장 이○석과 일부 승무원을 구조하였고, 09:30경부터 09:45경 사이 에는 해양경찰 소속 헬기도 사고 현장에 도착하여 승객들을 구조하였다. 그런데 안 내방송에 따라 배 안에서 기다리고 있던 승객들에게 퇴선안내가 이루어지지 않았고, 123정의 승조원들도 세월호 승객에게 탈출하도록 안내하거나 퇴선을 유도하지 않았다. 10:21경까지 해경의 선박과 헬기 및 인근에 있던 어선 등이 모두 172명을 구조하 였으나, 승객 및 승무원 중 304명은 배 안에서 탈출하지 못하였고 이들은 모두 사망 하거나 실종되었다. 

  당일 날씨가 맑고 파도가 잔잔하였으며 사고 무렵 해수 온도는 12.6도 정도였다. 123정 등 현장에 도착한 구조대가 승객들에게 퇴선안내를 신속하게 하였다면 더 많 은 승객을 구조하여 피해를 크게 줄일 수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나. 피청구인의 대응 

 피청구인은 세월호가 침몰된 날 청와대 본관 집무실로 출근하지 않고 관저에 머물 러 있었다. 피청구인은 10:00경 국가안보실로부터 세월호가 침수 중이라는 서면 보고를 받고 국가안보실장 김○수에게 전화하여 ‘단 한 명의 인명 피해도 발생하지 않 도록 할 것’을 지시했다고 주장한다. 김○수는 당시 피청구인에게 텔레비전을 통해 사고보도를 볼 것을 조언하였다고 국회에서 증언하였다. 피청구인은 10:22경과 10:30경 김○수와 해양경찰청장에게 전화하여 인명 구조를 지시하였다고 주장한다. 

  그날 11:01경부터 세월호에 승선한 단원고등학교 학생이 모두 구조되었다고 사실 과 다른 보도가 방송되기 시작했는데, 11:19 에스비에스가 정정보도를 시작하여 11:50경에는 대부분의 방송사가 오보를 정정하였다. 당시 국가안보실은 현장에서 구 조를 지휘하는 해양경찰과 연락을 주고받아 구조가 순조롭지 못한 사실을 알고 있었 고 학생 전원이 구조되었다는 방송이 정확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피청구인은 10:40경부터 12:33경까지 국가안보실과 사회안전비서관으로부터 수 차례 보고서를 받아 보았고, 11:23경 국가안보실장 김○수로부터 전화 보고도 받았 다고 주장한다. 피청구인의 주장과 같이 비서실의 보고서를 받아 보고 비서진과 통 화하였다면 당시 선실에 갇혀 탈출하지 못한 학생들이 많았던 당시의 심각한 상황을 알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피청구인은 11:34경 외국 대통령 방한시기의 재조정에 관한 외교안보수석 실의 보고서를 검토하고, 11:43경 자율형 사립고등학교의 문제점에 관한 교육문화수 석실의 보고서를 검토하는 등 일상적 직무를 수행하였다고 주장하고 있다. 피청구인 이 제출한 통화기록에 따르면 피청구인은 12:50경 고용복지수석비서관 최○영과 10분간 통화하였는데, 당시 기초연금법에 관하여 이야기를 나누었다고 한다. 

  한편, 피청구인은 13:07경 구조된 사람이 370명에 이른다고 잘못 계산된 사회안전 비서관의 보고서를 받았고, 13:13경 국가안보실장도 피청구인에게 전화로 370명이 구조된 것으로 잘못 보고하였다고 한다. 피청구인은 14:11경 국가안보실장에게 정확 한 구조상황을 확인하도록 지시하였고, 14:50경 구조인원이 잘못 계산되었다는 보고 를 받고 비로소 인명 피해가 심각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그 무렵 중앙재난안 전대책본부 방문을 지시하게 되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다. 생명권 보호의무 위반 여부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 (헌법 제10조). 생명ㆍ신체의 안전에 관한 권리는 인간의 존엄과 가치의 근간을 이루 는 기본권이고, 국민의 생명ㆍ신체의 안전이 위협받거나 받게 될 우려가 있는 경우 국가는 그 위험의 원인과 정도에 따라 사회ㆍ경제적 여건과 재정사정 등을 감안하여 국민의 생명ㆍ신체의 안전을 보호하기에 필요한 적절하고 효율적인 입법ㆍ행정상 의 조치를 취하여 그 침해의 위험을 방지하고 이를 유지할 포괄적 의무를 진다(헌재 2008. 12. 26. 2008헌마419등 참조). 

  피청구인은 행정부의 수반으로서 국가가 국민의 생명과 신체의 안전 보호의무를 충실하게 이행할 수 있도록 권한을 행사하고 직책을 수행하여야 하는 의무를 부담한다. 하지만 국민의 생명이 위협받는 재난상황이 발생하였다고 하여 피청구인이 직접 구조 활동에 참여하여야 하는 등 구체적이고 특정한 행위의무까지 바로 발생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세월호 참사로 많은 국민이 사망하였고 그에 대한 피청구인의 대응 조치에 미흡하고 부적절한 면이 있었다고 하여 곧바로 피청구인이 생명권 보호의무를 위반하였다고 인정하기는 어렵다. 그 밖에 세월호 참사와 관련하여 피청구인이 생명권 보호의무를 위반하였다고 인정할 수 있는 자료가 없다. 


  라. 성실한 직책수행의무 위반 여부 

  헌법 제69조는 대통령의 취임 선서를 규정하면서 대통령으로서 직책을 성실히 수행할 의무를 언급하고 있다. 헌법 제69조는 단순히 대통령의 취임 선서의 의무만 규 정한 것이 아니라 선서의 내용을 명시적으로 밝힘으로써 헌법 제66조 제2항 및 제3 항에 따라 대통령의 직무에 부과되는 헌법적 의무를 다시 한 번 강조하고 그 내용을 구체화하는 규정이다. 

  대통령의 ‘직책을 성실히 수행할 의무’는 헌법적 의무에 해당하지만, ‘헌법을 수호 해야 할 의무’와는 달리 규범적으로 그 이행이 관철될 수 있는 성격의 의무가 아니므로 원칙적으로 사법적 판단의 대상이 되기는 어렵다. 대통령이 임기 중 성실하게 직책을 수행하였는지 여부는 다음 선거에서 국민의 심판의 대상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대통령 단임제를 채택한 현행 헌법 하에서 대통령은 법적으로 뿐만 아니라 정치적으 로도 국민에 대하여 직접적으로는 책임을 질 방법이 없고, 다만 대통령의 성실한 직책수행 여부가 간접적으로 그가 소속된 정당에 대하여 정치적 반사이익 또는 불이익을 가져다 줄 수 있을 뿐이다. 

  헌법 제65조 제1항은 탄핵사유를 ‘헌법이나 법률에 위배한 경우’로 제한하고 있고,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절차는 법적 관점에서 단지 탄핵사유의 존부만을 판단하는 것이므로, 이 사건에서 청구인이 주장하는 것과 같은 세월호 참사 당일 피청구인이 직책을 성실히 수행하였는지 여부는 그 자체로 소추사유가 될 수 없어, 탄핵심판절 차의 판단대상이 되지 아니한다(헌재 2004. 5. 14. 2004헌나1 참조). 


  마. 결론 

  이 부분 소추사유도 받아들이지 아니한다.


  10. 피청구인을 파면할 것인지 여부 

  가. 피청구인은 최○원에게 공무상 비밀이 포함된 국정에 관한 문건을 전달했고, 공직자가 아닌 최○원의 의견을 비밀리에 국정 운영에 반영하였다. 피청구인의 이러 한 위법행위는 일시적ㆍ단편적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고 피청구인이 대통령으로 취임한 때부터 3년 이상 지속되었다. 피청구인은 최○원이 주로 말씀자료나 연설문 의 문구 수정에만 관여하였다고 주장하지만, 대통령의 공적 발언이나 연설은 정부 정책 집행의 지침이 되고 외교관계에도 영향을 줄 수 있는 것이므로 말씀자료라고 하여 가볍게 볼 것이 아니다. 더구나 피청구인의 주장과 달리 최○원은 공직자 인사 와 대통령의 공식일정 및 체육정책 등 여러 분야의 국가정보를 전달받고 국정에 개 입하였다. 

  또한 피청구인은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권한을 사적 용도로 남용하였다. 이는 결 과적으로 최○원의 사익 추구를 도와 준 것으로서 적극적ㆍ반복적으로 이루어졌다. 특히, 대통령의 지위를 이용하거나 국가의 기관과 조직을 동원하였다는 점에서 그 법 위반의 정도가 매우 엄중하다. 

  미르와 케이스포츠 설립과 관련하여 피청구인은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모금하였 다고 주장하지만 기업들이 스스로 결정할 수 있었던 사항은 거의 없었다. 기업들은 출연금이 어떻게 쓰일 것인지 알지도 못한 채 전경련에서 정해 준 금액을 납부하기 만 하고 재단 운영에는 관여하지 못하였다. 미르와 케이스포츠는 피청구인의 지시로 긴급하게 설립되었지만 막상 설립된 뒤 문화와 체육 분야에서 긴요한 공익 목적을 수행한 것도 없다. 오히려 미르와 케이스포츠는 실질적으로 최○원에 의해 운영되면 서 주로 최○원의 사익 추구에 이용되었다. 

  국민으로부터 직접 민주적 정당성을 부여받고 주권 행사를 위임받은 대통령은 그 권한을 헌법과 법률에 따라 합법적으로 행사하여야 함은 물론, 그 성질상 보안이 요 구되는 직무를 제외한 공무 수행은 투명하게 공개하여 국민의 평가를 받아야 한다. 그런데 피청구인은 최○원의 국정 개입을 허용하면서 이 사실을 철저히 비밀에 부쳤 다. 피청구인이 행정부처나 대통령비서실 등 공적 조직이 아닌 이른바 비선 조직의 조언을 듣고 국정을 운영한다는 의혹이 여러 차례 제기되었으나, 그때마다 피청구인 은 이를 부인하고 의혹 제기 행위만을 비난하였다. 

  2014년 11월 세계일보가 정○회 문건을 보도하였을 때에도 피청구인은 비선의 국 정 개입 의혹은 거짓이고 청와대 문건 유출이 국기문란 행위라고 비판하였다. 이와 같이 피청구인이 대외적으로는 최○원의 존재 자체를 철저히 숨기면서 그의 국정 개 입을 허용하였기 때문에, 권력분립원리에 따른 국회 등 헌법기관에 의한 견제나 언 론 등 민간에 의한 감시 장치가 제대로 작동될 수 없었다. 

  국회와 언론의 지적에도 불구하고 피청구인은 잘못을 시정하지 않고 오히려 사실 을 은폐하고 관련자를 단속하였기 때문에, 피청구인의 지시에 따라 일한 안○범과 김○ 등 공무원들이 최○원과 공모하여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를 저질렀다는 등 부패범죄 혐의로 구속 기소되는 중대한 사태로까지 이어지게 되었다. 피청구인이 최 ○원의 국정 개입을 허용하고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권한을 남용하여 최○원 등의 사익 추구를 도와주는 한편 이러한 사실을 철저히 은폐한 것은, 대의민주제의 원리 와 법치주의의 정신을 훼손한 행위로서 대통령으로서의 공익실현의무를 중대하게 위반한 것이다. 

  나. 피청구인은 최○원의 국정 개입 등이 문제로 대두되자 2016. 10. 25. 제1차 대국 민 담화를 발표하면서 국민에게 사과하였으나, 그 내용 중 최○원이 국정에 개입한 기간과 내용 등은 객관적 사실과 일치하지 않는 것으로 진정성이 부족하였다. 이어 진 제2차 대국민 담화에서 피청구인은 제기된 의혹과 관련하여 진상 규명에 최대한 협조하겠다고 하고 검찰 조사나 특별검사에 의한 수사도 수용하겠다고 발표하였다. 그러나 검찰이나 특별검사의 조사에 응하지 않았고 청와대에 대한 압수수색도 거부 하여 피청구인에 대한 조사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위와 같이 피청구인은 자신의 헌법과 법률 위배행위에 대하여 국민의 신뢰를 회복 하고자 하는 노력을 하는 대신 국민을 상대로 진실성 없는 사과를 하고 국민에게 한 약속도 지키지 않았다. 이 사건 소추사유와 관련하여 피청구인의 이러한 언행을 보 면 피청구인의 헌법수호의지가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다. 이상과 같은 사정을 종합하여 보면, 피청구인의 이 사건 헌법과 법률 위배행위 는 국민의 신임을 배반한 행위로서 헌법수호의 관점에서 용납될 수 없는 중대한 법 위배행위라고 보아야 한다. 그렇다면 피청구인의 법 위배행위가 헌법질서에 미치게 된 부정적 영향과 파급 효과가 중대하므로, 국민으로부터 직접 민주적 정당성을 부여받은 피청구인을 파면함으로써 얻는 헌법수호의 이익이 대통령 파면에 따르는 국가적 손실을 압도할 정도로 크다고 인정된다. 


  11. 결론 

  피청구인을 대통령직에서 파면한다. 이 결정은 아래 12. 재판관 김이수, 재판관 이 진성의 보충의견과 13. 재판관 안창호의 보충의견이 있는 외에는 재판관 전원의 일치된 의견에 따른 것이다. 



  12. 재판관 김이수, 재판관 이진성의 보충의견 

  피청구인의 생명권 보호의무 위반부분을 인정하지 못하는 것은 다수의견과 같다. 

  우리는 피청구인이 참사 당일 시시각각 급변하는 상황에 관한 파악과 대처 과정에 서 자신의 법적 의무를 제대로 이행하지 아니함으로써 헌법상 대통령의 성실한 직책 수행의무 및 국가공무원법상 성실의무를 위반하였으나, 이 사유만으로는 파면사유 를 구성하기 어렵다고 판단하므로 다음과 같이 보충의견을 밝힌다. 


  가. 성실한 직책수행의무 위반이 탄핵 사유가 되는지 

  (1) 헌법 제69조는 대통령 취임선서의 내용으로 ‘대통령으로서의 직책을 성실히 수행할 의무’를 규정한다. 헌법 제69조는 헌법 제66조 제2항 및 제3항에 의하여 대통 령의 직무에 부과되는 헌법적 의무를 다시 강조하고 내용을 구체화하는 규정이므로, 대통령의 ‘성실한 직책수행의무’는 헌법적 의무에 해당한다(헌재 2004. 5. 14. 2004헌 나1 참조). 헌법재판소는 대통령의 ‘성실한 직책수행의무’는 규범적으로 이행이 관 철될 수 있는 성격의 의무가 아니므로 원칙적으로 사법적 판단의 대상이 될 수 없다 고 하면서, 정치적 무능력이나 정책결정상의 잘못 등 직책수행의 성실성 여부는 그 자체로서 소추사유가 될 수 없다고 하였다(헌재 2004. 5. 14. 2004헌나1 참조). 그러나 직책수행의 성실성에 관한 추상적 판단에 그치지 않고, 헌법이나 법률에 따라 대통 령에게 성실한 직책수행의무가 구체적으로 부여되는 경우에 그 의무 위반은 헌법 또 는 법률 위반이 되어 사법 심사의 대상이 될 수 있으므로, 탄핵 사유를 구성한다.

  (2) 국가공무원법 제56조는 ‘모든 공무원은 성실히 직무를 수행하여야 한다’라고 공무원의 성실 의무를 규정하고 있어 어느 공무원이든 이를 위반한 경우 징계사유가 된다(같은 법 제78조 제1항, ‘공무원 징계령 시행규칙’ 별표 1). 국가공무원법 제56조 는 대통령을 포함한 모든 공무원에게 동일하게 적용되고, 대통령이라고 하여 이를 달리 적용하여야 할 명문 규정이나 해석상 근거는 없다. 따라서 대통령도 국가공무 원법 제56조의 성실 의무에 위반한 경우에는 사법적 판단이 가능하고 대통령에게도 헌법과 법률이 정하는 책임을 물어야 한다. 그렇지 아니하면 공무원들에게는 징계 사유가 되는 행위를 최고위 공무원인 대통령이 행한 경우에는 아무런 법적 책임을 부담하지 않는 결과가 되어 형평에 반하기 때문이다. 

  (3) 대통령은 국가원수로서 국가의 독립, 영토의 보전, 국가의 계속성과 헌법을 수 호할 책무를 지고(헌법 제66조 제1항, 제2항), 국가의 제1 임무는 개인의 생명과 안전 을 보장하는 일이다. 우리 헌법은 “우리들과 우리들의 자손의 안전…을 영원히 확보 할 것”(전문)과, “국가는 재해를 예방하고 그 위험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제34조 제6항)고 선언하고 있다. 국가를 대표하는 국가원수는 이 러한 국가의 의무 이행에 관한 최고책임자에 해당한다. 

  따라서 국가주권 또는 국가를 구성하는 정치ㆍ경제ㆍ사회ㆍ문화 체계 등 국가의 핵심요소나 가치, 다수 국민의 생명과 안전 등에 중대한 위해가 가해질 가능성이 있 거나 가해지고 있는 ‘국가위기’ 상황이 발생한 경우, 국가원수인 대통령은 국가위기 상황에 대한 시의적절한 조치를 취하여 국가와 국민을 보호할 구체적인 작위의무를 부담한다. 이러한 국가위기에는 군사적 위협과 같은 전통적 안보 위기뿐만 아니라, 자연재난이나 사회재난, 테러 등으로 인한 안보 위기 역시 포함되며, 현대 국가에서는 후자의 중요성이 점점 더 커지고 있다. 

  이처럼 대통령에게 구체적인 작위의무가 부여된 경우에는 대통령의 성실한 직책 수행의무는 단순히 도의적, 정치적 의무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법적 의무이고, 그 불 이행은 사법심사의 대상이 된다. 헌법 제69조의 성실한 직책수행의무 및 국가공무원 법 제56조의 성실 의무는 대통령에게 구체적인 작위의무가 부여된 경우 탄핵사유에 서 말하는 헌법 또는 법률 위반의 기준이 되는 규범이 된다. 

  (4) 대통령의 성실한 직책수행의무 위반을 인정하기 위해서는, 첫째, 국가주권 또 는 국가를 구성하는 정치ㆍ경제ㆍ사회ㆍ문화 체계 등 국가의 핵심요소나 가치, 다수 국민의 생명과 안전 등에 중대한 위해가 가해지거나 가해질 가능성이 있는 국가위기 상황이 발생하여야 하고(작위의무 발생), 둘째, 대통령이 국가의 존립과 국민의 생명 및 안전을 보호하는 직무를 성실히 수행하지 않았어야 한다(불성실한 직무수행). 


  나. 피청구인이 성실한 직책수행의무를 위반하였는지 

  (1) 인정하는 사실 

  (가) 다수의견과 중복되지 않는 범위에서 세월호 사건의 경과 및 당시의 정황을 살 펴본다. 세월호는 2014. 4. 16. 08:48경 전남 진도군 조도면 병풍도 북방 1.8해리 해상 에 이르러 선체가 좌현 측으로 급속히 기울어졌고, 복원력이 상실되어 결국 좌현으 로 약 30도 기울었다. 세월호는 09:34경 52.2도로 기울면서 그 침수한계선이 수면에 잠긴 후, 점점 급속히 기울어지다가 10:10:43경 77.9도가 되었고 10:17:06경 108.1도로 전복되었다. 

  10:10경 4층 좌현 선미 쪽 선실에 있었던 고등학생 11명이 갑판으로 이동하여 구조 되었다. 위 선실에 있던 승객들 중 일부는 10:13경까지 선미 쪽 출입문을 통해 세월호 에서 탈출하였다. 10:19경 세월호 우현 난간에서 10명이 넘는 승객이 마지막으로 탈 출하였다. 10:21경 마지막 생존자가 구조되었다. 서해해양경찰청 소속 특공대원 7명은 세월호가 침몰한 후인 11:35경에야 현장에 도착하였는데, 당일 선내에 진입하지 못하였다. 

  당일 09:00경은 조류의 흐름이 바뀌는 시기로서 인근 해역의 조류의 세기는 0.2노 트 또는 0.5노트였고, 10:00경은 0.4노트 또는 1.9노트였으며, 10:30경까지 그 곳 조류 의 세기는 2노트를 넘지 않았다. 바다로 뛰어든 승객들은 큰 움직임 없이 떠 있다가 구명뗏목이 펼쳐지자 그쪽으로 헤엄쳐 다가갈 수 있었다. 구조헬기에서 바다로 내려 가 구명뗏목을 이동시켰던 권○준은 법원에서 구명뗏목을 이동시키는 데에 조류의 영향은 크게 느끼지 못했고 세월호의 선체가 조류를 막아주는 역할을 했다고 진술하 였다. 실제로 세월호가 전복될 당시 탈출에 성공한 사람들은 모두 해양경찰(이하 ‘해경’이라 한다) 또는 어선에 의해 구조되어 다른 선박으로 옮겨졌다. 

  123정에는 약 50명의 인원이 승선할 수 있었는데 측면에 사다리가 있어 바다에 표류하는 인원이 쉽게 승선할 수 있었다. 세월호 주변에는 전라남도 소속 전남 201호가 10:06경 도착하였으며, 당시 10척 정도의 선박들이 근처에서 대기하였다. 전남 201호 보다 먼저 도착한 어선 중에는 50명 정도의 인원이 승선할 수 있는 것들도 있었고, 어 선들의 높이가 낮아 어선에서 바다에 표류하는 사람을 쉽게 올릴 수 있었다. 그밖에 많은 사람들을 수용할 수 있는 둘라에이스호와 드래곤에이스11호도 세월호 근처에 서 대기하고 있었다. 

  (나) 국가안보실은 당일 09:19경 와이티엔(YTN)이 보도한 세월호 사고 관련 속보 를 보고 09:20경 및 09:22경 해경에 유선으로 문의하여 ‘승선인원 474명의 배가 침수 되어 기울었다’는 답변을 들었다. 국가안보실은 09:24경 청와대 주요 직위자에게 업 무용 휴대전화로 “474명 탑승 여객선 침수신고 접수, 확인 중”이라는 문자메시지를 발송하였고, 09:33경 해경으로부터 ‘승선원 450명, 승무원 24명이 승선한 6,647톤급 세월호가 침수 중 침몰위험이 있다고 신고하여, 해경 경비함정 및 수색 항공기에 긴 급 이동지시하고, 인근 항해선박 및 해군함정에 협조요청 하였다’는 상황보고서를 팩스로 전파받았다. 

  09:10경 해경에 중앙구조본부가, 09:39경 국방부에 재난대책본부가, 09:40경 해양 수산부에 중앙사고수습본부가, 09:45경 안전행정부(이하 ‘안행부’라 한다)에 중앙재 난안전대책본부(이하 ‘중대본’이라 한다)가 설치되었다. 해양수산부는 09:40경 위기 경보 ‘심각’단계를 발령하였다. 국가안보실은 09:54경 해경과의 유선 연락을 통하여 그 시각 세월호가 60도 정도 기울었고 구조인원이 56명이라는 사실을 확인하였으며, 10:30경 해경에 ‘완전히 침수되어 침몰된 겁니까?’라고 문의하였다. 국가안보실은 10:52경 해경으로부터 세월호가 전복되어 선수만 보이고, 탑승객들은 대부분 선실에 서 나오지 못하였다는 답변을 들었다. 11:10경부터는 해경 513호에서 송출한 이엔지 (ENG) 영상이 청와대 위기관리센터 상황실(이하 ‘청와대 상황실’이라 한다)로 실시 간으로 송출되었다.

  피청구인은 당일 집무실에 출근하지 않고 관저에 머물러 있다가, 17:15경 중대본을 방문하여 구조 상황 등을 보고받고 지시하였다. 

  (2) 작위의무의 발생 세월호 사건은 총 476명의 탑승객을 태운 배가 침몰하여 304명이 사망한 대규모 재난이자 참사이다. 앞서 보았듯이 세월호는 2014. 4. 16. 08:48경 좌현으로 약 30도 기울면서 빠른 속도로 기울다가 10:17경 전복되었는데, 그 동안 승객들의 생명에 대 한 위험이 급격하게 증가하였다. 선체가 물에 완전히 잠긴 후에도 세월호의 크기와 구조를 고려할 때 탑승자들이 한동안 생존해 있을 가능성이 지속적으로 제기되었다. 이는 그 당시를 기준으로 하여도 다수 국민의 생명과 안전에 중대하고 급박한 위험 이 가해지거나 가해질 가능성이 있는 국가 위기 상황에 해당함이 명백하므로, 피청 구인은 상황을 신속히 인식하고 시의적절한 조치를 취하여 국민의 생명, 신체를 보 호할 구체적인 작위의무를 부담하게 되었다. 

  (3) 불성실한 직무수행의 존재 

  (가) 피청구인의 주장 피청구인이 주장하는 당일 피청구인의 주요 행적은 다음과 같다. 2014. 4. 16.은 공식 일정이 없는 날이었고, 피청구인의 몸이 좋지 않아서 본관 집무실에 가지 않고 관 저에 머물면서 각종 보고서를 검토하였고 이메일, 팩스, 인편으로 전달된 보고를 받 거나 전화로 지시하는 방식으로 업무를 처리하였다. 

  10:00경 국가안보실로부터 세월호 사건에 대하여 처음 서면보고를 받아 사고 발생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내용은 사고 일시, 장소, 사고 선박명 및 톤수와 승선원(474 명), 경위(세월호가 08:58경 “침수 중” 조난신고), 구조상황(현재까지 56명 구조), 구 조세력 현황 등이었다. 10:15경 국가안보실장에게 전화하여 상황을 파악한 후, ‘단 한 명의 인명 피해도 발생하지 않도록 (구조에 만전을 기)할 것. 여객선 내 객실 등을 철 저히 확인하여 누락 인원이 없도록 할 것’을 지시하였고, 10:22경 국가안보실장에게 전화하여 ‘샅샅이 뒤져서 철저히 구조해라’라고 강조 지시하였다. 10:30경 해경청장 에게 전화하여 ‘특공대를 투입해서라도 인원 구조에 최선을 다할 것’을 지시하였다. 그 후 15:30경까지 세월호의 침몰 상황과 구조 현황 등에 대하여 국가안보실로부터 5 회(서면 2회, 유선 3회), 사회안전비서관으로부터 서면으로 7회, 행정자치비서관실로부터 서면으로 1회 보고받아 검토하고 필요한 지시를 하였다. 안○근 비서관이 오전 에 관저로 피청구인을 찾아와서, 정○성 비서관이 점심식사 후 세월호 상황을 대면 보고 하였다. 대통령이 현장 상황에 지나치게 개입할 경우 구조 작업에 방해가 된다 고 판단하여 구조 상황에 대한 진척된 보고를 기다렸다.

  당시 ‘학생 전원구조’ 등 언론의 오보와 관계기관의 잘못된 보고로 인하여 상황이 종료된 것으로 판단하였다(피청구인의 의견서). 13:07경 및 13:13경 사회안전비서관 실과 국가안보실장으로부터 190명이 추가 구조되어 총 370명이 구조되었다는 내용 의 보고를 받았다. 14:11경 국가안보실장에게 전화하여 정확한 구조 상황을 확인하 도록 지시하였고, 국가안보실장이 14:50경 위 보고가 잘못되었다고 최종 확인하자 15:00경 피해 상황이 심각하다는 것을 인식하고 중대본 방문 준비를 지시하였다. 15:35경 미용 담당자가 들어와서 약 20분 간 머리 손질을 하였다. 16:30경 경호실에서 중대본 방문 준비가 완료되었다고 보고하여 차량으로 이동하면서 17:11경 사회안전 비서관실의 보고서를 받아 검토하였고, 17:15경 중대본을 방문하여 모든 역량을 동 원해서 구조에 최선을 다하도록 지시하는 등, 대통령으로서 최선을 다해 할 수 있는 조치를 취하였다. 따라서 피청구인은 성실한 직책수행의무를 위반하지 아니하였다. 

  (나) 판단 

  1) 위기상황의 인식 

  가) 앞서 보았듯이 국가안보실은 09:19경 방송으로 처음 알고 해경에 사실관계를 확인한 후 09:24경 청와대 주요직위자에게 업무용 휴대전화로 “474명 탑승 여객선 침수신고 접수, 확인 중”이라는 문자메시지를 발송하였다. 따라서 만약 피청구인이 09:00에 집무실로 출근하여 정상 근무를 하였다면, 위와 같이 청와대 주요직위자에게 전파된 내용을 당연히 보고받았을 것이므로, 09:24경에는 발생 사실을 알 수 있었 다고 봄이 타당하다. 피청구인이 당일 오전 집무실로 정상 출근하지 않고 관저에 머 물면서 불성실하게 직무를 수행함에 따라, 구조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초기에 30분 이상 발생 사실을 늦게 인식하게 되었다. 

  나) 다음과 같은 사정을 고려하면, 당일 15:00에야 상황의 심각성을 인지하였다는 피청구인의 주장은 받아들일 수 없다. 

  ① 국가안보실은 09:33경 해경으로부터 ‘승선원 450명, 승무원 24명이 승선한 6,647톤급 세월호가 침수 중 침몰위험이 있다고 신고하여, 해경 경비함정 및 수색 항 공기에 긴급 이동지시하고, 인근 항해선박 및 해군함정에 협조요청 하였다’는 상황 보고를 받았다. 09:10경 해경에 중앙구조본부가, 09:39경 국방부에 재난대책본부가, 09:40경 해양수산부에 중앙사고수습본부가, 09:45경 안행부에 중대본이 설치되었다. 해양수산부는 09:40경 위기경보 ‘심각’ 단계를 발령하였는데, 그 당시 적용되던 「해 양사고(선박)」위기관리 실무매뉴얼(2013. 6.)은 대규모 선박사고로 인해 국가적 차 원의 대응 및 조치가 요구되는 경우 대통령실(위기관리센터) 및 안행부와 사전 협의 하여 최상위단계인 ‘심각’ 단계의 위기 경보를 발령하도록 하고 있다. 따라서 국가안 보실은 늦어도 09:40경 이전에 상황의 중대성과 심각성을 알았고, 피청구인이 09:00 에 집무실에 출근하여 정상 근무를 하였다면 피청구인 역시 당일 09:40경에는 상황 의 심각성을 알 수 있었다고 봄이 타당하다. 

  ② 피청구인이 제출한 국가안보실 명의의 ‘진도 인근 여객선(세월號) 침수, 승선원 474명 구조작업 中(1보)(2014. 4. 16. 10:00)’ 보고서에는 ‘현재까지 56명 구조’라는 구조인원은 기재되어 있으나, 세월호의 기울기 등 상태는 기재되어 있지 않다. 피청구인은 10:00경 보고로 사태를 파악한 즉시 응당 국가안보실장에게 세월호의 상태를 확인하였어야 하고, 그랬다면 세월호의 당시 기울기가 60도 정도라는 사실을 바로 알 수 있었을 것이다. 위 보고서에 의하면 474명이 승선한 배가 침수 중이고, 사건 발 생 1시간 이상이 지났는데도 그중 불과 56명만 구조되었고 400명 이상이 구조되지 않았다는 것이므로, 매우 심각하고 급박한 상황이라는 점을 곧바로 인지할 수 있었 다고 봄이 상당하다. 

  ③ 김○수 당시 국가안보실장은 국회 국정조사에서 당일 10:15경 피청구인과 통화 하면서 ‘와이티엔(YTN)을 같이 보시면서 상황을 판단하시는 것도 도움이 될 것 같습 니다’라고 하였다고 증언하였다. 11:10경부터는 해경 513호에서 송출한 이엔지 (ENG) 영상이 청와대 상황실로 실시간으로 송출되고 있었으므로, 피청구인이 당시 청와대 상황실에 위치하였다면 세월호가 침몰하고 있다는 상황의 심각성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었다. 따라서 10:00경 이후에도 피청구인이 조금만 노력을 기울였다면 그 심각성을 정확히 알 수 있었던 기회가 얼마든지 있었다. 

  ④ 피청구인은 그 후 11:28경, 12:05경, 12:33경 사회안전비서관실로부터 세월호의 침몰 상황 보고서를 받아 검토하였고, 12:54경 행정자치비서관실로부터 세월호 침몰 관련 중대본 대처 상황 보고서를 수령하여 검토하였다고 주장한다. 세월호는 오전 11시 이전에 전복되어 침몰하였으므로, 실제로 위와 같이 보고들이 이루어졌고 그 보고 내용이 거짓으로 작성되지 않았다면, 당시 세월호의 침몰 사실이 반영되어 있 었을 것이 분명하다. 따라서 피청구인이 실제 위 보고서들을 모두 검토하였다면 상 황의 심각성을 15:00경에야 깨달았을 리가 없다. 

  ⑤ 피청구인은 관계기관의 잘못된 보고와 언론사의 오보 때문에 상황을 정확하고 신속하게 파악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는 취지로 주장한다. 

  하지만 피청구인이 당일 국가안보실이나 비서실 등으로부터 오보들을 보고받았 다고 볼 만한 자료가 없다. 앞서 보았듯이 청와대는 10:30경 이미 세월호가 배 밑바닥 이 보일 정도로 기울었고, 10:52경 세월호는 전복되어 선수만 보이고, 탑승객들은 대 부분 선실 안에서 나오지 못하였다는 사실도 인지하였으므로, 10:36 케이비에스의 낙관적인 보도가 있었다 하여 국가안보실 등이 피청구인에게 위 보도를 그대로 보고 하였을 것으로 보기 어렵다. 청와대는 11:07경 해경에 문의하여 ‘학생 전원구조’라는 언론보도가 해경에서 공식적으로 확인하지 않은 보도라는 사실을 그 시점에 이미 파 악하고 있었다. 따라서 위와 같은 오보는 피청구인이 10:00경 상황에 관한 심각성을 인식하였으리라는 판단에 지장을 주지 아니한다. 

  ⑥ 피청구인은 당일 13:07경 사회안전비서관실 및 13:13경 국가안보실장으로부터 ‘190명이 추가 구조되어 총 370명이 구조되었다’는 내용의 보고를 받아 상황이 종료 된 것으로 판단하였다가, 국가안보실장이 14:50경 위 보도가 잘못된 것이라고 보고 하자 15:00경 비로소 상황의 심각성을 깨닫고 중대본 방문을 바로 지시하였다고 주 장한다. 그러나 국가안보실은 세월호가 침몰한 후에도 2시간 이상 구조자 수를 파악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구조자 수가 2배로 증가한 보고를 받았으므로 이를 재차 확인 하였어야 한다. 피청구인이 이를 그대로 보고받았다 하더라도 당시 보고된 세월호 탑승객 474명에서 이를 제하면 104명의 승객이 아직 구조되지 못한 상황이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었으므로 370명 구조를 이유로 상황이 종료되었다고 판단하였다는 피 청구인의 주장은 받아들일 수 없고, 피청구인이 상황의 심각성을 인식한 시점 또는 인식 가능하였던 시점이 15:00경으로 늦어질 수 없다. 

  무릇 국가의 지도자는 안전한 상황보다는 위험한 상황에 대하여 훨씬 많은 주의와 관심을 기울이는 법이고 그래야 마땅하다. 피청구인의 주장대로라면 피청구인은 상 황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보고에 대하여는 전혀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낙관적 보고에 만 관심을 가져 상황이 종료된 것으로 판단한 셈이 되는데, 이는 그 자체로 위기 상황 에서 피청구인의 불성실함을 드러내는 징표이다. 

  다) 소결 

  피청구인은 09:40경, 늦어도 10:00경에는 세월호 사건의 중대성과 심각성을 인지 하였거나, 조금만 노력을 기울였다면 인지할 수 있었을 것으로 판단된다. 15:00에야 상황의 심각성을 인지하였다는 피청구인의 주장은 받아들일 수 없다. 

  2) 피청구인의 대처 

  가) 피청구인이 하였어야 하는 행위 피청구인은 늦어도 10:00경에는 상황의 심각성을 인식하였거나 인식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이므로, 그 즉시 재난에 관한 국가의 모든 정보가 수집되고 주요 관계기관 과의 직통 연락망이 구축되어 있는 청와대 상황실로 가서, 실시간으로 현황을 보고 받으면서 필요한 조치가 무엇인지 파악하고 그에 맞게 국가적 역량을 총동원하여 신 속하고 적절하게 관계기관의 재난대응을 총괄ㆍ지휘ㆍ감독하였어야 한다. 당일 10:00경 세월호 주위 해역에 승객 모두를 수용할 수 있는 10대 이상의 선박들이 대기 하고 있었으므로, 승객들이 퇴선하여 모두 표류하더라도 구조가 가능한 상황이었고, 헬기 및 항공기도 구조작업을 펼치고 있었다. 

  나) 집무실에 출근하지 않고 관저에 머문 행위 당일은 휴일이 아니었으므로, 피청구인은 정당한 사유가 없는 한 업무시간 중에는 집무실에 출근하여 업무를 수행하여야 했다. 피청구인은 당일 오전부터 17:15 중대 본을 방문하기 전까지 집무실에 출근하지 않고 관저에 머물렀다. 관저는 기본적으로 대통령의 휴식과 개인 생활을 위한 사적인 공간이므로, 그곳에서의 근무는 직무를 위한 모든 인적, 물적 시설이 완비된 집무실에서의 근무와 업무의 효율, 보고 및 지시 의 용이성 면에서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피청구인이 업무시간 중에 집무실에 있지 않고 관저에 머무르게 되면, 긴급한 순간에 참모들은 대통령의 위치부터 파악하여야 하므로 보고에 지장이 생기게 될 것은 명백하다. 

  특히 대형 재난이 발생하여 상황이 급박하게 전개되고 있는 국가위기 상황의 경우 에는 최고행정책임자인 피청구인은 즉각적인 의사소통과 신속하고 정확한 업무수 행을 위하여 청와대 상황실에 위치하여야 한다. 따라서 피청구인은 상황의 심각성을 인식한 10:00경에는 시급히 출근하여 청와대 상황실에서 상황을 파악, 지휘하였어야 한다. 그럼에도 피청구인은 그 심각성을 인식한 시점부터 약 7시간이 경과할 때까지 별다른 이유 없이 관저에 있으면서 전화로 다음에서 살피는 것처럼 원론적인 지시를 하였다.

  다) 피청구인이 주장하는 각종 지시 

  ① 피청구인은 당일 10:00경부터 12:05경까지 국가안보실로부터 4회(서면 3회, 유 선 1회), 사회안전비서관으로부터 4회(서면)에 걸쳐 세월호 상황에 대한 보고를 받는 등, 17:15 중대본을 방문하기 전까지 총 12회의 서면보고와 3회의 유선보고를 받아 검토하였고, 5회의 유선지시를 하였다고 주장하나, 다음에서 보듯이 그 중 대부분은 그러한 지시나 검토가 있었다고 볼 수 없다. 

  피청구인은, 10:15경 국가안보실장에게 전화하여 ‘단 한 명의 인명 피해도 발생하지 않도록 할 것. 여객선 내 객실 등을 철저히 확인하여 누락 인원이 없도록 할 것’을 지시하였고, 10:22경 국가안보실장에게 전화하여 ‘샅샅이 뒤져서 철저히 구조해라’ 라고 강조 지시하였으며, 10:30경 해경청장에게 전화하여 ‘특공대를 투입해서라도 인원 구조에 최선을 다할 것’을 지시하였다고 주장한다. 

  피청구인은 12:50경 당시 고용복지수석으로부터 기초연금법 관련 국회 협상 상황 에 대하여 10분 간 전화로 보고를 받은 통화기록이 있다고 하였다. 국가안보실장 및 해경청장과 피청구인이 실제로 통화를 하였다면 그 통화기록도 당연히 존재할 것인 데, 피청구인은 이를 제출하지 아니하고 그 통화기록이 있다는 주장도 하지 않았으 므로, 위와 같은 통화가 실제로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 

  청와대와 해경 사이의 10:25경 통화 녹취록을 보면 ‘단 한 명의 인명 피해도 발생하 지 않도록 하라. 객실 등을 철저히 확인하여 누락 인원이 없도록 하라고 하면서 이는 피청구인의 지시이니 해경청장에게 전달하라’고 기재되어 있다. 국가안보실장과 피 청구인 사이의 통화를 객관적으로 증명하는 것은 이 녹취록이 유일한데, 이에 의하 면 피청구인의 지시는 그 무렵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이 녹취록에 해경청장에 대 한 특공대 투입 등 지시를 전달하거나 그 지시의 이행 상황을 점검하는 내용의 대화 는 없다. 또한 김○균 당시 해경청장은 국회 국정조사에서 당일 09:53경 이미 특공대 를 투입하라고 지시하였다고 증언하였다. 피청구인이 실제로 해경청장과 통화를 하 였다면 해경청장이 이미 지시한 사항을 보고하였을 것인데도 같은 내용을 다시 지시 할 수 없을 것이고, 세월호는 10:17:06경 108.1도로 전복되어 급속도로 침몰하고 있어 잠수를 통하여 승객을 구조할 수밖에 없었으므로, 해경청장에게 지시하였다는 주장 을 인정할 수 없다. 

  ② 지시의 내용에 관하여 본다. 피청구인 주장의 최초 지시 내용은 ‘단 한명의 인명 피해도 발생하지 않도록 할 것. 여객선 내 객실 등을 철저히 확인하여 누락 인원이 없도록 할 것’이다. 위 내용은 지시받는 자에게 매우 당연하고 원론적인 내용으로서, 급 박한 위험에 적절히 대처할 수 있는 어떠한 지도적 내용도 담고 있지 않다. 이 지시에는 현장에 구체적으로 어떤 문제가 있는지에 관한 인식이 없고, 어느 해법을 강구할 지에 관하여 어떠한 고민도 담겨 있지 않다. 

   세월호는 당일 10:17:06경 108.1도로 전복되었으므로, 위 지시가 있었다는 10:15경 에는 선체가 전복되어 모든 객실의 출입구가 물에 잠긴 상황이었다. 재난은 시시각 각으로 상황이 급변하므로 그때그때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고 지시해야 하는데, 피청 구인은 상황을 파악하고 그에 맞게 대응하려는 관심이나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기에 위와 같이 구체성이 없는 지시를 한 것이다. 

  라) 결국, 피청구인은 세월호 사건의 심각성을 인식하였을 것으로 보이는 시점부 터 약 7시간이 경과한 중대본 방문 이전 까지 관저에 계속 머물면서 상황에 맞지 않 아 부적절한 전화 지시를 하였을 뿐이다. 그 내용과 피청구인의 행적을 볼 때, 피청구 인이 위기에 처한 수많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하기 위한 적극적이고 심도 있 는 대응이나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마) 대규모 재난과 같은 국가위기 상황에서 대통령이 그 상황을 지휘하고 통솔하 는 것은 실질적인 효과뿐만 아니라 상징적인 효과까지 갖는다. 실질적으로는, 국가 원수이자 행정수반이며 국군통수권자인 대통령이 위기 상황을 지휘, 감독함으로써 경찰력, 행정력, 군사력 등 국가의 모든 역량을 집중적으로 발휘할 수 있고, 인력과 물적 자원 배분의 우선순위를 정할 수 있으므로, 구조 및 위기 수습이 빠르고 효율적으로 진척될 수 있다. 상징적으로는, 국정의 최고책임자가 재난 상황의 해결을 최우 선 과제로 여기고 있다는 점을 대내외적으로 보여줌으로써 그 자체로 구조 작업자들 에게 강한 동기부여를 할 수 있고, 피해자나 그 가족들에게 구조에 대한 희망을 갖게 하며, 그 결과가 좋지 않더라도 정부가 위기 상황의 해결을 위하여 최선의 노력을 다 하였음을 알 수 있어 최소한의 위로를 받고 그 재난을 딛고 일어설 힘을 갖게 한다. 

  바) 진정한 국가 지도자는 국가위기의 순간에 상황을 신속하게 파악하고 그때그때 의 상황에 알맞게 대처함으로써 피해를 최소화하고 피해자 및 그 가족들과 아픔을 함께하며, 국민에게 어둠이 걷힐 수 있다는 희망을 주어야 한다. 물론 대통령이 진정 한 지도자상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해서 성실의무를 위반하였다고 할 수 없음은 당연 하다. 하지만 국민이 국정 최고책임자의 지도력을 가장 필요로 하는 순간은 국가 구 조가 원활하게 돌아가는 전형적이고 일상적인 상황이 아니라, 전쟁이나 대규모 재난 등 국가위기가 발생하여 그 상황이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급격하게 흘러가고, 이 를 통제, 관리해야 할 국가 구조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때이다. 세월호 참사가 있었던 2014. 4. 16.이 바로 이러한 날에 해당한다. 피해자와 그 가족들은 물론이고 지켜보는 국민 모두가 어느 때보다도 피청구인이 대통령의 위치에서 최소한의 지도력이라 도 발휘해 국민 보호에 앞장서 주기를 간절하게 바라고 있었다. 

  그러나 피청구인은 그날 저녁까지 별다른 이유 없이 집무실에 출근하지도 않고 관 저에 머물렀다. 그 결과 유례를 찾기 어려운 대형 재난이 발생하여 최상위 단계인 ‘심 각’ 단계의 위기 경보가 발령되었는데도 그 심각성을 아주 뒤늦게 알았고 상황을 파 악하고 승객 구조를 지원하기 위하여 대통령으로서 지도력을 발휘하지 않은 채 무성 의한 태도로 일관하였다. 400명이 넘는 국민들의 생명과 안전에 중대하고 급박한 위험이 발생한 그 순간에 피청구인은 8시간 동안이나 국민 앞에 자신의 모습을 보이지 아니하였다.

  (4) 소결 

  이상과 같이 국민의 생명과 안전에 급박한 위험이 초래되어 대규모 피해가 생기거 나 예견되는 국가위기 상황이 발생하였음에도, 상황의 중대성 및 급박성 등을 고려 할 때 그에 대한 피청구인의 대응은 현저하게 불성실하였다. 피청구인은 최상위 단 계의 위기 경보가 발령되었고 상황의 심각성을 파악하였음에도 재난 상황을 해결하 려는 의지나 노력이 부족하였다. 그렇다면 피청구인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하 여야할 구체적인 작위의무가 발생하였음에도 자신의 직무를 성실히 수행하지 않았 으므로, 헌법 제69조 및 국가공무원법 제56조에 따라 대통령에게 구체적으로 부여된 성실한 직책수행의무를 위반한 경우에 해당한다. 


  다. 결론 

  어떠한 법위반이 있는 경우에 대통령에 대한 파면 결정을 할 것인지는 파면결정을 통하여 헌법을 수호하고 손상된 헌법질서를 다시 회복하는 것이 요청될 정도로 대통 령의 법위반행위가 헌법 수호의 관점에서 중대한 의미를 가지는지, 또는 대통령이 자신에게 부여한 국민의 신임을 임기 중 박탈해야 할 정도로 법위반행위를 통하여 국민의 신임을 저버린 것인지를 판단하여 정한다(헌재 2004. 5. 14. 2004헌나1 참조). 

  대통령의 성실의무 위반을 일반적 파면사유로 볼 경우 사소한 성실의무 위반도 파 면사유가 될 수 있다. 대통령이 국민으로부터 부여받은 민주적 정당성과 헌정질서의 막중함을 고려하면, 대통령의 성실의무 위반을 파면사유로 삼기 위하여는 그 위반이 당해 상황에 적용되는 행위의무를 규정한 구체적 법률을 위반하였거나 직무를 의식적으로 방임하거나 포기한 경우와 같은 중대한 성실의무 위반으로 한정함이 상당하다. 이 사건에서 피청구인은 국가공무원법 상의 성실의무를 위반하였으나 당해 상황 에 적용되는 행위의무를 규정한 구체적 법률을 위반하였음을 인정할 자료가 없고, 위에서 살핀 것처럼 성실의무를 현저하게 위반하였지만 직무를 의식적으로 방임하거나 포기한 경우에 해당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렇다면 피청구인은 헌법상 대통령의 성실한 직책수행의무 및 국가공무원법상 성실의무를 위반하였으나, 이 사유만 가지고는 국민이 부여한 민주적 정당성을 임기 중 박탈할 정도로 국민의 신임을 상실하였다고 보기는 어려워 파면사유에 해당한다 고 볼 수 없다.

  앞으로도 국민 다수의 지지로 당선된 대통령들이 그 직책을 수행할 것이다. 국가 최고지도자가 국가위기 상황에서 직무를 불성실하게 수행하여도 무방하다는 그릇된 인식이 우리의 유산으로 남겨져서는 안 된다. 대통령의 불성실 때문에 수많은 국민의 생명이 상실되고 안전이 위협받아 이 나라의 앞날과 국민의 가슴이 무너져 내리는 불행한 일이 반복되어서는 안 되므로 우리는 피청구인의 성실한 직책수행의무 위반을 지적하는 것이다. 



  13. 재판관 안창호의 보충의견 

  나는 피청구인의 헌법과 법률 위반행위가 ‘헌법 수호의 관점에서 용납될 수 없는 중대한 법 위반 행위’에 해당하여 피청구인이 파면되어야 한다는 법정의견과 뜻을 같이 한다. 나는 이른바 ‘제왕적 대통령제(imperial presidency)’로 비판되는 우리 헌법 의 권력구조가 이러한 헌법과 법률 위반행위를 가능하게 한 필요조건이라고 본다. 따라서 이를 명확히 밝히는 것이 이 사건 심판의 헌법적 의미를 분명하게 드러내고 향후 헌법개정의 방향을 모색하는 데 필요하다고 생각하여 다음과 같이 보충의견을 개진한다. 


  가. 우리 헌정사와 제왕적 대통령제 

  현행 헌법은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 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고 규정하고 있다(제10조). 인간의 존엄과 가치는 헌법의 근본적 성격 을 결정하고 개인과 공동체의 관계를 규정하는 핵심개념이다. 그런데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구현하고자 하는 민주주의 헌법은 이상적인 형태가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 라 국가공동체의 정치적ㆍ경제적ㆍ사회적ㆍ문화적 환경과 그 시대의 이념적 지향 점이 무엇이냐에 따라 각기 다른 모습을 가지게 된다. 

  우리 헌법은 제정 이후 현행 헌법에 이르기까지 아홉 차례의 개헌이 있었다. 4․19 혁명 직후 의원내각제 도입과 3․15 부정선거관련자 처벌을 위한 헌법개정을 제외한 나머지 헌법개정은 주로 대통령의 선출방식ㆍ임기ㆍ지위ㆍ권한 등과 관련해 이루 어졌다. 그동안 우리 헌법이 채택한 대통령제는 대통령에게 정치권력을 집중시켰음 에도 그 권력에 대한 견제장치가 미흡한 제왕적 대통령제로 평가된다. 

  현행 헌법은 1987년 6월 민주항쟁 이후 여야합의로 개정된 것으로서, 인간의 존엄 성과 국민의 기본권을 최대한 보장하는 정치공동체를 실현하려는 국민의 열망을 담 고 있다. 대통령직선제를 규정하여 대통령의 민주적 정당성을 강화하였으며, 대통령 임기를 5년 단임제로 하고 대통령의 국회해산권 등을 폐지하여 장기독재의 가능성 을 차단하였다. 국회의 국정감사권을 부활시키고 헌법재판소를 신설하는 등으로 대 통령의 권한을 제한하고 기본권규정을 강화하였다. 그러나 이 사건 심판은 현행 헌법 아래에서도 정경유착과 같은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가 상존하고 있음을 확인하였다. 권위주의적 권력구조를 청산하고자 했던 현행 헌법에서 이러한 폐해가 근절되지 않고 계속되는 까닭은 무엇인가? 


 나. 현행 헌법상 권력구조의 문제점 

  1987년 대통령직선제 헌법개정으로 대통령 ‘권력형성’의 민주적 정당성 측면에서 는 획기적인 변화가 있었지만, 대통령 ‘권력행사’의 민주적 정당성 측면에서는 과거 권위주의적 방식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대통령에게 법률안제출권과 예산 편성ㆍ제출권, 광범위한 행정입법권 등 그 권한이 집중되어 있지만, 이에 대한 효과 적인 견제장치가 없거나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 이러한 현행 헌법의 권력구조 는 피청구인의 리더십 문제와 결합하여 ‘비선조직의 국정개입, 대통령의 권한남용, 재벌기업과의 정경유착’과 같은 정치적 폐습을 가능하게 하였다. 

  (1) 비선조직의 국정개입 

  헌법 제67조 제1항에 따라 대통령은 국민의 보통ㆍ평등ㆍ직접ㆍ비밀선거에 의해 선출되어 민주적 정당성을 부여받게 된다. 이때 대통령은 권력형성과정에서 선거를 통해 민주적 정당성을 확보해야 할 뿐만 아니라 권력행사과정에서도 투명한 절차와 소통을 통해 민주적 정당성을 끊임없이 확보해야 한다. 

  비선조직 이른바 ‘비선실세’의 국정개입은 대통령 권력이 과도하게 집중된 제왕적 대통령제와 관련된다. 현행 헌법의 대통령은 제왕적 대통령제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낸 워터게이트사건이 문제된 미국 대통령보다 집중된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우리나라에서는 미국과 달리 행정부가 법률안제출권과 예산편성ㆍ제출 권을 갖고 있으며, 반면 국회의 동의를 받거나 인사청문회를 거치는 공직자의 범위는 제한적이다. 우리나라의 지방자치단체는 연방국가인 미국과 달리 중앙정부에 종 속되어 있으며 자율과 책임이 미흡한 지방자치가 시행되고 있을 뿐이다. 

  1987년 제9차 헌법개정 때보다 국가경제의 규모가 십여 배 확장되고 사회적 갈등 구조가 다층적으로 심화되고 있는 현실에서는, 국가의 원수이자 행정부의 수반인 대 통령의 업무는 양적으로 증가되었을 뿐만 아니라 질적으로 전문화ㆍ다양화ㆍ복잡 화 되었다. 이에 따라 대통령 권력은 실질적으로 확대되었고, 민주적 정당성을 부여 받지 못한 비선조직은 강력한 대통령 권력에 기대어 활동공간을 넓힐 수 있었다. 비선조직의 국정개입은 정책결정의 투명성ㆍ공정성 제고, 국민의 예측ㆍ통제가능성 확보, 권력행사에 따른 책임의 담보라는 측면에서 취약하다. 특히 비선조직의 ‘계속 적인’ 국정개입은 국민과 국가기관 사이의 ‘민주적 정당성의 연결고리’를 단절하고, ‘정치과정의 투명성’과 ‘정치과정에서 국민의 참여 가능성’을 차단함으로써 대의민 주제 원리를 형해화할 수 있다.

  이 사건 심판에서 민주적 정당성이 없는 이른바 비선실세 최○원은 피청구인에게 장ㆍ차관, 청와대 참모를 추천하는 등 고위 공직자의 인사에 개입하고, 국가정책결 정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등 ‘계속적으로’ 국정에 개입한 사실이 확인되었다. 대통령 권력을 과도하게 집중시킨 현행 헌법의 권력구조는 최○원의 국정개입을 조장함으 로써 권력행사의 민주적 정당성과 절차적 투명성 확보에 심각한 문제점을 보이고 있다.

  (2) 대통령의 권한남용 

  제왕적 대통령의 지시나 말 한마디는 국가기관의 인적 구성이나 국가정책의 결정 에서 절대적인 영향력을 발휘한다. 대통령의 리더십에 따라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국무총리를 비롯한 국무위원과 청와대 참모는 대통령의 의사결정과 지시에 복종할 뿐, 대통령의 뜻과 다른 의견을 자유롭게 개진하기 어렵다. 더욱이 현행 헌법상 대통령 권력의 과도한 집중은 아직 청산되지 않은 하향식 의사결정문화와 정의적(情意的) 연고주의와 결합하여 대통령의 자의적 권력행사의 문제점을 더욱 심각하게 할 수 있다. 따라서 현행 헌법의 대통령제는 대통령의 자의적 권력행사를 가능하게 하 는 필요조건이 될 수 있다. 

  우리나라는 선거에서 1표라도 더 얻으면 제왕적 정치권력을 획득하고 그렇지 못 하면 권력으로부터 소외되는 승자독식 다수대표제를 채택하고 있다. 그 결과 우리 사회의 중요한 가치와 자원은 정치권력을 중심으로 편성되고, 정치권은 그 권력 획득을 위해 극한 대립과 투쟁으로 분열되어 있다. 정치세력간의 이전투구는 이념대립 과 지역주의를 부추기고 사회적 갈등을 유발하기도 한다. 이에 따라 국가기관의 인 적 구성이나 국가정책의 결정이 투명한 절차를 통해 공정하고 객관적으로 이루어지 는 것이 아니라, 대통령의 사적ㆍ당파적 이익에 따라 자의적으로 이루어지기도 한다. 

  대통령을 비롯한 국가기관의 모든 의사결정은 법이 정한 절차에 따라 이루어져야 하고 실질적으로 법의 기속을 받아야 한다. 대통령의 권한남용은 법치국가의 이념을 훼손하고, 개인의 기본권을 침해할 수 있으며, 직업공무원제도의 본질적인 내용을 훼손할 수 있다. 특히 대통령의 권한남용이 사익추구를 이유로 할 경우에는 국가공 동체가 지향하는 공동선과 공통가치를 훼손할 수 있다. 

  이 사건 심판에서 피청구인은 국가기관의 기밀문서가 최○원에게 상당기간 유출 되도록 지시 또는 묵인하였고, 국가권력의 공공성을 방과(放過)하여 사기업 경영 등에 개입한 사실이 확인되었다. 이처럼 현행 헌법의 권력구조는 대통령 권력을 과도 하게 집중시킴으로써 대통령의 자의적 권력행사와 권한남용을 조장하는 등 권력행 사의 공정성과 합법성 확보에 문제점을 보이고 있다.

  (3) 재벌기업과의 정경유착 

  현행 헌법상 대통령 권력의 과도한 집중은 우리사회의 고질적 문제점으로 지적되 는 ‘재벌기업과의 정경유착’과도 깊이 관련되어 있다. 과거 재벌기업은 정치권력의 보호 속에서 고도 경제성장을 이뤄낸 산업화의 주역이었음을 부인할 수는 없다. 그러나 재벌기업 중심의 경제성장은 정경유착과 이로 인한 불법과 부패의 원인이 되기도 하였다. 정치권력의 재벌기업과의 정경유착은 재벌기업에게는 특권적 지위를 부 여하는 반면, 다른 경제주체의 자발성과 창의성을 위축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하였다. 

  현행 헌법은 “대한민국의 경제질서는 개인과 기업의 경제상의 자유와 창의를 존중 함을 기본으로 한다.”(제119조 제1항), “국가는 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성장 및 안정과 적정한 소득의 분배를 유지하고,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며, 경제주 체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를 위하여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 다.”(제119조 제2항)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는 개인과 기업의 경제상의 자유와 창의 를 보장하면서도 과거 재벌기업 중심의 경제정책과 정경유착에서 벗어나 경제민주 화를 실현하겠다는 헌법적 선언이다. 

  그러나 1987년 헌법개정 이후에도 정치권력과 재벌기업의 정경유착의 모습은 계 속 나타나고 있다. 이 사건 심판에서도 피청구인은 비밀리에 대통령의 권한을 이용 하여 재벌기업으로 하여금 피청구인이 주도하는 재단에 기금을 출연하도록 한 사실 [80/89] 이 확인되었다. 대통령 권력의 과도한 집중은 정경유착의 원인이 되어 시장경제질서 의 골간인 개인·기업의 재산권과 경제적 자유를 침해하고 경제적 정의와 사회적 공 정성 실현의 걸림돌이 될 수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4) 소결론 

  현행 헌법의 권력구조 아래에서 계속되고 있는 ‘비선조직의 국정개입, 대통령의 권한남용, 재벌기업과의 정경유착’은 제왕적 대통령제가 낳은 정치적 폐습이다. 이러한 정치적 폐습은 주요한 헌법가치인 민주적 정당성과 절차적 투명성, 사회적 공 정성과 경제적 정의의 실현을 방해하고 있다. 


  다. 현행 헌법상 권력구조의 개혁과제 

  (1) 국민의 기본권 보장을 위해 권력을 분할하고 권력 상호간의 견제와 균형이 이 루어지는 권력분립원리에 기초하여, 지방의 자율ㆍ책임을 강조하는 지방분권원리 와 대의민주주의의 한계를 보완하는 직접민주주의원리를 강화한 현대적 분권국가 의 헌법질서는 제왕적 대통령제에 대한 대안이 될 수 있다. 

  현행 헌법의 권력구조는 대통령에게 ‘국가원수’(제66조 제1항), ‘국가와 헌법의 수 호자’(제66조 제2항) 로서의 지위를 부여하고 권력을 집중시켜 국정수행에서 대통령 의 강력한 리더십을 기대한다. 그러나 정치권력은 주권자인 국민으로부터 멀어지는 집권화 경향을 띠고, 집권화는 절대주의로 향하며, 절대 권력은 반드시 부패한다. 더 욱이 전문적이고 복잡다기한 현대 국가의 방대한 정책과제를 대통령 개인의 정치적 역량에 맡기는 것은 오히려 비효율을 초래할 수 있다.

   선진국 문턱에서 심각한 발전 장애를 겪고 있는 우리나라는 경제적 양극화의 문제를 해결하고 이념ㆍ지역ㆍ세대 갈등을 극복하여 사회통합과 국가발전을 이루어야 한다. 나아가 미국ㆍ중국ㆍ일본ㆍ러시아 등 강대국의 틈바구니에서 북한의 핵과 미 사일 위협으로부터 국가안전을 도모하고 평화통일의 길을 열어야 한다. 민주주의는 사회적 갈등을 억압하는 것이 아니라 이를 정치의 틀 안에서 통합하면서 사회적 합 의를 만들어 가는 데 있다. 우리나라가 이러한 시대적 과제를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권력구조가 타협과 숙의(熟議)를 중시하고 사회의 다양한 이해관계를 투 명한 절차와 소통을 통해 민주적으로 조율하여 공정한 권력행사가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 투명하고 공정한 권력행사는 사회적 갈등을 해소하고 사회적 신뢰와 국민안전 을 제고하여 사회통합과 국가발전을 이룰 수 있기 때문이다(이사야 32장 16절-17절 참조). 따라서 정경유착 등 정치적 폐습과 이전투구의 소모적 정쟁을 조장해온 제왕 적 대통령제를 협치와 투명하고 공정한 권력행사를 가능하게 하는 권력공유형 분권 제로 전환하는 권력구조의 개혁이 필요하다. 

  (2) 국민이 선출한 대통령에게 권한을 집중시킨 우리 헌법의 역사, 국민의 개별 국 가기관에 대한 신뢰도, 남북분단에 따른 안보현실, 정부형태에 대한 국민의 법 감정 등을 고려할 때, 이원집정부제, 의원내각제 또는 책임총리제의 실질화 등이 국민의 선택에 따라 현행 헌법의 대통령제에 대한 현실적 대안이 될 수 있다. 

  과도하게 집중된 대통령 권력을 분산하는 방법은 정부형태의 변경과 함께, 중앙집 권적인 권력을 지방으로 대폭 이양하여 주민근거리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것이다. 지방자치제도는 국민주권의 원리에서 출발하여 주권의 지역적 주체로서의 주민에 의한 자기 통치의 실현이다(헌재 1998. 4. 30. 96헌바62). 획기적인 지방분권은 주민의 자율적 참여와 민주시민의식을 고양시켜 풀뿌리 자치를 실천하고, 지방의 경제적·사 회적·문화적 특성을 바탕으로 지역발전을 도모하여 상향적 국가발전을 이룰 수 있다. 또한 이와 같이 강화된 지방분권은 중앙집권적 자원배분으로 인한 지역불만을 완화하여 사회통합에 이바지하고, 나아가 평화통일의 길을 여는 데 일조할 수 있으 며 통일 후에는 국민통합에도 기여할 수 있다. 

  국회의원선거에서 비례대표제는 정당제 민주주의에 근거를 두고 국민주권원리의 출발점인 투표결과의 비례성을 강화하여 사회의 다원적인 정치적 이념을 유권자의 의사에 따라 충실히 반영하는 것으로 평가된다(헌재 2009. 6. 25. 2007헌마40 참조). 따라서 우리 사회의 다양한 이해관계의 조화로운 해결을 위해서는 정당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비례대표 국회의원후보자의 선정과정에서 투명성과 공정성을 확보하는 가운데 비례대표제를 확대해야 한다(헌재 2016. 5. 26. 2012헌마347 보충의견 참조). 

  국민이 국가정책의 핵심적 사항을 파악하고 국가기관에 대한 효과적인 통제를 하 기 위해서는 권력행사과정의 투명성원칙이 헌법적으로 천명되고 법령에 의해 구체 화되어야 한다. 그리고 과도하게 집중된 대통령 권력을 분권하는 과정에서 국회나 지방자치기관에 분산된 권력은 국민소환제ㆍ국민발안제ㆍ국민투표제 등 직접민주 제적 요소의 강화를 통해 통제되는 방안이 적극적으로 검토되어야 한다. 

  행정각부의 장을 비롯하여 주요 국가권력을 행사하는 국가정보원장ㆍ검찰총장ㆍ 경찰청장ㆍ국세청장 등의 임명에 투명성과 공정성을 확보하는 방안, 예컨대 이들의 임명에 있어 국회동의를 받도록 하는 방안이 적극적으로 검토되어야 한다. 비대한 청와대 참모조직을 축소하고, 대통령의 사면권을 제한하여 권력분립과 법의 형평성 이라는 법치국가원리가 훼손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지방자치의 활성화, 지 역주의의 극복, 평화통일과 통일국가의 국민통합을 위해서는 지역대표형 상원을 설치하는 국회양원제도의 도입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 통일이 현실화하는 단계에서 뒤늦게 국회양원제도의 도입에 대해 논의하는 것은 오히려 평화통일에 장애가 될 수 있음을 유념해야 한다. 

  (3) 권력구조의 개혁은 분권과 협치, 투명하고 공정한 권력행사를 가능하게 하고, 이를 통해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존중하고 국민의 기본권을 최대한 보장하기 위한 것이어야 한다. 이러한 권력구조의 개혁은 주권자인 국민의 의사가 충실히 반영되도 록 설계된 국민참여과정을 거쳐야 한다. 이는 정치세력 사이의 권력투쟁이나 담합의 장으로 전락하지 않고 이성적 대화와 숙의가 이루어지고 다수 국민의 의사가 수렴되 는 민주적 공론화과정이 되어야 한다.


  라. 탄핵심판관련 주장에 대한 의견 

  과거 정권에서 비선조직의 국정개입, 국가권력의 사유화와 재벌기업과의 정경유 착이 더 심했다고 하면서 피청구인에 대한 탄핵심판청구는 기각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1) 현행 헌법은 국회가 아닌 헌법재판소가 탄핵심판을 하도록 규정하여(제111조 제1항 제2호) 법치국가원리를 강조하는 입장으로 해석된다. 탄핵제도의 목적은 법 위반 행위를 한 공직자를 파면하여 헌법질서를 확립하는 데 있다. 대통령이 헌법이 나 법률을 중대하게 위반하여, 대통령의 직을 유지하는 것이 더 이상 헌법 수호의 관 점에서 용납될 수 없거나 대통령이 국민의 신임을 배반함으로써 국정을 담당할 자격 을 상실한 때에 헌법재판소는 파면을 결정한다(헌재 2004. 5. 14. 2004헌나1 참조). ‘대통령의 파면을 정당화 할 정도의 중대한 법 위반 행위’의 여부는 확정적ㆍ고정적 인 것이 아니라 구체적 사건에서 ‘대통령의 법 위반 행위’의 경위와 내용, 침해되는 헌법질서의 의미와 내용뿐만 아니라, 탄핵심판의 시대적 상황, 지향하는 미래의 헌법적 가치와 질서, 민주주의의 역사와 정치적ㆍ경제적ㆍ사회적ㆍ문화적 환경, 헌법 수호에 대한 국민의 법 감정 등이 종합적으로 고려되어 결정된다. 

  헌법은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고 하면서 누구든지 성별ㆍ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ㆍ경제적ㆍ사회적ㆍ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 을 받지 아니한다고 선언하고 있다(제11조 제1항). 그러나 헌법상 평등은 불법의 평 등까지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헌재 2016. 7. 28. 2014헌바372 참조). 

  따라서 피청구인의 법 위반 행위가 증거에 의해 인정되고 그 법 위반 행위가 위와 같은 점이 고려되어 ‘대통령의 파면을 정당화 할 정도의 중대한 법 위반 행위’로 인정 된 이 사건 심판에서 과거 정권에서의 법 위반 행위와 비교하여 이를 기각하여야 한 다는 주장은 더 이상 의미 있는 주장이 아니다. 

  (2) ‘헌법을 준수하고 수호해야 할 의무’가 법치국가원리에서 파생되는 지극히 당 연한 것임에도, 헌법은 국가의 원수이자 행정부의 수반이라는 대통령의 막중한 지위 를 감안하여 제66조 제2항 및 제69조에서 이를 다시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헌법정신 에 의한다면, 대통령은 국민 모두에 대한 ‘법치와 준법의 상징적 존재’인 것이다. 이 에 따라 대통령은 헌법을 수호하고 실현하기 위한 모든 노력을 기울여야 할 뿐만 아 니라, 법을 준수하여 현행법에 반하는 행위를 해서는 안 되며, 나아가 입법자의 객관 적 의사를 실현하기 위한 모든 행위를 해야 한다(헌재 2004. 5. 14. 2004헌나1 참조). “지도자가 위법한 행위를 했어도 용서한다면 어떻게 백성에게 바르게 하라고 하겠는 가(犯禁蒙恩何爲正).”라는 옛 성현의 지적이 있다. 대통령을 비롯한 지도자의 준법을 강조하는 말이다. 따라서 대통령의 법 위반 행위는 일반국민의 위법행위보다 헌법질 서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이 크다고 할 것이므로 엄중하게 대처해야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이 2015년 3월 제 정되어 2016년 9월 시행되었다. 이 법률은 적용대상으로 공직자뿐만 아니라 사립학교 관계자와 언론인을 포함하고, 공직자등의 부정청탁행위 자체를 금지하는 한편 공 직자등의 금품등 수수행위를 직무관련성이나 대가성이 없는 경우에도 제재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 법률은 공직사회의 부패구조를 청산하여 공직자의 공정한 직무 수행을 보장하고 공공기관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확보하는 것을 입법목적으로 한다. 이러한 공정하고 청렴한 사회를 구현하려는 국민적 열망에 비추어 보더라도 대통령 의 법 위반 행위에 대해서는 엄정하게 대처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와 우리 자손이 살아가야 할 대한민국은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존중하고 국민 의 기본권을 최대한 보장함으로써, 국민 모두가 자유롭고 평등하며 안전하고 풍요로 운 가운데 행복한 삶을 영위하는 나라이다. 그런데 이 사건 심판청구를 기각한다면, 앞으로 대통령이 이 사건과 유사한 방법으로 헌법과 법률을 위반해도 파면 결정을 할 수 없게 된다. 그 결과 비선조직이 강력한 대통령 권력에 기대어 고위공직자의 인 사와 국가정책의 결정에 개입하여 사익을 취하거나 또는 대통령이 영향력을 행사하 여 대기업으로 하여금 자신이 주도하는 재단에 기금을 출연하도록 하는 등의 위법행 위가 있다 하더라도 우리 사회가 이를 용인해야 하고 이에 따른 정경유착 등 정치적 폐습은 확대ㆍ고착될 우려가 있다. 이는 현재의 헌법질서에 부정적 영향을 주는 것 일 뿐만 아니라 나아가 우리 헌법이 지향하는 이념적 가치와도 충돌한다. 

  (3) 그렇다면 우리 헌법의 헌법질서를 수호하고, 비선조직의 국정개입, 대통령의 권한남용, 재벌기업과의 정경유착과 같은 정치적 폐습을 타파하기 위해서라도 이 사 건 심판청구를 인용하여야 한다.


  마. 결론

  (1) 이 사건 심판절차의 전 과정에서 대통령의 직무수행 단절로 인한 국정공백은 중대하고 국론분열로 인한 국가적 손실은 엄중하다. 이러한 난국을 극복하고 국민통합을 이루기 위해서는 대통령 개인에 대한 탄핵심판을 넘어 비선조직의 국정개입, 대통령의 권한남용, 재벌기업과의 정경유착과 같은 정치적 폐습을 청산하고, 정치적 폐습을 조장한 권력구조를 개혁하기 위한 반성과 성찰이 있어야 한다. 물론 제왕적 대통령제를 규정한 현행 헌법의 권력구조는 피청구인의 법 위반 행위 를 정당화하는 구실이 될 수 없다. 그러나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대통령 권력의 과도 한 집중이 피청구인의 법 위반 행위를 부추긴 요인이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더욱이 대통령 탄핵심판에서 나타난 시대정신은 분권과 협치, 투명하고 공정한 권력행사로 나아갈 것을 명령하고 있다. 제왕적 대통령제를 이러한 시대정신이 반영된 권력공유 형 분권제로 개편하는 것은 우리 사회의 수직적 권위주의문화의 폐습을 청산하고 정 치ㆍ경제ㆍ사회 곳곳에 자리 잡고 있는 비민주적인 요소를 타파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 나아가 이는 우리 사회의 모든 영역에서 각인의 기회를 균등히 하고 능력을 최 고도로 발휘하게 하며, 국가공동체의 공정성 강화와 국민생활의 균등한 향상을 도모 할 수 있다. 

  일찍이 플라톤은 50대에 저술한 「국가」에서 “통치하는 것이 쟁취의 대상이 되면, 이는 동족간의 내란으로 비화하여 당사자들은 물론 다른 시민들마저 파멸시킨다.”고 경고했다. 이러한 플라톤의 경고는 우리가 권력구조의 개혁을 논의하는데 있어 시사 하는 바가 크다. 

  (2) “오직 공법을 물같이, 정의를 하수같이 흘릴지로다(아모스 5장 24절).” 성경말씀이다. 불법과 불의한 것을 버리고 바르고 정의로운 것을 실천하라는 말씀이다. 

  이 사건 탄핵심판과 관련하여 국민간의 이념적 갈등에 대한 우려가 있는 것을 알 고 있지만, 이 사건 탄핵심판은 보수와 진보라는 이념의 문제가 아니라 헌법적 가치 를 실현하고 헌법질서를 수호하는 문제이다. 그리고 이 사건 탄핵심판은 단순히 대통령의 과거 행위의 위법과 파면 여부만을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 대한민국이 지향해야 할 헌법적 가치와 질서의 규범적 표준을 설정하는 것이기도 하다. 

  법정의견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피청구인의 법 위반 행위는 대통령이 국민 모두 에 대한 ‘법치와 준법의 상징적 존재’임에도 헌법과 법률을 중대하게 위반한 행위이다. 이 사건 탄핵심판청구를 기각한다면 정경유착 등 정치적 폐습은 확대ㆍ고착될 우려가 있다. 이는 현재의 헌법질서에 부정적 영향을 주는 것일 뿐만 아니라 우리 헌법이 지향하는 이념적 가치와도 충돌하고 최근 부패방지관련법 제정에서 나타난 ‘공정하고 청렴한 사회를 구현하려는 국민적 열망’에도 배치된다. 

  이러한 점을 고려할 때, 이 사건 탄핵심판과 관련하여 소명을 받은 헌법재판관으 로서는 피청구인에 대해 파면을 결정할 수밖에 없다. 피청구인에 대한 파면결정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기반으로 한 헌법질서를 수호하기 위한 것이며, 우리와 우리 자손이 살아가야 할 대한민국에서 정의를 바로 세우고 비선조직의 국정개입, 대통령 의 권한남용, 정경유착과 같은 정치적 폐습을 청산하기 위한 것이다. 

  (3) 이 사건 심판절차에서의 파면결정과 이를 계기로 시대정신을 반영한 권력구조 의 개혁이 이루어진다면 우리나라의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는 보다 높은 단계로 나아갈 수 있다. 자율과 조화를 바탕으로 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는 가일층 확고해 지고, 자유와 창의를 기본으로 한 시장경제질서는 국민생활의 균등한 향상을 기하는 가운데 더욱 발전하여 우리와 우리 자손의 자유와 평등, 그리고 안전과 행복은 확대 될 것이다.


재판장  재판관   이정미

          재판관   김이수 

          재판관   이진성 

          재판관   김창종 

          재판관   안창호

          재판관   강일원 

          재판관   서기석

          재판관   조용호



[별지] 

대리인 명단 

1. 소추위원의 대리인 

  변호사 황정근, 김봉준, 신미용, 이명웅, 임종욱, 최규진, 최지혜, 한수정 

  법무법인 거산 (담당변호사 문상식) 

  법무법인 공존 (담당변호사 전종민, 탁경국) 

  법무법인 도시 (담당변호사 이금규) 

  법무법인 만아 (담당변호사 김현수, 김훈) 

  법무법인 엘케이비앤파트너스 (담당변호사 이용구, 김현권)

2. 피청구인의 대리인 

  변호사 이중환, 구상진, 김평우, 서성건, 이상용, 위재민, 유영하, 장창호, 정기승, 정장현, 채명성, 최근서 

  법무법인 율전 (담당변호사 이동흡, 전병관, 배진혁) 

  법무법인 범무 (담당변호사 조원룡) 

  법무법인 신촌 (담당변호사 송재원) 

  법무법인 에이치스 (담당변호사 황성욱) 

  법무법인 정론 (담당변호사 손범규) 

  영남 법무법인 (담당변호사 서석구)

성범죄로 기소된 성범죄자에게 법원에서 신상정보 공개 명령을 선고하면, 해당 성범죄자의 신상정보는 인터넷으로 공개가 된다. 그런데 어디서 정보를 확인할 수 있는지 모르는 분들이 꽤 많은 것 같다. 가뜩이나 세상이 흉흉한데 집 근처에 성범죄 전과를 가진 사람이 살면 좀 그렇지 않은가. 그래서 모두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 글을 써 본다. 

1. 먼저 성범죄자 신상 공개 사이트인 성범죄자 알림e(http://sexoffender.go.kr/)에 접속한다.
 


이게 가장 중요한 과정인데, 이 주소를 모르는 분들이 꽤 되는 것 같다. 한국 정부기관 웹사이트의 고질병인 ActiveX를 이용한 프로그램이 깔아야 하니 크롬이나 파이어폭스 쓰시는 분들은 IE로 접속하길 권장한다. 그리고 자바(Java)도 깐다. 뭐 이리 까는게 많아.. -_-;;

페이지 하단의 경고의 요지는 여기서 본 정보를 다른 곳에 공개하지 말고, 공개된 정보를 수정 또는 삭제하지 말고, 색안경 끼고 보지 말고, 허위사실에 의한 것이든 진실에 의한 것인든 명예훼손 하지 말라는 말 쯤으로 이해하면 되겠다.


2. 열람 방법 및 절차

 
열람 방법과 절차는 위에서 보는것과 같다. 성범죄자 정보 열람을 위해서는 2가지의 인증을 거쳐야 한다. 성인인증과, 성인인증 후의 본인 인증을 해야한다. 헌데, 미성년자의 열람을 금지한 것과 본인인증까지 거쳐야 하는 이유를 모르겠다. 


3. 열람마당 - 성범죄자 찾아보기로 이동


 
성범죄자 신상정보를 찾는 방법은 지도로 찾는 방법과 이름 등의 조건으로 찾는 방법이 있다.


4. 1차 인증 (성인 인증)

 
지도로 검색 또는 조건으로 검색을 누르면 성인 인증 창이 뜨는데, 정보 열람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인증을 해야한다. 인증에 성공하면 2차 인증으로 이동한다.


5. 2차 인증 (본인 인증)

 


본인 인증 방법은 3가지를 지원한다. 주민등록 발급일로 인증하는 방법, 공인인증서로 인증하는 방법, 휴대폰으로 인증하는 방법을 지원하는데, 편한걸로 인증하면 된다. 필자는 주민등록증 발급일로 인증하겠다.


6. 인증 완료


 
이제 인증은 끝났다. 신상 정보를 검색하자.

 

7. 정보 검색 - 지도로 검색


지도로 검색을 하게되면 각 지역별로 신상정보를 공개중인 성범죄자의 수가 뜬다. 이 곳에서 검색하고 싶은 지역을 클릭해서 들어가면 된다. 지금 IE9를 사용중인데, TMap이 정의되지 않았다면서 지도가 안뜬다. 이런...


8. 정보 검색 - 조건으로 검색


지도가 안뜨면 조건으로 검색하면 된다. 정보 공개중인 성범죄자의 이름이나 지역 등을 입력하여 검색할 수 있다.

 
 

9. 정보 확인

어떤 방법으로 검색하든 정보 공개중인 성범죄자의 이름을 클릭하면 정보가 뜬다. 등록대상 정보인지 아닌지에 따라서 사진, 이름, 나이, 키, 몸무게, 주민등록상 주소, 실제 거주지와 함께 성범죄 요지가 공개되어 있다.

여기서 확인할 수 있는 정보를 다른데다 공개하면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게 되니 다른데다 캡쳐해서 퍼나르면 안된다(그래서 필자도 캡쳐 안함). 다른사람으로 하여금 어떤 식으로 정보를 볼 수 있다고 방법을 가르쳐 주는건 상관이 없으니, 널리 알리고 싶으면 방법을 가르쳐주도록 하자.


*  성범죄자 신상정보 검색이 너무 힘든 면이 있다. 특히 IE가 아닌 크롬이나 파폭 등으로는 정보공개 사이트에 접속해서 검색하기가 힘들고, 인증을 2번이나 해야하기 때문에 절차가 너무 복잡한 측면이 있다. 아까도 말했지만 왜 미성년자는 열람을 못하도록 했는지 의문이다. 



  이런 말이 있다. "미네르바의 올빼미는 밤에 난다." 무슨 철학 서적에 나온 말이라고 하는데 어느 책에 나오는지, 그리고 정말로 나오는지 안나오는지는 모르겠고, 철학자 헤겔이 『법철학』의 서문에서 한 말(딱님 제보, 10월 14일)이라고 한다. 필자는 만화책을 통해 알게 된 말이다. 지식 습득 수단이 중요한게 아니라 얻은 지식이 쓸모가 있는지, 정확한 지식인지가 중요한 것 아니겠나. 

  갑자기 삼천포로 빠졌는데, "미네르바의 올빼미는 밤에 난다."는 말이 무슨 말이냐 하면, 여러가지 사건들은 낮에 발생하고, 밤이 되어서야 그 사건을 통해 교훈을 얻거나, 대응 방안을 생각한다는 뜻이다. 쉽게말해 무슨 일이든 일어나기 전까지는 어떻게 대처해야할지 모른다는 말이다. 학문이 현실에 뒤쳐지는 것에 대한 경계라는 뜻도 있고. 이정도 말하면 대충 어떤 의미인지 감이 왔을 것이다.

  여기서 미네르바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전쟁, 시, 의술, 지혜, 상업, 기술, 음악의 여신(로마 신화에서는 아테나)이다. 몇년 전 인터넷을 달궜던 '미네르바'가 아니고. 그리고 올빼미는 미네르바의 상징이자 지혜의 사자로서, 올빼미가 난다는 것은 지혜를 얻는다는 말이다.


이분이 바로 지혜와 전쟁의 여신 미네르바(Elihu Vedder(1836~1923) 그림, 미국 의회도서관 소장 작품). 

  왜 갑자기 미네르바의 올빼미가 어쩌구 하는 이야기를 하냐면 억울해서 그렇다. 억울하고 화가 나서.

  최근 인터넷과 사회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사건이 있다. 소설과 영화 "도가니"로 재조명된 바로 그 사건 말이다. 이 사건에 대해서는 다른 곳에 많은 정보가 있을테니 다루지는 않겠다. 괜히 또 써봤자 기분만 나빠질거고. 

  이게 왜 미네르바 어쩌구와 관련이 있냐면, 오늘 뉴스를 보니까 장애인에 대한 성폭행 사건의 경우 친고죄 규정을 폐지한다고 한다. 얼마 전에는 광주인화학교를 폐교한다고 했던 것 같았는데 확실한지는 모르겠다. 아무튼, 도가니 사건이 터진건 2005년이고 지금은 2011년이다. 무려 6년이나 지났다. 6년이나 지나고 나서 시민들이 분노하니까 법을 개정하는 등 부랴부랴 불을 끄고 있다. 만약, 이 사건이 소설과 영화로 재조명되지 않았다면 이렇게 나왔을까?

  아무리 미네르바의 올빼미가 밤에 난다고 하지만 해도해도 너무하다. 6년이란 시간이 지나고 나서 법을 개정하겠다는건 밤이 아니라 동틀녘에 날기 위해 날개짓을 하고 있는 것이다. 도가니 탓인지 장애인을 성폭행한 사건에 대해 1심에서 선고한 징역 2년 6월을 깨고 항소심에서 징역4년을 선고했다고 한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징역 4년도 너무 짧다.

   이렇게 늦게라도 날개짓을 해줘서 다행이긴 하다. 하지만 앞으로는 밤이 오기 전에, 한 초저녁쯤에 날개짓을 해줬으면 좋겠다.


  Théorie de la mort 

  死, Tod, La mort, Death  

  죽음이란 무엇일까. 살아있는 모든 존재는 언젠가 죽기 마련이므로 항상 이런 생각을 해 왔다. 나만 이런 생각을 한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죽음이란 것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많은 심리학자와 철학자들도 죽음에 대한 글을 쓰고 이론을 전개했다고 알고 있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된 동기에는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가족이나 친척, 이웃처럼 가까운 사람의 죽음이 있거나 큰 병을 앓고 있어서 곧 죽을 처지에 놓여 있는 경우처럼 죽음과 연관이 있는 상황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에게 있어서는 TV와 신문에서 나오는 사건과 사고나 자살에 대한 기사와 소설과 영화, 드라마 속 주인공이나 악역이 죽는 장면, 그리고 할머니를 비롯해서 친척과 이웃의 죽음이 복합적으로 죽음에 대한 생각을 하게 하는 동기가 되었다. 여기에 더불어 어떠한 사물이나 현상에 대한 철학적인 생각을 하는 것을 좋아하는 것도 동기가 되었다.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나는 초등학교 4학년이었고, 어렸기 때문에 죽음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그리고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접한 때가 잠자고 있던 새벽이라서 비몽사몽간에 뭐가 뭔지도 잘 모르는 상황이어서 울지도 않았다. 그 당시의 나는 죽음이라는 것은 그냥 볼 수도, 느낄 수도 없는 곳으로 가는 것이라고만 생각했다. 다만 할머니가 천식 때문에 상당히 고통스러워 하셨던 것을 알고 있었기에 그 곳이 편안한 곳이길 바랄 뿐이었다. 그리고 2008년 올해 외숙모가 돌아가셨다. 암으로 인해 상당히 고통스러워하시다가 돌아가셨다. 소식을 전화로 듣고 장례식에도 참석하지 못했지만 암으로 고통 받으시던 5월경에 입원해 계시던 일산 암센터에 갔었을 때 고통스러워하시는 외숙모의 모습에 나도 모르게 눈물이 핑 돌았고 죽음에 대해서 실감을 하게 되었다. 외숙모께서는 죽음을 두려워하시지는 않았다. 하지만 나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죽음의 형체를 느끼게 되었고 왜 사람들이 두려워 하는지도 어렴풋이 느끼게 되었다.

  인간은 죽음이라는 것을 상당히 두려워한다. 인간의 기본적인 욕망인 생존에 대한 욕망에 반하는 것이 죽음이라서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리고 또한 형체가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해서도 두려워하게 된다. 만약 우리가 죽음을 경험해봤다면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어느정도 사라지겠지만 죽음을 경험해 볼 수는 없잖은가. 하지만 죽음이 과연 두려워해야 할 존재인가에 대해서는 의문이 든다. 불로불사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전해져 온다. 학식과 재능이 뛰어나고 연금술사라고 불리었던 프랑스의 생제르망 백작과 서영의 뱀파이어 전설, 길가메시 서사시 속 현인인 우트나피쉬팀, 인어고기를 먹으면 불로불사의 몸을 가지게 된다는 전설 등 수많은 불로불사, 영원한 생명에 대한 이야기들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을 만큼 사람들은 불로불사에 대한 호기심과 욕망을 가지고 있었고 죽음을 두려워했다. 진시황도 불로초를 찾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던가. 그러나 죽지 않는 것이 과연 좋기만 한 것일까.

  죽음이라는 틀 안에서 삶의 의미를 갖게 된다. 삶이 한정적이기 때문에 그 한정된 시간 안에 하고 싶은 일들과 가치 있는 일들을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고, 이로 인해서 가치와 의미가 있는 일과 그렇지 않은 일들을 구분해 내게 된다. 그리고 결국 삶을 더 의미 있고 가치 있게 만드는 일들을 택하게 된다. 만약 인간의 삶이 무한하다면, 죽음이라는 틀이 삶을 한정시키지 않는다면 그저 공허하고 아무 의미가 없는 삶을 살게 된다. 죽음이라는 것이 존재하기에 인간은 의미 있는 삶을 살게 된다는 말이다. 고로 죽음은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나는 편안하게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죽음이이라고 생각한다. 병에 걸려서 시름시름 앓다가 고통스럽게 죽는 것이나 사고로 죽는 것은 사람들이 죽음에 두려움을 갖게 되는 원인이면서 누구나 바라지 않는 죽음일 것이다. 편안하게 죽는 것은 여러 가지 방식이 있겠지만 자면서 서서히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 가장 좋은 죽음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의 손으로 자신의 생명을 빼앗는 자살은 어떠할까. 최근 故안재환 씨의 자살과 故최진실 씨의 자살은 사회적인 이슈가 되었고 베르테르효과를 일으켜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끊었다. 에밀 뒤르켐이라는 사람은 자살을 연구 주제로 삼았고, 많은 유명인들 또한 자살로 목숨을 끊었다. 나는 자살을 옹호하고 싶지는 않다. 자기가 갖는 생명권을 자기가 스스로 포기하는 것을 뭐라고 할 수는 없지만 사람의 목숨보다 중요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한다. 여러 가지 반론이 있겠지만 적어도 나는 그렇다.

  죽음에 의미를 부여해보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이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죽음은 삶을 한정시키기 때문에 삶의 질을 중시하게 한다는 의미도 갖는다. 또한 죽음은 모든 것을 끝내는 인생의 종착점이므로 고통을 없애고 편안하게 하는 의미를 갖는다고도 생각 할 수 있다. 얼마 전에 ‘라스트 사무라이’라는 영화를 보았다. 이 영화 속에서 나타난 죽음에 대해 여러 가지 해석이 있겠지만 내 생각으로는 이 영화 속 죽음은 단순한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의 밑바탕이 되며 과거의 정신의 계승이라는 의미를 가지는 것 같다. 영화 속 상징적인 죽음은 자살이라 탐탁치는 않지만 나름대로의 의미는 가진다고 생각된다. 남을 위해 목숨을 버리는 희생도 의미를 갖는 죽음이다. 자신의 생명을 과감히 포기하고 타인의 생명을 구하겠다는 정신은 존경 받을 만하다. 며칠 전 개봉한 영화 ‘너를 잊지 않을거야’는 실제로 있었던 故이수현 씨의 살신성인 정신을 추모하며 만든 영화이다. 생면부지의 타인, 그것도 같은 민족도 아닌 사람을 구하겠다고 자신의 생명을 포기한 것은 누구도 욕할 수 없고, 욕해서도 안되는 것이다. 죽음이라는 것은 이 외에도 얼마든지 의미를 가질 수 있다. 이 세상에 무의미한 것은 없다.

  나만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법학과 학생이라는 특성상 죽음을 객관적 사실로 느낄 때가 많다. 특히 형법 사례 문제에서는 강간, 강도, 살인 같은 강력범죄를 단순히 글자로만 바라보기 때문에 사례에 대해 슬프다기 보다는 그냥 그런 사실이 있었구나 하는 정도로만 여기게 된다. 한 사람의 죽음이 살인죄의 결과인지, 이로 인해 처벌받는 사람은 누구고 어떻게 처벌할 수 있는지, 행위자의 고의에 의한 죽음인지 아니면 과실에 의한 죽음인지 생각하는 것처럼 죽음에 대한 철학적 탐구보다는 법적 사고와 사실적 인식에 머물게 된다. 또한 언론에 보도되는 수많은 사람들의 사망 통계는 사람의 생명이 그저 숫자 하나로 표시된다. 그러나 사람의 생명이 숫자로 표시될 정도로 무가치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고 그들의 죽음도 나름대로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의 죽음만 생각해 볼 것이 아니라 사물이나 추상적인 것들의 소멸도 생각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이 세상에는 영원한 것이 없다. 금강석도 언젠가는 깨어질 것이고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도 태양의 폭발에 휘말려 소멸될 것이다. 정신은 영원하다지만 그 정신도 언젠가는 잊혀질 것이다. 신이라는 것 자체는 존재도 입증할 수 없고 무신론자들에게 있어서는 헛소리다. 이렇듯 죽음과 소멸이라는 것은 필연적인 것이고 사람과 사물에게 의미와 가치를 부여한다. 무한한 것이 있다면 과연 가치가 있을까? 희소하기 때문에 가치를 인정하고 너나 나나 가지려고 하지 않는가? 모순된 말이겠지만 ‘영원하지 않은 것만이 영원하다’는 말이 떠오른다.

  만약 내가 죽음을 앞에 두고 있다면 과연 나는 의연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나도 확답은 할 수 없다. 하지만 처음에는 혼란스럽고 슬프겠지만 정신을 가다듬고 죽음을 똑바로 바라본다면 괜찮아 질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다. 사실 앞의 가정을 했지만 인간은 언제 죽을지 모른다. 당장 내일 사고로 죽을 수도 있고 나도 모르는 병에 걸려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죽을 수도 있다. 그러나 왜 이런 말도 있지 않은가. ‘죽은 시인의 사회’라는 영화에도 나왔던 대사인 라틴어 'Carpe Diem'이라는 말 말이다. 영어로 번역해자면 Sieze the Day고 한국어로 번역하자면 미래에 대한 걱정을 떨쳐버리고 현재를 즐기라는 것이다. 우리가 언젠가는 죽는다는 것을 알고 있는 이상 그에 대해 아무리 걱정해도 소용이 없다. 그냥 현재를 살면 되는 것이다. 걱정한다고 죽음이 도망가겠는가? ‘불확실한 미래보다 확실한 현재에 충실하자’와 ‘오늘은 어제 죽은 자가 간절히 바란 내일 이다’라는 말을 좌우명으로 삼고 있다. 죽음에 대해서도 ‘아직 오지도 않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고 현재에 충실하고, 현재에 충실하다면 다가올 죽음도 반가이 맞이할 것이다’라고 여기고 있다.

  죽음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은 누구나 다를 것이다. 그리고 정답도 없을 것이고 죽음에 대한 태도도 다를 것이다. 다만 나는 죽음이란 무의미하지 않다는 것과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  2009년 1학기, 강원대학교 교양수업 "사랑과 죽음" 기말고사 대체 리포트에서 발췌한 글 

  오늘 접한 뉴스에 따르면 조용기, 김삼환, 김홍도 목사 등 여러 목사들이 기독교 극우 정당을 만드려는 움직임이 있다고 한다. 관련 기사는 http://well.hani.co.kr/46721



 정말이지 어이가 없다. 그쪽에서는 여러가지 이유를 대고 있는데, 어떤 이유든간에 종교와 정치는 분리되어야 한다. 대한민국 헌법 제20조 2항은 "국교는 인정되지 아니하며 정치와 종교는 분리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종교가 정치에 개입하거나 정치가 종교에 개입하지 못하게끔 헌법으로 정하고 있다.

  그런데 기독교 극우 정당을 만들겠다고? 이는 헌법에 대한 도전이며, 헌정질서를 파괴하는 행동이다. 만약 창당되더라도 헌법재판소가 해산시킬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헌법 제8조 4항에 의하면 "정당의 목적이나 활동이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될 때에는 정부는 헌법재판소에 그 해산을 제소할 수 있고, 정당은 헌법재판소의 심판에 의하여 해산된다."고 규정하고 있는바, 종교적 성향을 띤 정당이라 하더라도 해산시키기는 힘들 것 같다.

  정치 성향은 둘째치고 대체 제정분리 사회에서 기독교 정당을 만들겠다는 생각은 누구 머리에서 나왔는지 그 머릿속을 한번 열어보고싶다. 시간을 좀 두고 보면 알겠지만 헌정 질서를 파괴하려는 이같은 행동에 대해 자칭 보수세력들이 어떻게 나올지 궁금하다. 진정한 보수세력이라면 헌정질서를 파괴하려는 이같은 행동에 반대해야 정상이다.

  나는 이 페이지를 빌어 기독교 극우 정당의 창당을 극구 반대하며, 제발 창당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그냥 해프닝으로 끝나길 간절히 바랄 뿐이다. 종교는 절대 정치에 개입해서는 안된다. 
네이트 메인에도 있지만 저처럼 헤멘 분들을 위해 주소 남겨둡니다.

http://www.nate.com/nateInfo/noticeInfo.aspx



물론 저도 털림



네이트 이 개객끼들 개인정보 유출되도 미안하면 다야?
보상은 안해주냐? 


http://media.daum.net/society/affair/view.html?cateid=100007&newsid=20110720100025524&p=yonhap


  고교생이 투신 자살한 60대 여성을 성폭행 한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참으로 엽기적인 사건입니다. 강간을 했다 하더라도 충분히 충격적인 사건인데, 시간(屍姦) 했다고 하니 더욱 충격적이네요. 이에 경찰은 피의자인 A군에 대해서 사체오욕등의 혐의로 구속했다고 합니다.

  사안의 엽기성으로 보아 기소유예를 할 것 같지는 않고, 사체오욕죄로 기소를 할 것으로 보입니다. 왜냐 하면 강간죄는 살아있는 부녀를 객체로 하고 있으므로 애초에 강간죄가 성립되지 않기 때문이죠. 형량을 비교해보면 강간죄가 더 형량이 무겁습니다만, 강간죄가 성립 될 여지가 없으니 어쩔 수가 없습니다. 

  강간죄의 불능 미수도 검토해 볼만 하지만, 애초에 A군이 시신인 것을 알고 시간(屍姦)을 한 것이므로 불능 미수도 성립이 안되고, 성립이 된다 하더라도 위험성이 없다고 판단되므로 형이 면제됩니다.

제297조(강간) 폭행 또는 협박으로 부녀를 강간한 자는 3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한다.
제159조(사체등의 오욕) 사체, 유골 또는 유발을 오욕한 자는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이번 사건이 시사하는 바는 큽니다. 바로 강간이 아니라 시간(屍姦)이었다는 점이 바로 그것이죠. 왜냐 하면 시간(屍姦)을 하는 자들은 주로 시체애호증(Necrophilia)을 앓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번 사건의 피의자인 A군이 시간(屍姦)을 저지르게 된 이유가 시체애호증(Necrophilia)에 기인한 것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에 대해서 심리 검사를 실시할 것으로 보입니다.

  시체애호증(Necrophilia) 

  이는 성관련 살인과는 차이를 갖고 있는데, 성관련 살인은 과격하고 가학적인 성적 행위를 통한 살인, 즉 살인을 위한 성적 행동의 증가라고 본다면, 시체애호증은 죽은 시체에 대해 성적 흥분을 경험하고 있는 자로 시체를 성행위의 대상으로 삼는다. 이미 사망하였거나 죽어가고 있는 사람을 바라보면서 성교를 하거나, 자위를 함으로써 성적 쾌감을 얻는 경우이다. 달리 말해 성관련 살인자와 시체애호증을 '살인행위'에서의 차이로 보자면 성관련 살인은 마지막 단계가 살인이 될 것이고, 시체애호증자들은 첫 단계가 살인의 단계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시체강간을 한 경우가 있다고는 하지만 이는 피해자의 죽음을 인식하지 못한 상태에서 이뤼졌던 성행위로, 아직 국내에서 이 같은 사례가 공식적으로 보고되지는 않고 있다.

<ex>시체애호자(Necrophiliac; 이수정, 최신 범죄심리학 2판, 학지사, 273p에서 재인용)

   Smith와 Braun(1978)은 살인죄로 형을 받은 한 남자에 대한 사례를 보고하였다. 이 경우에서 살인자가 여성을 살해한 후에 성교를 하였다고 보고하였다. 시체애호(Necrophiliac, 시체에 성적인 매력을 갖는 것)는 희귀한 것이다. 살인과 병행된 경우는 더더욱 희귀한데 범죄자는 죽은 여성과 성교를 한 것이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고 보고했다. Smith와 Braun이 제공한 설명 중 하나는 정신분석 이론에서 유도된다. 간략히 말해서, 시체애호증은 해결되지 않은 오이디푸스(Oedipus) 콤플렉스와 거세불안의 결과라는 것이다. 즉 범죄자는 자신의 엄마에 대한 사랑과 애정을 추구하였다. 다른 여성들은 자기 엄마의 애정에 대한 상징이고, 그는 사랑을 추구하였다. 그러나 범죄자는 그의 아버지가 자신의 의도를 안다면, 자신을 거세시킬 것이라고 두려워하였다. 정신분석이론에서 사랑에 대한 이런 욕망은 본능적인 것이고, 항상 직 · 간접적으로 표현된다. 다른 관점은 사회학습이론에 바탕을 둔 것이다. 범죄자의 행동은 성교의 효과를 강화시킴으로써 유지되었다. 그는 성교도중 파트너를 목 졸라 죽였다. 이전의 성적인 파트너들은 이것을 '성적인 게임'으로 여겼고, 이것은 무의식으로 가장되었으며, 이것이 그의 흥분을 고조시켰다. 따라서 성교와 무의식의 상을 연합시키는 역사가 있었던 것이다. 또한 범죄자는 어렸을 때 아버지가 시체와 성교하는 것을 본적이 있다고 했다. 과연 어떤 설명이 옳은 것인가?

- 이수정, 최신 범죄심리학 2판, 학지사, 273p



  일각에서는 학교 내 폭력과 게임을 이번 사건의 원인으로 삼고 있습니다. 학교 내 폭력에 의해 그동안 쌓인 열등감과 분노가 이런 식의 폭력성으로 분출된 것이다 라는 주장으로 보이며, 과도한 게임에 의해여 감각이 무뎌지고, 호기심을 자극하여 이러한 일이 벌어진 것이다 라고 주장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열등감과 분노가 폭력성으로 표출되면 시간(屍姦)보다는 강간이나, 무차별 살인, 무차별 폭행, 동물 학대 등으로 나아가는 경향이 더 많습니다. 또한 게임을 원인으로 돌리기에도 부족한 점은, 대체 어떤 게임을 해야 시간(屍姦)을 해봐야겠다는 마음이 생기겠냐는 겁니다.

  아직 수사중이므로 어떠한 사건이 원인이 되었는지 속단하기는 이른 것 같습니다. 위의 두가지 원인도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도 없는 것이구요. 수사가 어느정도 진행되고 심리검사까지 끝나봐야 원인을 제대로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제목 선정은 거창하게 했지만, 학식이 부족한 일개 20대 법대생이 쓰기에는 너무 자만에 가득찬 제목이 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제가 그동안 쓰기로 마음먹고 구상하고 있던 글이라 감히 욕을 먹을 각오를 하고 키보드를 두드립니다. 

  정치 체제에는 여러가지 형태가 있습니다. 민주정, 공화정, 군주정, 폭군정, 귀족정 등이 바로 정치 체제를 설명하는 단어입니다. 이 중에서 우리나라 대한민국은 헌법에서 대한민국은 민주 공화국이라면서 민주정과 공화정을 채택하고 있습니다. 민주정이란 말은 시민이 국가의 주인이라는 말이며, 공화정은 소수에게 권력이 집중된 군주정이나 귀족정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이 글은 민주주의 국가인 대한민국에서 대통령은 과연 어떠한 역할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쓴 글입니다. 사실 앞에서 말했듯이 학식이 부족한 20대 법대생이 쓰기에는 많이 부족한 글이겠지만, 헌법 공부를 하면서 느끼고, 책을 읽으면서 느낀점이 많아서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대통령 상과 민주주의에 대해서 쓴 글이니 너그럽게 봐주셨으면 합니다.

   대통령이라 함은 민주주의 국가에서 국민들이 정당한 참정권을 행사해서 선출된 국가와 국민들의 대표입니다. 하지만 대통령은 국가와 국민들의 대표이지, 국부는 아닙니다. 그 점에서 어르신들이 대통령보고 나랏님이라고 하는건 올바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민주주의 국가는 어디까지나 시민들의 국가의 주인이기 때문입니다. 따지자면 나랏님은 국민들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그러므로 대통령은 국민들이 하지 말라는 일을 해서는 안됩니다. 앞에서 말했듯이 국민들의 머슴이나 다름없기 때문이죠. 만약 대통령이 옳고 국민들이 틀렸다고 하더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왜냐하면 국가의 주인인 국민들이 선택한 사항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잘못된 선택에 대한 책임은 누가 지느냐에 대한 물음이 생길겁니다. 이 물음에 대한 대답은 간단합니다. 국가의 주인인 국민들이 지는 겁니다. 주인이 그 선택을 했고, 선택을 한 본인이 책임을 지는건 당연한 이치이기 때문입니다. 개인을 기준으로 봐도 성인은 자기가 한 행동에 대해 타인에게 책임을 미룰 수 없고, 본인이 책임을 지는 것은 당연합니다.

  이쯤에서, 한가지 의문이 생길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왜 대통령이 필요하냐는 의문이죠. 

  민주주의에도 형태가 있습니다. 일부 국가는 대통령제를 채택하고 있고, 일부 국가는 의원내각제를 채택하고 있습니다. 이 두가지 형태에도 공통점이 한가지 있죠. 바로 대의 민주주의라는 것입니다. 민주주의의 기원이라고 말하는 고대 그리스는 폴리스라는 도시국가의 형태를 취하고 있기 때문에 모든 시민들이 한 곳에 모여 의사를 결정하는 직접민주주의가 실현될 수 있었습니다만, 국가의 규모가 커지고 모든 시민들이 한 곳에 모여 의사결정을 하기 힘들기 때문에 시민들의 대표를 선출하고, 그 대표들이 의사 결정을 하는 직접 민주주의로 자연스레 변하게 된 것이죠.

  이렇게 대의민주주의가 생기게 된 괴정에서 보듯이 대통령과 국회의원은 대의 민주주의 하에서 국가의 주인인 시민들의 대표로 선출된 것입니다. 절대로 시민들 위에 군림하는 존재가 아닙니다. 절대로요. 그리고 이들에게 따라다니는 말이 있습니다. 바로 "민주적 정당성". 이들이 민주적으로 선출되고, 정당하게 시민들이게 권력을 위임 받았는지에 대해서 설명하기 위한 말입니다. 현행법상 사법부는 입법부나 행정부에 비해 민주적 정당성이 떨어지는건 사실입니다. 시민들이 이들을 구성하지 않기 때문이죠.

  이쯤에서, 대통령에 대해 비판을 하면 받는 비판에 대해 몇가지 적어보겠습니다.

  먼저, 대통령이니까 일단 믿고 보자는 비판에 대한 것입니다.

  대통령은 맹목적으로 믿으면 안됩니다. 대통령도 일단 사람이고, 개인입니다. 대통령이 국익보다 사익을 우선시 할 가능성도 항상 존재합니다. 가능성이 1%라도 있는 이상은 그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시민들은 대표인 대통령을 감시하고, 비판 할 의무가 있습니다.

  다음으로, 뽑아놓고 왜 비판하냐에 대한 것입니다.

  대답할 가치도 못느끼는군요. 시민들의 민주적으로 선출했으니까 비판하는건 당연한 것 아닙니까? 간단히 말해서, 일꾼을 채용하고 일꾼이 일믈 제대로 못하더라도 일좀 잘 하라고 다그치지도 못하거나 해고도 못하고 가만히 있을 수는 없는 일 아닙니까? 조금만 머리를 굴려보세요. 절대로 대통령은 시민들의 주인이 아니라 머슴입니다. 이 것이 민주주의의 기본이라구요.

  그 다음으로, 대통령은 국부라는 것에 대한 것입니다.

  앞에서 누누히 말했듯이 대통령은 절대 국부가 아닙니다. 민주주의에서 국부는 무조건 "국민"입니다. 민주주의의 의미를 되새겨보면 간단하게 나오는 답입니다. 


























































































오늘 컬투쇼에서 듣고 빠져버렸네요.
- 책을 보고 친거라 중간에 오타가 나올지도 모르니 지적해 주시면 수정하겠습니다.


테슬라, 논란의 삶과 죽음 - 진 매닝


전기는 어디에나 있다. 그 양은 무한하여 석탄이나 석유, 가스, 또는 어떠한 화석연료를 사용하지 않고도 전 세계의 기계를 운행할 수 있을 것이다.

니콜라 테슬라


1988년 7월, 콜로라도 스프링스, 테슬라 국제 심포지엄

  내 옆에 앉은 남자는 눈에 띄지 않으려는 듯이 감정을 억제하며 조용히 훌쩍이고 있었다. 그는 두꺼운 안경을 쓴 뚱뚱한 남자로, 그런 외모가 아니었더라면 회의장에 모인 200명 남짓한 전기공학자들이나 테슬라의 팬들 중 눈에 띌 만한 구석이 없는 평범한 사람이었다. 다른 관객들은 방금 웅변적인 연설을 하고 연단을 내려가고 있는 과학자에게 아직 시선을 집중하고 있었다.

  옆에 앉은 남자가 감동을 받은 이유를 헤아리기란 어렵지 않았다. 초청연사로 나온 천체물리학자 애덤 트롬블리는 관객들을 감동의 순간으로 이끌도록 계산된 연설을 하고 있는 듯이 보였다. 먼저 그는 자신들의 영웅에 대한 칭송으로 관객들의 공감을 얻어 냈다. 테슬라는 세기의 전환기를 살았던 천재적인 과학자로, 교류전류 기술과 레이더, 형광등, 날개 없는 터빈 등을 발명했다. 뿐만 아니라 그는 로봇이나 로켓,입자광선 따위에 대해 최초의 실천적인 논의를 한 사람이다. 트롬블리는 이 사회가 '세기가 바뀔 무렵 마차를 타고 지금은 호텔이 된 이 근처를 지나면서 테슬라가 생각했던 아이디어를 도입했다면, 오늘날 우리는 화석연료 경제 속에 살고 있지 않을 것'이라며 얘기를 이어갔다. "그리고 그 화석연료 경제에 입각해서 모건이나 록펠러, 기타 많은 자본가들이 천문학적인 재산을 긁어모으지 못했을 것이다."


우주의 '진공'에서 얻는 우주에너지

  트롬블리는 테슬라의 미래관이 세상 사람들의 지지를 얻었다면 우리는, 마치 우주라는 샘에서 물을 긷듯이, 청정하고 풍부한 에너지의 세상에서 살고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마침내 오늘날의 물리학 문헌들도 이러한 진공 에너지를 다루기에 이르렀다.

  ……비주류 문헌만이 아니다. 《피지컬 리뷰》는 1975년 이후, 《현대물리학 평론》은 1962년 이후, 그리고 유럽의 물리학계는 이미 1950년대부터 이 문제를 다루었다. 1987년 해럴드 풋호프는 《피지컬 리뷰》에 발표했던 논문에서, 기저상태(바닥상태)의 수소원자가 붕괴하지 않으려면 진공으로부터 에너지를 흡수해야 한다고 지적한 바 있다.

  트롬블리는 이러한 학계의 연구들이 테슬라의 주장을 더욱 뒷받침해 주는 증거들이라고 보았다. 그는 19세기의 테슬라가 이미 '언젠가 인류는 인류가 만든 모든 기계를 자연의 톱니바퀴, 즉 진공 공간 에너지에 의지하게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전자(電子)는 에너지 배경장(background field)에서 자연히 만들어지는 것이며, 그렇지 않다면 '만물은 특정한 시점(始點)을 갖고 있다는 네안데르탈인 같은 생각을 받아들여야 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초청연사는 관객들이 자신의 냉소적인 유머를 이해할 수 있도록 잠시 기다리는 듯 하더니 설명을 덧붙였다.

  "우리가 지난 수십 년간 빅뱅이론을 붙들고 있는 동안, 몇 가지 실질적인 문제가 노출되었어요."

  하지만 더욱 발전된 우주론에서는, 만물을 에너지로 충만한 배경장의 변형태(變形態)로 본다. 우리의 물리적인 신체는 상대적으로 사소한 장 변형이다. 배경장 자체는 중량으로 환산하면 세제곱센티미터당 1094그램의 힘에 해당하는 피텐셜에너지(위치 에너지 따위의 잠재적 혹은 내재적인 에너지)를 갖고 있다. 이와 비교하여 인간의 신체는 세제곱센티미터당 1그램에 해당하는 에너지를 갖고 있다. 이것은 배경장이 인간의 신체보다 10의 94제곱 배나 많은 에너지를 갖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루즈벨트에게 얘기했던 계획

  이것은 엄청난 양의 에너지다. 그런데 왜 킬로와트 급의 우주에너지를 담을 수 있는 휴대용 장치를 발명하지 않았을까? 이것은 '세제곱센티미터당 1094그램의 힘에 비하면 너무나도 적은 수박 겉핥기 정도에 지나지 않는 양'이기 때문이었다.

  "1943년에 테슬라가 프랭클린 루즈벨트를 만나려고 했던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이었습니다. 1943년에 그는 루즈벨트에게, 우주로부터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에너지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점을 세심하게 조사해볼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약송 장소에 나타나지 못했어요. 아파트에서 시체로 발견되었기 때문이죠. 사인은 '자연사'였답니다."

  공식적으로 발표된 사인은 자연사였지만, 평소 테슬라가 독살당할지도 모른다는 편집증적인 공포를 보인 것으로 보아 단순히 정신병 이상의 뭔가 다른 징후가 있었다고 트롬블리는 조용히 덧붙였다. 그는 자신의 이러한 생각과 관련하여 한 사건을 얘기했다. 1981년 그는 캐나다의 토론토에서 비주류 에너지학에 관한 강연을 했다. 강연이 끝나자, 강한 뉴옥 억양을 쓰는 한 늙은 신사가 그에게 찾아와, 자기는 테슬라의 시체가 발견되었을 때 사건을 담당했고 조사에 관여했던 형사였다고 말했다. 늙은 남자는 자신이 형사였다는 낡은 증명서를 트롬블리에게 보여주었다.

  트롬블리는 조용한 목소리로, 노인이 "국가안보상의 이유 때문에 테슬라가 독살당했다는 코로너의 보고서 내용이 전여 홍개되지 않았다"는 말을 했다고 얘기했다.

  콜로라도 스프링스의 회의장에 이 이야기가 발표되자 테슬라 협회 사람들은 아무도 입을 열지 못했다. 강연자로 나온 물리학자가 가볍게 스캔들을 입에 담아 구설수에 올릴 만한 인물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트롬블리의 강연이 끝나고 청중들의 박수가 터져 나올 때까지도 침묵은 계속되었다.

  테슬라의 이야기가, 한 죽은 발명가의 삶이 다른 세대의 기술자들에게 왜 그렇게 감동을 주었는가를 이해할 수 있으려면 몇 가지 중요한 사건들에 관해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


천재의 어린 시절

  1800년 말, 도시를 밝히는 교류전류의 발전 및 송전 시스템의 발명자들이 세계에 알려질 무렵, 그는 우아한 차림새의 위트 넘치는 독신남이었다. 하지만 발명에 관한 그의 인생은 거기서부터 시작된 것이 아니었다.

  1856년, 지금은 유고슬라비아가 된 스밀랸의 시골 마을에서 태어난 테슬라는 어린 시절에 콜레라를 앓았고, 그로 인해 형을 잃음으로써 자연과의 신비한 조우를 발바닥부터 머리끝까지 경험했다. 그의 아버지는 시를 쓰는 목사였고, 어머니는 사진 같은 기억력을 가진 이야기꾼이었다. 뿐만 아니라 그녀는 가사노동을 줄일 수 있는 여러 가지 장치를 만들기도 했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발명가로서 재능을 보여 여섯 살 무렵에 날개 없는 독특한 물레방아를 만들어 개울가에 세워 두었다. 뿐만 아니라 살아 있는 풍뎅이 열여섯 마리로 움직이는 모터를 만들어 아버지를 놀라게 했다. 하지만 아버지는 그가 가업을 이어 성직자가 되어야 한다는 고집을 꺾지 않았고, 일찍부터 엄격한 정신적 교양을 쌓게 했다.

  테슬라는 성년이 되어서야 가까스로 아버지의 허락을 얻어, 신학이 아닌 공학을 공부할 수 있었다. 그라츠에 있는 오스트리아 기술학교를 거 쳐 1880년에 프라하 대학을 마친 다음, 유럽의 전화회사에서 근무하며 많은 것을 배웠다.

  한편, 대학시절부터 그에게는 어깨를 짓누르는 매우 어려운 문제가 있었다. 전기 모터와 발전기를 개량하겠다는 것, 발전기는 본질적으로 끊임없이 방향이 변화하는 유형의 전기, 즉 교류전류를 생산할 수밖에 업다. 테슬라는 직관적으로 교류전원을 이용하여 전기 모터를 돌릴 수 있을 것이며, 정류기에서 발생하는 스파크 방전으로 인한 효울 저하를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그의 생각은, 전기 모터는 직류전원에 의해서만 구동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교과서적 지식과 상반된 것이었다.


자기 회오리 발견

  담임 교수의 조롱에도 굴하지 않고 테슬라는 좀더 좋은 방법이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버리지 않았다. 이 문제에 대한 연구에 몰두하던 그는 결국 건강이 악화되었다. 요양하는 동안 기계와 체육을 전공하던 한 친구가 찾아와 부다페스트를 가로지르는 장거리 산책을 제안했다. 1882년 함께 공원을 걷던 테슬라는 태양이 지는 것을 보면서 갑자기 영감을 얻었다. 교류전기로 모터를 구동한다는 기술적 난재를 해결할 수 있는 획기적인 전기를 마든 것이 바로 그때였다. 테슬라는 독일의 시인이자 대문호 괴테의 《파우스트》의 한 구절을 인용하며 그 순간을 회상했다.


광채가 스러지면, 업적은 고단한 노고의 시작.
저 멀리서 채근하나니, 삶의 새로운 탐구 영역이여.
아, 지상의 나를 들어올려줄 날개가 없도다.
가야 할, 비상해야 할 그 길로.


  길에서 멈춰선 테슬라의 눈앞에 생생한 그림이 펼쳐졌다. 마치 회전운동을 하는 자기장이, 삼차원 홀로그래픽처럼 눈앞에서 전기 모터가 돌아가기 시작했고, 손을 뻗어 안으로 집어넣었다. 그는 소용돌이치는 자기장을 눈으로 보았다. 자기장은 서로 엇갈린 교류전류에 의해 유도된 것이었다. 그는 원을 네 부분으로 나누어 배치·분리된 코일을 보았다. 첫 번째의 교류전류가 자석을 끌어당기는 전자기장을 생성시키도록 코일에 에너지를 전달하고 사라졌다. 두 번째 전류가 이에 겹쳐지며 다음 번 코일에 전기를 전달하여 자석을 더욱 끌어당긴 다음, 마찬가지로 사라졌다. 테슬라는 이 과정을 태양이 우주를 여행하며 '가는 곳마다 생명을 주는' 것에 비유했다.

  흥분에 겨운 테슬라는 말없이 손을 내저었다. 친구는 그를 가까운 벤치로 데려가 앉히려고 했지만, 테슬라는 짚고 있던 지팡으로 땅 위에 도면을 그리며 소리를 질렀다

  "보게나, 이게 내가 고안한 모터야! 내가 이걸 거꾸로 돌릴테니, 보게."

  친구는 그가 미쳤다고 생각했다. 테슬라는 사실 그 순간 다른 세계에 있었다. 영상이 움직이는 것을 보면서, 그는 훗날 20세기를 움직이는 전기 원리를 깨닫게 되었던 것이다.

  움직이는 자기장이라는 개념은 단순히 모터를 개량하는 원리 이상이었다. 바로 전기산업의 혁명이었다. 그는 한 번에 대여섯 개 정도의 전류가 겹 쳐서 진행되는 도면을 그렸고, 이것은 다상전류 송전 시스템의 토대가 되었다. 하짐나 먼저 이 세계를 바꿀 발명을 현실로 옮길 수 있도록 자금을 지원할 투자자들을 설득해야 했다. 다음 해에 파리에서 일자리를 마련함으로써 발판을 마련했고, 그곳에서 발전기 수리기술자로 이름을 날림으로써 콘티넨탈 에디슨사의 주목을 끌 수 있었다. 그는 두 번째 단계로 스트라스부르 시장의 주선으로 유력한 투자가들 앞에서 그의 첫 유도 모터를 시연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방전되지 않는 모터라는 테슬라의 미래상을 이해하지 못했다.


막노동꾼에서 백만장자로

  그는 틀림없이 미국에서는 환영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스물여덟 살의 젊은 테슬라는 기회의 땅으로 건너갈 준비를 마쳤고, 곧장 개발에 착수하면 자신의 위대한 발견이 인류의 이익을 위해 쓰여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파리를 떠나기 전, 콘티넨탈 에디슨사의 상사가 토마스 에디슨에게 추천장을 써 주었다.

  "나는 두 사람의 위대한 발명가를 알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한 사람은 물론 당신입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은 바로 이 젊은이입니다."

  1884년 6월 6일 뉴욕 항에 도착했을 때, 테슬라의 주머니에 있는 돈은 단돈 4페니가 전부였다. 배를 타고 오던 도중에 도둑을 맞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의 풍모는 빈곤에 지친 전형적인 이민자들의 모습과는 달랐다. 중절모와 세련된 코트를 걸쳐 입은 그의 모습은 귀족의 풍모를 갖추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다행히 에디슨에게 보내는 소개장은 아직 갖고 있었다.

  당시 에디슨의 나이는 서른일곱 살이었고, 발명가뿐만 아니라 이미 사업가로서도 능력을 인정받고 있었다. 그는 처음에는 테슬라의 우상이었다. 유럽인의 겸손으로 그는 에디슨의 성공을, 몇 년 안 되는 정규교육 이후 오로지 시행착오를 통해 일궈냈던 성과를 존경했던 것이다. 그는 에디슨의 무례한 태도 따위에는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러나 에디슨은 한편으로 교류전기를 실용화시킬 수 있는 테슬라의 이론을 달갑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전등에 직류를 채용했으며, 직류기술 개발에 모든 노력을 쏟아붓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테슬라에게는 에디슨의 직류발전기와 선박용 모터를 수리·개량하는 일이 맡겨졌다. 그는 에디슨의 맨해튼 공장에서 하루에 18시간씩 일하며 곤란한 기술적 문제를 해결함으로써 에디슨의 인색한 칭찬을 얻어 낼 수 있었다.

  하루는 테슬라가 에디슨이 개발한 발전기의 효율을 어떻게 개선시킬 수 있는지 설명하자, 에디슨은 이렇게 대꾸했다고 한다. "거기에 오만 달러는 내놓겠네. 자네가 성공한다면 말일세." 이 유럽의 이민자는 32시간 동안 쉬지 않고 일을 했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나 새 발전기의 실험이 끝나자, 에디슨은 개량된 발전기로 돈을 긁어모을 준비를 했다. 그렇지만 테슬라가 에디슨을 찾아가 약속했던 5만 달러를 달라고 했을 때, 에디슨은 돈을 내놓지 않았다.

  "이보게 테슬라, 자넨 미국식 유머를 이해 못하는군."

  테슬라는 탁월한 유머감각을 가진 사람이었지만, 구두계약이라고 하여 멋대로 취소해도 달가워할 수 있는 사람은 아니었다. 그는 그 방을 나와 동료들과 함께 삽질이나 계속해야 했다.

  그로부터 2년이 지난 후에 비로소 행운이 찾아왔다. 교류 다상전류 송전 시스템을 개발할 수 있는 기회를 얻어 교류 모터와 정류기, 발전기의 특허를 얻어냈던 것이다. 1891년까지 테슬라는 교류유도 모터와 다상 송전 시스템에 관한 40개의 특허를 등록했다.

  테슬라가 역사를 바꾸어 놓을 수 있도록 도와주었던 사람이 바로 기업가이자 철도용 공기식 브레이크의 발명가인 조지 웨스팅하우스였다. 피츠버그에 살던 웨스팅하우스는 팔자 모양의 콧수염에 작달막한 체형이었지만 사업에 있어서는 추진력이 있는 사람이었다. 그는 나이아가라 폭포와 같은 거대한 수력자원을 이용하여 전기를 생산하고, 전선을 통해 고압으로 원거리까지 송전할 수 있는 테슬라의 기술적 전망을 공유했다. 그는 교류 시스템에 관한 테슬라의 특허를 모두 사들였고, 대신 현금 100만 달러와 함께 이 시스템이 1마력의 전기를 생산할 때마다 2.5달러의 로열티를 지불한다는 계약서에 서명했다. 테슬라는 아마 앞으로 더 이상 돈 문제를 걱정할 일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으리라. 마음 속에 담고 있던 것을 개발하는 데에 전력을 다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으리라.


큰 도박

  소위 '전류전쟁', 즉 직류와 교류 사이의 전쟁은 웨스팅하우스와 테슬라를 기다리고 있던 첫 번째의 도전이었다. 당시 미국은 아직 전력망을 갖추고 있지 않았지만, 직류 사용을 옹호하는 집단들이 토착적인 이해관계를 형성하고 있어서, 발전이나 송전, 전류의 사용에 교류가 도입되는 것에 대해 완강하게 저항하고 있었다. 반대파의 대표자는 에디슨이었다. 그의 발명이 모두 직류에 뿌리는 두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직류는 원거리 송전이 불가능하다. 전등과 전열기, 기타 전기장치에 직류로 전원을 공급하려면, 적어도 1제곱마일마다 발전소가 하나씩 필요했다. 그렇게 발전소를 세웠다고 해도, 말단에 있는 전구는 거의 불이 들어오지 않는다. 만약 에디슨의 직류가 이 전쟁에서 승리했다면, 고층 빌딩이나 엘리베이터 따위는 꿈도 꾸지 못할 일이었다.

  테슬라는 교류가 직류보다 배전에 유리하다는 점을 알고 있었다. 교류는 아주 얇은 전선으로도 고압의 전류를 수백 킬로미터까지 손쉽게 송전할 수 있으며, 변압기를 이용해 전압을 낮추면 가정용으로도 쓸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전류전쟁에서 많은 동물들이 희생양이 되었다. 전쟁이 진행되는 동안, 에디슨이 교류에 대한 직류의 이점을 선전하는 연설을 하고 있을 무렵, 뉴저지 주 실험실 근처의 개와 고양이들이 의문의 실종을 당했다. 1887년 내내 에디슨과 에디슨의 직원들은 매일같이 거리에서 동물들을 포획하고 다녔고, 밤에는 리포터들과 다른 관계자들을 초청하여 무고한 개들을 얇은 양철판 위에 올려놓고 고압전류에 감전되면 어떻게 되는지를 보여주었다. 물론 테슬라와 웨스팅하우스의 교류전류를 이용해서 말이다. 그리하여 에디슨은 감전을 가리키는 말로 '웨스팅하우징'이라는 말을 썼다.

  에디슨의 진영은 교류전류를 감전·감전사와 연결시키는 전략의 일환으로, 협박성 광고전단을 만들어 웨스팅하우스가 그다지도 위험한 교류전류를 각 가정에 도입하려고 한다고 겁을 주었다. 그렇지만 에디슨은 전압이 가정용으로 변압될 것이라는 사실을 의도적으로 누락시켰다. 이 같은 허위선전을 통해 에디슨은 사람들이 낮을 효율성에도 불구하고 직류를 지지하게 하려고 했던 것이다.

  교류가 위험하다는 비난을 무마시키기 위해 테슬라는 대응적인 쇼맨십을 개발했다. 몸에 전류가 통해도 아무 해가 없는 것을 증명하려고 했던 것이다. 흰색 타이와 연미복, 그리고 코르크로 밑창을 댄 구두를 신고 그는 연단에 섰다. 수십만 볼트의 전류가 딱딱, 찍찍거리는 소리를 냈고, 테슬라는 이 전류가 자기 몸 위를 지나 손에 든 전구에 불이 들어오게 했다. 실은 전압이 매우 높아도 전류량을 줄이고 진동수가 큰 전류를 썼던 것이다. 그런 전류는 몸 위를 지나더라도 중요한 장기(臟器)까지 도달할 수 없다. 그러나 실제 가정에서 쓰는 전기의 주파수는 60헤르츠이며, 이 실험과 같은 높은 주파수의 전류가 공급되는 것이 아니다. 에디슨에게 대응하기 위한 하나의 속임수였던 것이다.


거물이 웨스팅하우스에게 압력을 행사하다

  거대한 수력발전소 건설 프로젝트는 교류전류 옹호자들에게 있어 두 번째로 커다란 승리였다. 1895년, 테슬라가 개발한 최초의 발전설비가 나이아가라에서 가동되었다. 마침내 테슬라의 배전 시스템을 통해 막대한 양의 전기가 북미대륙 전체로 송전되었던 것이다. 웨스팅하우스는 1마력의 전기가 생산될 때마다 테슬라에게 2.5달러를 주기로 약속했기 때문에, 테슬라는 죽을 때까지도 갑부로 남아 있을 수 있었다.

  하지만 '독점화'라는 서슬 퍼런 칼날이 웨스팅하우스의 목을 조이기 시작했다. 현실 경쟁의 압박에 따라 경쟁자에 의해 밀려날 위기에 처함으로써, 마침내 '테슬라와의 계약을 파기하라, 그렇지 않으면 끝장이다."라는 최후 통첩을 받게 된 것이다. 웨스팅하우스가 그에게 자신의 입장을 얘기하며 재정적인 곤란을 호소했고, 테슬라는 자신의 권리를 주장했다. 그렇지만 테슬라는 웨스팅하우스가 자신을 믿어 주었고, 아무도 감히 나서지 못할 때 새로운 교류전류 특허에 투자해 주었다는 사실을 기억해 냈다. 더구나 웨스팅하우스가 살아 남아야 기술이 계속 발전할 수 있다고 생각한 테슬라는, 생산 전력량에 따라 받기로 했던 수백만 달러의 이익과 권리를 포기하기로 했다. 친구를 돕기 위해 수지맞는 계약서를 찢어버렸던 것이다.

  한편 전력업계의 독점자본가들은 돈 냄새를 맡고 꼬여들기 시작했다. 테슬라의 발명으로 거대한 폭포에서 생산된 전력이 주의 경계선을 넘어가기 시작하자, 경제계의 거물들이 전기제품을 생산하는 회사로 막대한 돈을 벌어들일 준비를 했다. 이들 경제계의 거물들은 지속적인 성장과 더불어 온 지구를 송전탑과 변압기, 전선으로 뒤덮기 위해서 60헤르츠의 교류전류를 필요로 했다. 산기슭을 오르내리며 사막을 횡단하는 송전탑의 행진이 이어졌다. 전력회사들은 수력발전을 위해 강마다 댐을 설치하고, 자기 회사의 구리선을 통해 전송되는 전력에 대해 와트당 일정한 돈을 요구했다. 전력업계의 거부들은 테슬라가 자신들의 커 가는 돈주머니의 뿌리를 자르는 것을 원치 않았다. 모건은 이미 제너럴 일렉트릭 같은 대기업을 줄줄이 만들었고, 송전선이 궁극적으로 공업화된 북미대륙을 연결하는 젖줄이 될 것임을 눈치채고서 구리광산을 사들였다.

  반면 테슬라는 연구자였지 야차 같은 사업가는 아니었다. 그의 다음 계획은 무선송전을 목표로 하고 있었다. 테슬라의 송전장치가 주파수를 공명시키면, 그와 동조된 수신기를 바닥에 꽂아, 누구나 우주에너지를 얻을 수 있는 장치!

  월스트리트의 투자가들에게는 테슬라의 '무선'이라는 말이 쉽사리 이해되지 않았다. 너무 시대를 앞지른 계획이어서, 모두들 아리송할 뿐이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전망을 이해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이면 누구든 가리지 않고 충분한 설명을 해주었다. 세계박람회의 화려한 조명이 세상을 아찔한 흥분의 도가니로 몰아 넣었던 바로 그 해에, 그는 프랭클린재단 강연에서 '지구공명'이라는 개념을 처음 제안했다. 지구공명은 무선전력 계획의 일부였다. 그 성공의 열쇠는 적절한 전기 펄스 송신주파수를 찾아내는 것이었다. 공명이란 피아노를 조율할 때 소리굽쇠가 일정한 진동수의 음을 발생시키면 피아노 줄이 진동을 일으키는 원리이다. 마찬가지로 무선전력은 수신장치가 송전기의 주파수와 공전(共振)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러면 라디오 방송국의 주파수를 맞추는 것처럼 전력이 동조된다. 연구자들 가운데에는 테슬라가 전리층과 지상 간의 공동을 공진시키는 방법을 썼을 것이라고 보는 이들도 있다.

  이전의 발명이 진부해지는 것 따위에는 전혀 개의치 않고, 그는 그 뒤로 몇 년 동안 무선송전 과정에 관한 이론 연구를 계속했다. 업계는 그가 무선통신에 대해 이야기한다고 생각했지만, 그의 계획은 그보다 훨씬 원대했다. 누구나 지구상 어느 곳에서나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전기가 그것이었다. 테슬라가 지향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깨닫기 전까지는 존 애스터나 모건 같은 사람도 잠시 개발비를 지원하기도 했다.

  한편 그는 나이아가라 폭포의 테슬라 발전기가 전기를 생산하기 시작하던 해애 중대한 시련을 맞는다. 1895년 3월 어느 날 밤, 실험실에 불이 나서 연구기록과 기자재를 모둥 잃고 말았던 것이다. 그가 모임에서 돌아왔을 때, 이층부터 기초까지 무너져 내린 건물에서는 휘어진 철재들 사이로 연기만 피어오르고 있었다. 연구기록을 잃었다는 것은 그가 연구 성과를 입증할 수 없다는 것을 뜻했다. 예컨대 독일의 물리학자 빌헬름 뢴트겐이 X-레이의 발견자로 기록되어 있지만, 만약 기록을 잃어버리지 않았다면 X-레이를 처음 구상했던 사람이 바로 테슬라임을 입증할 수도 있었으리라.


번개의 신

  이어서 테슬라는 전기와 통신을 무선으로 송신하는 방법에 관한 연구에 주력했다. 1889부터 1890년까지 콜로라도 주 콜로라도 스프링스의 고지대로 실험실을 옮겨 새로운 아이디어를 실험하고 무선 주파수 동조기술을 발전시켰다. 그는 소들의 목초지가 있는 산기슭에 고압전기 실험실을 세웠다. 실험실에는 세상에서 가장 큰 테슬라 코일이, 지붕에는 깃대처럼 생긴 구조물이 설치되었다. 한편으로 그는 전 지구상으로 전자기진동을 송출한다는 새로운 목표를 위해 대규모 실험을 진행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휴대용 메시지 수신장치에 테슬라 코일이 적용될 수 있는 가능성을 확인했다.

  콜라라도 스프링스의 '번개의 신' 실험은 정말 극적이었다. 그가 전기를 방전시키자 천둥소리가 적어도 25킬로미터 밖까지 울려 퍼졌다. 지름 15.6미터의 거대한 테슬라 코일은 순간적으로 1200만 볼트의 전기를 방전시켰고, 깃대 끝의 구리 구에서 지가된 전기 스파크가 최소한 30미터 이상 이어졌다. 마을 사람들은 실험실에 불이 났을 것이라 생각했다. 전기작가 체니는 이 실험 때문에 땅이 강하게 대전되어 실험실에서 한참 떨어진 곳에서도 걸을 때마다 발과 모래 바닥 사이에 작은 불꽃이 일었다고 한다. 그리고 800미터다 떨어진 곳에 있던 말들도 금속으로 만든 말굽 때문에 쇼크를 받아, 겁에 질려 날뛰었다고 한다.

  한번은 '증폭 전송장치' 실험중에 번개를 발생시켰다가 우연히 콜로라도 스프링스에 전력을 공급하는 발전시설을 전소시켜 버렸다. 도시는 정진이 되고, 과부하가 걸린 발전기는 화염에 휩싸였다. 그는 기술팀을 파견하여 일 주일 만에 발전기를 수리해 주었다.


워든클리프

  테슬라는 세계적인 전신망과 무선전력이라는 원대한 계획의 열쇠를 찾았다는 데에 만족하여 뉴욕으로 돌아왔다. 건축가를 고용하여, 거대한 전송기로 사용할 높이 46.2미터의 건물을 설계했다. 탑의 꼭대기에는 도너츠 모양의 구리 전극이 설치되었다.

  디자인이 바뀐 건물은 롱아일랜드의 낮은 구릉지대에서 자라는 거대한 버섯처럼 보였다. 테슬라는 이 계획에 워든클리프라는 이름을 붙이고, 전력은 물론 모든 파장의 방송통신용 라디오파를 수용할 수 있는 기지로 사용할 계획을 세웠다. 1902년에 이르러 벽돌로 지은 건평 30제곱미터의 정방형 건물이 거의 완성되었고, 탑의 아래쪽에는 발전시설과 실험실이 설치되었다.

  테슬라는 사람들이 일상생활에서 무선 전기를 경험하게 되면, '인류는 개미탑처럼 수신용 안테나 주변에 몰려들 것' 이라고 예측했다. 그렇지만 그가 예측했던 열광적인 분위기는 결코 생겨나지 않았다. 하지만 모건이 자금지원을 중단한 1906년 이후로 타워의 건설이 거의 중단되었다.

  어떤 역사가들은 모건이 정말로 무선 방송에 관심이 있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모건이 잠시 테슬라의 탑에 자금을 지원했던 것은 테슬라를 움직일 수 있는 빌미를 얻기 위한 것이라고 보는 학자들도 적지 않다. 테슬라가 업계의 통제할 수 없는 단독행동파라는 게 변수로 남아 있는 한, 그의 발명이 언제든지 전기사업에 대한 모건의 투자를 위협할 수 있는 소지를 갖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물론 무선전력 송전이 성공했다면 발전시설과 구리광산의 가치가 급전 직하했을 것이다. 그리고 제네럴 일렉트릭과 같은 모건의 회사들도 상당한 타격을 입었을 것이다.

  1906년부터 테슬라의 재산은 내리막길을 향하고 있었지만, 모건은 테슬라의 편지에 대답을 하지 않았고, 월스트리트의 다른 투자가들도 마찬가지로 그가 죽을 때까지 그에게서 등을 돌렸다. 자금지원을 호소하는 한 편지에서 테슬라는 다른 사람들이 어떤 방법으로 자신에 대한 불신을 고조시키고 있는지에 관해 이렇게 이야기했다. "나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나를 시인이나 몽상가로 인식시키는 데 성공했습니다.……"

  테슬라의 전기작가 가운데는 테슬라의 심리학적 전기를 박사논문의 주제로 삼았던 마크 셰이퍼라는 심리학 교수가 있다. 그는 테슬라가 모건에게 워든클리프를 통해 통신용 신호뿐만 아니라 전력을 송출하려고 한다는 진짜 의도를 숨김으로써 재정적인 파탄의 씨앗을 뿌렸다고 주장했다. 뿐만 아니라 모건을 자본가로서의 한계를 초월하여, 최소한 테슬라가 워든클리프 계획의 무선통신 부문을 완성하여 '세계가 완전히 새로운 방식으로 발전할 수 있도록' 자금을 지원했다는 것이었다.


모건, 테슬라와의 거래를 사보타주하다

  그 후로도 테슬라는 인류에게 유익하리라 믿고 있던 그 기술을 완성할 수 없었다. 셰이퍼는 소위 영향력 있는 인물들이 모건을 만나고 난 뒤에 테슬라와의 거래를 중단했다고 언급한다.

  테슬라는 가진 재산과 노력을 모두 워든클리프와 무선송전 실험에 쏟아부었던 터라 심각한 부채에 시달리고 있었다. 또한 귀족적인 생활에 대한 그의 강한 집착은, 20년 이상의 월도프-아스토리아 호텔 생활로 터무니없는 빚을 누적시켰다. 호텔측은 빚 대신 워든클리프를 넘겨 받았다. 셰이퍼에 따르면, 테슬라가 순순히 월도프-아스토리아의 소유주를 워든클리프를 넘기기로 합의했던 것은 언젠가는 이 프로젝트를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라고 한다. 그래서 커다란 돈벌이가 도리 수 있는 계획을 시작했고, 테슬라는 모든 희망을 날개가 없는 터빈에 걸었다. 그는 날개 없는 터빈이 자동차나 원양여객선, 비행기의 가솔린 엔진을 대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고, 여기에서 벌어들인 돈으로 세계적인 무선송전이라는 원대한 계획을 완성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셰이퍼는 예컨대 소위 '죽음의 광선' 이라고 불리는 광선무기에 대한 발명과 같은 다른 발명들의 동기 중 하나는 정부로 하여금 워든클리프 타워가 군사적 용도로 보존되어야 할 필요성이 있다는 점을 납득시키기 위한 것이었다고 결론지었다. 여기에 광선 무기를 장착시킴으로써, 제 1차 세계대전 동안 미국을 내습하는 항공기나 잠수함을 파괴할 수 있는 전략적 재산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싶었던 것이다.

  구글리모 마르코니를 상대로 소송을 벌이면서 테슬라의 노력은 도욱 분산되었다. 마르코니는 1885년 3월 13일, 테슬라의 실험실에 화재가 나기 전에 주변을 배회하던 이탈리아인이었다. 1901년 마르코니는 자신이 무선전신의 발명자임을 입증해줄 수 있도록 수많은 사람들의 눈앞에서 대서양 너머로 무선신호를 보내는 데에 성공했다. 소문에 따르면, 마르코니가 대륙간 무선송진에 성공했다는 소식을 들은 테슬라는 이렇게 얘기했다고 한다.

  "마르코니는 좋은 친구야. 계속하게 내버려 두세. 어쨌든 그 친구는 내 특허의 70퍼센트 이상을 사용하고 있지 않은가."

  테슬라가 워든 클리프를 구하기 위해 수십만 달러의 빚을 갚으려고 돈을 끌어모으고 있을 즈음, 그가 갖고 있던 특허권들은 거의 소멸되었다. 그래서 그는 무선에 관한 주요한 특허들을 1914년에 다시 부활시켰다고 한다. 테슬라가 마르코니에 대한 소송에서 이기지 못한 것은 법률적인 이유 때문이 아니라 제1차 세계대전 때문이었다. 당시 법무장관보였던 프랭클린 루즈벨트와 대통령 위드로 윌슨은 전쟁이 끝날 때까지 특허권에 관한 분쟁을 허용할 수 없다는 법무부 지침을 발표했다, 그리하여 종전이 된 후에는 테슬라에게 소송이 더욱 불리하게 되었다고 셰이퍼는 주장한다(테슬라가 사망하고 난 지 8개월이 지나, 미국 최고재판소는 무선기술과 관련하여 테슬라의 기술이 마르코니보다 빠르다는 판결을 내렸다. 하지만 이 같은 판결이 있은 후에도, 아직까지 교과서들은 무선의 발명자를 마르코니로 기재하고 있다.).

  테슬라는 기업의 이익 때문에 판에서 밀려났다. "마르코니의 얼굴 마담은 바로 데이비드 사노프였고, RCA와 NBC의 창립자인 사노프는 테슬라의 특허를 교묘하게 피해갔다."

  셰이퍼는 이렇게 덧붙였다.

  "하먼드나 마르코니 같은 인물이 무선 특허에 관한 속임수로 50만 달러씩 벌어들일 때, 테슬라는 한 푼도 받지 못했다."


라디오 방송사가 테슬라를 밀어내다

  기업의 이와 같은 무자비함은 TV발명자인 필로 판스워드 사건에서 훨씬 잘 드러난다. 판스워드의 전기에서 부인 엘마는 사노프로부터 남편이 어떻게 당했는지 말하면서, 1930년 무렵 RCA는 특허사용료를 내지 않으면 누구도 방송용 송수신장비를 만들지 못하게 했다고 주장했다. "특허권이나 특허사용권, 사용료에 대한 RCA의 정책은 간단했어요. RCA는 특허사용료만 받아 먹고 사는 회사였어요. 그러나 우리는 그 사람들에게 절대로 사용료를 내지 않았어요." 엘마는 RCA가 특허와 관련하여 항상 이중적인 태도를 갖고 있었다고 덧붙였다. "그 사람들은 특허권을 독점권 보호의 거대한 보루라고 생각했지만, 그것이 개인 발명가들의 권리를 보호하고 있을 때에는 아주 귀찮은 장애물쯤으로 여겼어요." 그녀는 자신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RCA를 상대로 싸뭉을 벌였다가 패배했던 두 사람의 무선 분야의 선구자에 관해 이야기했다. 그녀에 따르면 리 드포리스트는 파산을 당해 죽었고, 하우어드 암스트롱은 뉴욕에 있는 자신의 아파트에서 코트를 입고, 모자를 쓰고, 장갑을 낀 채로 뛰어내렸다고 한다.

  테슬라는 결코 자살 충동을 느낀 적은 없었지만, 그가 절망적인 상태였음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날개 없는 터빈에 대한 연구가 미처 진척되기도 전에, 워든 클리프를 구하려는 꿈이 무너져내리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 이유 중에서 하나는 워든클리프의 새로운 주인이 그의 프로젝트에 대해 전혀 가치를 느끼지 못해, 건물의 보존을 포기했기 때문이었다. 사업가에 불과했던 새 주인은 테슬라를 헛된 몽상가로 생각했기 때문에, 실험실 내의 장비들을 구태여 보존하려고 하지 않았고, 결국 장비들은 무참하게 파괴되고 해체되었다.

  워든클리프 타워는 1917년에 폭파되었지만, 일부 소문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건물을 철거한 것은 아니었다. 장비는 철거되어 고철로 팔렸다. 이런 극적인 사건을 계기로 테슬라도 세인들의 관심에서 멀어지기 시작했다.


터빈에 희망을 걸다

  아마 그의 시카고 여행은 어떤 면에서 폐허가 된 워든클리프의 모습을 잊기 위한 것이었으리라. 시카고는 1893년 자신의 교류전기 기술의 전시장이 되었던 세계박람회와 같이 초창기의 성공적이던 시절에 대한 기억이 간직된 곳이었다. 그곳에서 그는 전기작가인 휴고 선스백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외에도, 날개 없는 터빈의 부품인 디스크와 관련된 기술적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골몰했다. 당시의 철강은 그 같은 고속회전을 견디지 못했다. 한편 그의 기술은 이미 시대를 앞서있었고, 1990년에 와서야 개념이 이해되어 테슬라 터빈에 대한 개량이 이루어지고 있다. 테슬라 엔진 제작자협회는 그 이름이 의미하는 바와 같이 테슬라 엔진의 개량 작업을 하는 연구자들의 협동적 네트워크이다. 테슬라 엔진은 그 무렵 그의 발명들 중에 가장 실용적인 용도로 쓰였던 바, 화석연료나 핵에너지를 폭넓게 대체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시카고에서 돌아온 테슬라는 며칠에 한 번씩 밀워크와 뉴욕을 오가며 살았다. 그가 속도계를 개발하여 시계회사에 팔았던 것은 바로 이때였다. 그리고 재빨리 현금을 마련하기 위해 발명했던 것 중에는 분수도 있었다. 이 장치는 1915년에 고안했던 것으로 적은 양의 물을 이용해 미적·심리적 만족을 유도할 수 있는 장식용 분수였다.


자금조달을 위한 필사적인 노력

  테슬라가 무기산업과 관련을 맺지는 않았을까? 테슬라는 제 1차 세계대전 전까지 독일과 관계를 맺고 있었고, 1916년부터 1917년까지 탱크와 기타 전투용 차량에 날개 없는 터빈을 장착하기로 약속했다. 셰이퍼는 모건이 테슬라에게 2만 달러 이상의 터빈 개발비를 지원했던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었다고 지적한다.

  셰이퍼의 최근의 책은 테슬라가 무선송전 계획을 재개하려고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분주했던 1915년 이후 '패배기' 의 역사를 다루었다. 여기에 인용된 서신이나 기사에 따르면, 테슬라가 나치의 선전원이나 독일의 군수산업 관련자가 같은 베일 속의 인물들과 연관을 가졌다고 한다. 궁지에 몰린 발명가 테슬라는 그들에게 죽음의 광선에 관한 아이디어를 팔아 자금을 조달하려고 했다는 것이다. 1930년대의 이런 군부 인사들과의 접촉에 관해, 셰이퍼는 "아직은 완전히 베일에 싸여 있어서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 그리고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 고 자위했다.

  테슬라 추종자들에게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지만, 칩거 생활을 하는 동안 그가 뉴욕에만 머물렀던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1925년부터 1926년경에는 필라델피아에 가서 터빈 설계에 관여했으며, 1931년에는 터빈을 제작하기 위해 US 스틸사의 책임자와 함께 일했다.

  셰이퍼는 테슬라가 자신의 터빈에 관해 300쪽에 달하는 책을 집필했지만, 그가 죽음으로써 발표되지 못했다고 주장한다.


우주에너지로 달리는 자동차?

  테슬라는 다른 발명들에 관해서는 조용히 묻어 두고 싶어했던 모양이다. 다음의 이갸기는 몇 세대가 지나고 나면 기록조차 힘들 것 같다. 테슬라가 60살 무렵이었다. 그는 다른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신형 피어스-애로우에 장착된 가솔린 엔진을 뜯어내고 80마력의 교류 모터를 달았다. 하지만 배터리가 없었다! 곧바로 그는 상자 안에 부품들을 조립하여, 상자를 자동차 좌석 곁에 설치했다. 누군가의 말에 따르면 그 의문의 상자는 길이가 60센티미터, 너비가 30센티미터, 높이가 15센티미터였으며, 손잡이 두 개가 붙어 있었다고 한다. 운전석에 앉은 테슬라가 손을 뻗어 손잡이를 밀면, 자동차는 거의 시속 130킬로미터의 속도로 출발했다. 그는 일 주일 동안 대여한 피어스-애로우 자동차로 시험을 했다고 한다. 만약 이 이야기가 사실이라면, 그 동력원이 비밀은 그의 죽음과 함께 묻혀진 것이리라.

  자동차가 '우주에너지'를 동력원으로 사용했을지도 모른다는 몇 가지 단서가 있다. 예를 들어 테슬라는 《센추리》지의 편집장이던 친구 로버트 존슨에게 보낸 서신에서, 외부의 동력원을 필요로 하지 않는 전기발전기를 개발했다는 얘기를 했다고 한다. 그리고 1930년대 초에 테슬라는 벌써 25년 전에 우주선을 이용하는 동력장치를 개발했다고 발표했다.

  이러한 발표의 내막을 밝히기 위해, 연구자들은 최근 '복사에너지 이용을 위한 장치'(미국 특허번호 658957, 1901년)와 같은 테슬라의 특허를 상세히 검토했다. 그 결과, 그는 1900년 6월호 <센추리>지의 발표 전부터 이미 '우주에너지' 발전기를 연구하고 있었음이 밝혀졌다. 존슨은 <센추리>의 기사에서, 테슬라가 태양에서 직접 에너지를 얻는 어떤 장치를 개발했지만 돈이 될 만한 것도, 만족할 만한 성능을 가진 것도 아니었다고 했다. 한편 유타의 올리버 니켈슨 같은 연구자들은 이에 관해 흥미로운 주장을 내놓았다. 테슬라 자신도 이 '우주에너지' 장치가 시장에서 판매되지 못할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무선으로 전력을 팔아 돈벌이를 할 가능성이 있었다면 재계의 거물들이 이 시스템을 외면하지 않았을 것이다.

  창조적 진영에 서 있는 오늘날의 물리학자들이라면 트롬블 리가 말했던 우주 진공의 에너지, 대략 세제곱미터당 1094그램의 상상을 초월하는 막대한 에너지를 이용할 가능성과 테슬라의 '우주에너지'를 입증할 수도 있으리라.


기관원이 테슬라의 논문을 가져가다

  전기에 따르면, 테슬라는 1943년 87세의 나이로. 가난한 중에서도 점잖을 때며 호텔 방에서 생을 마감했다. 장례식은 당대의 내노라하는 엘리트들을 포함하여 20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성 요한 성당에서 치러졌다.

  테슬라는 이미 1899년에 미국 시민권을 얻었고 그 후로 50년 동안 그의 시민권이 높이 추앙되었지만, 이상하게도 삶을 마감하는 마당에는 마치 신참 이민자처럼 취급되었다. 그가 사망한 후, 관련된 서류들이 배에 실려 유고슬라비아로 돌아갔다는 발표가 있었고, 워싱턴 당국은 그의 유산을 처리하기 위해 이국인 자산관리인을 파견했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미국 정부의 기관원들이 먼저 그의 금고를 열어 서류들을 접수했다고 한다. 훗날 유고슬라비아의 자그레브에 테슬라 박물관이 세워져, 그의 사망 후에 일어난 사건들을 견디어낸 자료들을 보관하고 있다.

  전기작가 체니는 군이 외국인 자산관리국으로부터 넘겨받은 테슬라 관련 서류를 조사했고, 마침내 오하이오 주 소재 라이트-패터슨 공군기지까지 그 흔적이 이어져 있다는 사실을 밝혀 냈다. 1980년 정보공개법에 입각한 공개 요청에 대한 공군기지측의 답변은 무책임하기 이를 데 없었다.

"테슬라의 논문을 조사했던 기구(장비실험실)가 몇 년 전에 해체되었습니다. 이관된 자료들의 목록을 광범위하게 조사해 보았지만 테슬라에 관한 기록은 찾을 수 없었고, 실험실이 해체될 때 그 문서들도 함께 파기된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믿든지 믿지 않든지 간에, 어쨌든 위대한 발견자 테슬라는 역사책에서 추방되었고, 신과학을 하는 연구자들 사이에서만 근근히 맥을 이어오고 있다. 파괴적인 목적이 아닌 지구를 정화시키려는 목적으로 군부가 테슬라의 기술정보를 비장하고 있는 것일까? 석탄과 석유를 독점하고 있는 자본가들이, 마찬가지로 테슬라의 유산마저 좌지우지하려고 음모를 꾸미고 있는 것일까? 어떠한 연료도 필요 없는 전기발전기를 발명했다는 그의 주장에 대해 생각해 보자. 테슬라는 이렇게 주장했다.

  "너무 많은 세대가 지나기 전에 우리의 기계가 우주 어디서나 얻을 수 있는 동력에 의존할 수 있어야 한다. ……온 우주가 에너지로 충만해 있다."

  그 에너지가 이용되었다면, 희소성의 원칙이라는 신화에 의지하여 이윤을 챙겼던 사람들이 그처럼 오일 전쟁을 부추길 수 없었으리라.

  자연사든 독살이든 테슬라에 관한 진실은 대다수 인류에 대한 헌신성이 결여된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구름 속에 가려져 있다.
테슬라 심포지엄에서 내 곁에 앉아 작은 소리로 흐느끼던 그 남자는 방 안을 사로잡았던 분위기에 아주 잘 동화되어 있었던 것이리라. 더구나 그는 다음과 같은 트롬블리의 말에 주먹을 꼭 쥐기까지 했다.

  "에디슨은 한 걸음 한 걸음씩 지위가 올라갔지만, 니콜라 테슬라는 정말 위대한 별 가운데 존재하는 일등성이었다."


출처: 탄압받는 과학자들과 그들의 발견(도서출판 양문 , 조나단 에이센, 2001) 202~223p
<위키백과 http://ko.wikipedia.org/wiki/우범곤_순경_사건을 퍼옴>

이 케이스는 연쇄살인보다 대량살인에 속합니다.

우범곤 순경 사건은 1982년 4월 26일 경상남도 의령군 궁류면에서 당시 계급이 순경이었던 경찰관 우범곤(禹範坤)이 저지른 총기 살인 사건이다.

[원인]

순경 우범곤(1955년 11월 5일 부산 출생, 당시 27세)은 당시 서울 청와대에서 근무하기도 하였으나, 인사 과정에서 의령군으로 좌천되었고, 동거녀 전말순(당시 27세)과의 사이가 몹시 좋지 않았다. 당시 경찰은 평소 술버릇이 나빴던 우범곤이 동거녀와 말다툼을 벌인 뒤 흥분 상태에서 우발적인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결론지었다.


[경과] 

1982년 4월 26일 오후 7시 30분경에 예비군 무기고에서 카빈소총 2정, 실탄 180발, 수류탄 7발을 들고 나왔다. 우범곤은 우선 우체국에서 일하던 집배원과 전화교환원을 살해하여 외부와의 통신을 두절시킨 후, 궁류면 내 4개 마을을 돌아다니며 전깃불이 켜진 집을 찾아다니며, 총을 쏘고 수류탄을 터뜨렸다. 자정이 지나자 우범곤은 총기 난사를 멈추고 평촌리 주민 서인수의 집에 들어가 일가족 5명을 깨운 뒤, 4월 27일 새벽 5시경 수류탄 2발을 터뜨려 자폭했다. 이 사건으로 주민 56명이 사망하는 참혹한 사태가 벌어졌으며, 34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결과] 

이 사건으로 당시 내무부 장관이었던 서정화가 자진 사임하고, 후임으로 노태우가 내무부 장관을 맡으며 정치계로 입문한다. 노태우는 이것을 시발점으로 정치를 시작하여 대통령까지 올라가게 된다. 그리고 당시 근무지를 이탈했던 의령서장 등 3명의 경찰관과 방위병 3명이 구속됐다. 

한편 당시 의령경찰서장은 직무유기죄로 기소되었으나 법원은 주관적으로 직무를 버린다는 인식이 없고 객관적으로는 직무 또는 직장을 벗어나는 행위가 없다고 보고 무죄판결을 선고했다(대판 1983.1.18, 82도2624).


[일화] 

당시 수사본부는 범인 우범곤의 수법이 너무 잔인해 일반인과 뇌조직이 어떻게 다른지를 가려내기 위해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시신을 보내 뇌세포 검사를 하려 했으나 검사가 불가능해 이를 포기했다. 

일부 인터넷 사이트에서는 우범곤 사건이 '짧은 시간에 가장 사람을 많이 죽인 단독 살인범'으로 세계 기네스북에 등재되어 있다는 소문이 퍼져 있으나, 세계 기네스북 협회에서는 연쇄살인이나 대량살인에 대한 기록은 등재하지 않고 있다.

출처: 위키백과 우범곤 순경 사건 http://ko.wikipedia.org/wiki/우범곤_순경_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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